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인턴일을 하면서 "드라마 소재"거리가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지난주 토요일밤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줄 것이다.

응급실 인턴을 돌다보면 "CPR온대요!!"라는 어디선가 들리는 소리에 저절로 긴장하게 된다. 어느 토요일 밤, 어디선가 "CPR 온대요!!"라는 소리를 듣고 얼른 글러브를 끼고 CPR room으로 갔다. 119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지금 오는 환자가 30대라는 등, 119에서 말하는 나이를 믿지 말라는 등의 대화가 들려온다. 이윽고 유리문 밖으로 초록색 불이 깜빡이는 것이 보이고 구급대원들이 환자를 밀고 들어왔다. 얼핏보니 진짜 30대 중반같다. 심근경색? 뇌출혈? 아니면 폭행일까??

다시 환자를 봤다. 다른 곳과 달리 얼굴이 보라빛이다. 어? 하는 마음에 목을 들여다보니 목에 무언가를 칭칭 감았던 자국이 있다. 전공의 선생님이 앰부를 짜면서 기관삽관을 하려고 보는데 턱이 굳어있다. 사후강직이다. 이미 사망한지 1~2시간은 지났다는 의미다. 5분정도 CPR을 하다가 "이건 안된다"라는 펠로우 선생님의 말씀에 모든 것을 중단했고, 119 zone에 얼굴이 하얗게 질린채로 굳어있는 보호자, 그러니까 그 남자의 아내에게 사망선언을 했다.

어보이던 그녀는 굳어있는 몸이 더 굳은채로 "어떡하지, 나 어떡해"라는 말만 되뇌이고 있었다. 보다못한 나는 그 옆에서 얼른 친정과 시댁에 연락하라고 이야기를 했고, 그 여자는 온몸을 떨면서 핸드폰을 들었다. 울지도 못하고 있었다.

"어...엄마...나..나야....어떡해...어떡하지......00이 아빠가 죽었대......."

챠팅을 위해 119 구급대원한테 일단 몇가지 물어봤다. 어제 밤에는 살아 있었었는데 아침 6시에 아내가 옷방으로 들어가보니 남편이 넥타이에 목을 맨 채 쓰러져 있었다고 한다. 그 여자의 옆에는 내 무릎높이보다 조금 더 큰 빨간 코트를 입은 여자아이가 있었다. 만 나이로 3~4살 정도로 추정되는 그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채 여기저기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 CPR room의 문이 열렸는데... 이런. 아이가 보고 있는 곳이 시신이 있는 곳이다. 나는 얼른 몸으로 그 아이가 보지 못하게 막아섰다.
 
잠시후 시댁에 전화를 하고 있는 엄마한테 그 꼬마는 엄마옷을 붙잡았다.

 "엄마..나 쉬야.."

머릿속까지 굳어버린 엄마는 그냥 기저귀에 보라고 한다. 아이가 안되보여서 양해를 구하고 그 꼬마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일단 코트를 화장실 문에 걸어놓고 변기에 앉힌 후 나중에 코트를 다시 입혀주고 나오는데 앙증맞게 생긴 이 꼬마는 코트의 단추를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엄마는 이거 해주는데"

 아..단추를 안잠궜다. 단추를 잠궈주고 화장실 문을 나서는데 꼬마가 말한다.

"엄마가 이상해"

"응. 오늘 엄마가 많이 힘들꺼야. 엄마옆에 꼭 붙어있어"

"응"

콩알만한 꼬마가 이해를 하고 대답하는건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꼬마를 데리고 나오는데 이제는 배가 고프다고 칭얼댄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다. 응급구조한테 부탁해서 책상에 있던 요구르트를 입에 물려주고 꼬마를 엄마한테 데려다 주었다. 딸기맛 드링킹 요거트를 입에 물고 그 꼬마는 엄마한테 달려간다. 엄마는 아직까지도 굳어있었다. 이윽고 경찰이 왔다. 사정청취를 하고 CPR room 으로 들어가 시신의 상태를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 꼬마는 경찰들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마침 할 일도 없던 나는 경찰을 따라 CPR room 으로 들어가 구경하기 시작했다. 시신을 뒤적이며 서로 이야기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보고 잠시 예전 법의학 수업시간에 들었던 내용을 떠올리고 있었다. 문에 난 유리창으로 보니 그 꼬마의 할머니, 할아버지로 보이는 사람들이 왔다. 아이는 할머니가 반가웠는지 다가가 배꼽인사를 하고 생글생글 웃는다. 30분후, 울고있는 엄마를 위로하며 다른 유가족들이 병원을 나선다. 아이는 간만에 보는 친척들이 반가웠는지, 아까 마시던 요거트를 꼭 쥔채 재롱을 떨며 병원문을 나섰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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