진리의 주체는 신에게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 개인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진리는 궁극을 추구하는 과정이라면 그 끝은 과연 어디에 어떻게 존재할 것인가.  주체와 사유와 대상은 과연 각각의 정당성과 합리성을 내포하고 있는가.  인간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생각의 논리, 사유가 지배하는 세계의 구성.  그 근본적 원리는 언제나 끊임없는 의문을 가지기이다. 

경계짓기라는 것.  인간의 언어가 그리고 사고가 만들어내는 인식의 영역, 그리고 영역의 주변부를 둘레짓는 경계.  사물의 경계, 사유방식의 경계..  수많은 철학자들의 고민과 연구를 관통하고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철학의 중심적 의문은 이런 경계를 허무는 일이 아닐까. 그것은 그래프로 표현되는 무한대의 함수를 숫자로 분명한 표현과 경계를 어떻게 연동시킬까 하는 고민일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빨간색’이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색은 실은 CMYK 시스템에서는 수없이 많은 색들의 집합이다.  하지만, 수많은 색들을 ‘빨간색’으로 경계짓는다 해도 경계 주변의 색들은 ‘빨갛지 않다’로 말할 수 있을까?  동시에, 그 경계는 모두가 동의하는 그런 것일까?

경계를 허문다는 것을 우리는 마치 미분적분을 하듯 더 세세한 분류로 나누어 결국엔 좀 더 작은 경계를 짓는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미끄럼틀 같은 자연의 흐름을 계단화시키는 일이나 마찬가지 일 것이다.  미끄러지는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계단을 계속 세세하게 만들어나가는 과정..  그것은 과연 합리적인 방법일까?  그것에 자연스럽지 않은 비합리의 느낌이 존재한다면, 인간이 사유의 방법으로 추구하는 것들, 언어등의 표현방식은 그 자체로 잘못된 방식이 아니었을까?  남는 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의문과 고민뿐이다.  철학의 본질은 어쩌면 누구의 사유가 더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아니라, 언제나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의문의 향연에 있을지 모른다. 

철학은 여전히 나에겐 어렵다.  데카르트, 칸트, 헤겔, 들뢰즈, 가타리...  책을 읽고나서도 그들이 각각 어떤 철학적 사유를 하고 주장을 했는지 머릿속에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  강연형식으로 쉽게 풀어 설명해 놓았는데도 그렇다는 건, 분명 나의 문제가 클 것이다.  어릴적 암기위주의 쌈닭훈련만 받아 사고의 방법과 방식에 익숙치 않은 머리의 습관때문이라 해도 될런지 개인적인 의견을 살짝 얹어본다.

고민과 의문은 사실 우리의 삶의 대부분을 지배하는 두뇌작용의 한 모습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게 합리성에의 고민에 좀 더 가까운 것을 철학적 고민이라 하는 건 아닐까?  나라는 주체에 대한 고민, 대상에 대한 고민,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한 고민..  철학은 이런 추상성과 비현실성이 언뜻 느껴지는 본질에 대한 고민이라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구체성과 현실성에 어느정도 타협한 고민을 이어나가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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