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내내 '전문집단은 지식을 독점함으로서 하나의 계급이 되고, 독점된 지식은 점점 무식해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반 일리치가 한 이야기인데 독점된 지식은 경계를 분명히 함으로서 지평을 넓힐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당장의 내가 속한 분야인 의학도 서양의학을 습득한 의사들을 중심으로 지식을 독점한 집단이 경계를 분명히 함으로서 다른 의학의 가능성이나 연관성을 철저히 배제시킨다.  독점된 지식은 다소 일방적인 성격의 공급체계를 통하여 권력이 되고, 경계지은 사고는 다른 의료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무시한 채 고집스럽게 자신을 정당화시키기에 급급하다.
 
개인적으로는 법에 대해 잘 모르니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의 시선으로 이 책을 바라볼 수 있었다.  법 역시 전문가집단의 소유물이 된 채, 좀체 사람들과 친해지지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독점을 통한 권력을 더욱 강화시킴으로서 거리감을 두려하는 느낌이다.  의학 역시 비슷한데, 용어와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게 유지함으로서 거리감을 공고화 한다.  조금 다른 면은 우리나라의 법 전문가들의 배출방식이 상당이 획일화되고 좁다는 것인데, 사법연수원이라는 유일한 통로로 나온 사람들의 구분법이 단지 졸업기수 차이라는 점과, 그렇게 얽힌 사람들이 판사 변호사를 나누며 법적 판단에 개인적 이해가 얽히지 않을 수 없는 구조라는 점은 법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고민을 다시금 하게 만드는 모습이다.
 
그렇게 내부의 한계를 지닌 법이 사법독립이라는 면에서도 그리 당당하지는 못했다.  법체계 자체와 정치권력과의 거리두기에 실패한 사법체계가 이중으로 보여주고 행해온 지금까지의 모습은 자체로 권력과 폭력이었다.  권력과 폭력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단어들과 개념들로 채워졌을 때, 두려움은 극대화된다.  그런 법에 인민이 친숙해질 일은 만무할 뿐이다. 법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인민에게 주어진 결과는 결국 자신이 법의 주인이라는 사실과 법을 통해 주어진 권리를 망각한 것이다.
 
망각이 폭력을 더 키워온 것 역시 사실이고 역사였다.  법의 진정한 목적은 평화라 이야기한다.  동시에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건만, 법이 말하는 우리의 권리와 법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망각한 현실은 법이라는 폭력을 더욱 키웠을 뿐이었다.  내가 읽은 책은 개정판이긴 하지만 이 책이 나온 건 8년전인데 그럼에도 읽고나서의 어떤 신선함, 자각같은 것을 느꼈다는 것은 나 역시 망각의 늪 안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되돌아보게 되었다.  동시에, 참 답답했던 최근의 현실 안에서 사람들이 점점 변화에 대한 여론을 만들어내고 소소하지만 다양한 행동들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 우리가 점점 법이라는 권력화된 타자를 우리에게로 조금씩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느끼게 된다.  이 책이 그런 노력에 근본적 이해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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