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파키스탄 페샤와르에서 총성이 울렸다. 소아마비 백신 접종을 위해 일하던 보건인력에게 가해진 총격이었다. 첫날 5명이 죽었고, 다음주에 한명, 그리고 며칠 후 또 두명이 죽었다. 모두 소아마비 백신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1) 일주일 후에는 학교에 총격이 가해져 일곱명의 교사와 활동가들이 죽었다. 역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던 소아마비 백신 접종 프로그램 때문이었다.(2) 여기서 끝이 아니다. 2월 초에는 나이지리아로 옮겨갔다. 오토바이를 타고 온 괴한이 백신 접종을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했던 것이다. 여기서 공격은 더욱 조직적으로 이루어져 두 곳의 보건소에서 동시에 총격이 가해졌다. 며칠 후에는 의사들이 대상이 되었다. 3명의 북한 의사들이 괴한의 습격에 사망했다.

사람들은 지역 내 분쟁이나 불안정성을 걱정하기도 했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비난을 보내기도 했으며, 한국에서는 자기네 나라 의료 현실은 신경도 쓰지 않고 외국에까지 의사를 파견한 북한의 정치적 배경에 더 큰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기존의 테러리즘과는 조금 다른 현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보건 의료 인력에 이렇게 조직적인 타격이 가해진 적은 내가 알기로 거의 처음이기 때문이다.

백신이 생식능력을 방해하기 때문에 서양인들이 민족을 말살시키려는 것이라는 루머가 돌아서 그렇다는 이야기가 있다. 1960-70년대 천연두 박멸 사업을 진행할 때도 사람들의 반응은 그리 좋지 않았다. 백신 반대론은 심지어 19세기에도 있었다.(http://scienceon.hani.co.kr/37905) 냉전으로 인한 갈등이 극에 달해 각종 의료사업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되는 곳도 많았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소통에 그리 많은 관심이 기울여지지 않던 시절이라 반 강제적으로 진행되던 곳도 있을 터였다. 심지어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빈 라덴을 잡기 위해 백신 프로그램을 사칭한 스파이를 침투시켜 활동시킨게 드러났을 때도 테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단순히 지역 내 불안정성이나 부족간의 갈등의 희생된 것이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보건 인력들은 항상 세계에서 가장 불안정한 지역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활동해 왔다. 그럼에도 이들이 가진 기술과 그 직업이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 때문에 충분히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체 무엇이 보건 인력들만 노리는 테러리즘을 불러 왔을까. 이런 극적인 변화라면 사람들이 의학과 보건을 바라보는 시점 자체이 변화가 있다고 보는게 옳지 않을까.

잠시 언급한 아프가니스탄의 예처럼 의료와 보건은 여전히 제삼세계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고소득국가들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고, 그 현실은 가까운 시일 내에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의학적 도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졌던 것도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의료시설이 과거보다 조금 더 보편화 되었기 때문에 더 익숙해졌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변한 것이 있다. 바로 제삼세계의 의료시스템 확대를 주도하던 세력의 변화다. 과거 제삼세계의 의료시스템은 거의 전적으로 국가 자체, WHO 같은 국제기구나 대형 NGO에 확대되어 왔다. 하지만 이제 그 중 상당부분을 제약회사들이 가져갔다. 의료시스템을 확충하는 것은 좋은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문제는 제약회사들이 제공해주는 시스템은 철저히 경제논리 하에 본인들의 임상시험에 사용할 용도로 확충되는 것이지, 다른 사업체들처럼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약 8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이 신약 개발 비용의 상당부분은 임상시험, 그중에서도 3차 임상시험에 투자된다. 20년전만 하더라도 미국의 20대 제약회사에서 진행하는 임상시험 중 95%가 미국 국내나 서유럽 지역에서 시행되었다. 해마다 이 수치는 점점 늘어 이제는 전체 임상 시험 중 1/3이 국외, 대부분이 저소득 제삼세계에서 이루어진다. 다른 지역의 통계는 제대로 잡히지 않아 알아볼 수 없었지만, 인도에서 임상시험 중 대상자 한명을 추적관리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약 2000달러 정도다. 미국에서는 20000달러가 들어간다.(3) 임상시험을 ‘외주’하면 신약 개발비용으로 몇분의일로 낮출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제약회사가 어디 있을까.

임상시험을 통해 저소득 지역 사람들이 더 다양한 약품에 무료로 접근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임상시험 중인 약품은 어디까지나 시험 중인 약일 뿐 안정성이 확립된 약도 아닐 뿐더러 많은 임상시험이 비윤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혹은 서류상으로는 윤리적으로 진행되는 듯 보일 수 있지만, 이는 문맹자가 많고 극심한 빈곤에 시달리고 있으며 사회적 구조 상 임상시험에 등록되는 것을 거부 할 수 없는 취약계층이 저소득 지역에는 넘쳐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런 대형 제약회사들의 연구는 국가에서 운영하는 보건처과 함께 진행되는 경우가 많은데, 지역 주민들은 거절할 힘이 없다. 만약 거절할 경우 정부에서 제공하는 다른 편의도 같이 사라질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다. 한 연구를 보면 제삼세계에서 진행된 670건의 임상 시험 중 지역 보건당국이나 감독관의 감독을 받았던 곳은 56%에 불과했고, 중국에서 나온 임상시험 관련 논문의 90%는 아예 윤리 규정 자체를 명시하지 않았다.(4)

제약회사들은 까다로운 자국의 규제를 벗어나 값싼 대상자들을 구할 수 있어 해외로 나간다는 대신 이런 허울 좋은 명분을 댄다. 잠재적인 시장을 개척하고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질병들을 현지에서 시험하여, 세계화 되고 있는 제약 사업의 추세를 따라 세계 곳곳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한다는 명분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현재 세계 곳곳에서 임상시험이 진행 중인 약물들은 실제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심혈관질환이나 감염성 질환 약물들이 아니라 알레르기성 질환 약물이나 과민성 방광 치료제 등이다. 이런 약들이 제삼세계 시장에 등장해봐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혜택을 볼 수 있을까. 헬싱키 조약에서는 임상시험 후 대상자들에게는 제공 가능한 최상의 치료제를 제공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약들은 모두 임상실험 참가자들이 아니라 약값을 지불할 수 있는 이들에게 돌아간다.

이렇다보니 임상시험의 의미 자체도 모호해졌다. 과연 임상시험 중에만 잠시 약물에 노출되었던 전혀 다른 지역의 인구집단이 표본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 고소득지역 주민들은 이미 해당 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많은 약품에 노출되어 왔을 것이고, 기존의 약품에 대한 노출이 향후 신약의 효과에 어떤 영향을 줄지는 모르는 것이다. 또 유전적 차이가 인구집단마다 심한데, 이렇게 전혀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약이 작용하리라 믿는 것도 한계가 있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임상시험이 가져다주는 상대적 박탈감과 비윤리성이다. 임상시험을 통해 신약을 제공 받았던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자신의 질환을 치료하거나 관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실험이 끝나는 순간 약품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지불 가능한 이들의 것으로 돌아서게 된다. 의학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던 때야 마음 - 그리고 사상 - 을 대가로 해서 자신의 건강을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의 신념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몸뚱이 자체를 내다 팔아야 자신의 건강을 살 수 있다.

이제 사람들은 더 나은 의료서비스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구할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다. 다만 의학은 그것을 더 비싼 돈을 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제공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의료와 보건을 과거와 같은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의 물결과 세계 경제 공황의 여파 등으로 제삼세계에서 지속적으로 보건의료 사업의 정착이 실패하며 사람들의 신뢰가 무너진 것도 컸다. 하지만 제약회사의 주도로 임상시험을 앞세워 들어와 새로운 의료보건의 물결을 일으킨 의료의 사유화, 자본주의화는 그런 신뢰의 붕괴를 가속시켰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보건사업에 대한 이런 조직적인 테러는 사람들이 의료에 던지는 시선이 어떻게 극적으로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일 수도 있다.

제약회사의 임상시험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앞서의 예와는 반대로 제삼세계에서 유행하고 있지만 정작 해당 지역에서는 테스트되지 못하는 약들도 있다. 또 막강한 자본을 앞세워 이들이 마련하는 임상시험 현장 스테이션이나 보건 인력의 확충은 공공부분과 협력하여 장기적인 시스템 마련의 기초가 될 수도 있다. 보다 윤리적인 기초를 탄탄하게 바꾸어 사람들이 새롭고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고 일정 수준의 소득을 올릴 수 있게 할 수도 있다. 돈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니까.

올 초부터 일어난 일련의 비극적인 사건들은 우리가 제3세계에 강제해온 의료와 보건 시스템, 그리고 비단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의료와 보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한번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의료보건은 사람들을 목숨을 구해온 고고한 상아탑인가. 고결하고 순수한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사람들이 그렇게 봐주기를 원해왔던 것인가. 그렇다기에는 우리가 너무 의학이 사회적이 아니기를 바래왔던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볼때가 되지 않았을까.

1. http://www.bbc.co.uk/news/world-asia-20779388
2. http://www.bbc.co.uk/news/world-asia-20880948
3. http://www.nejm.org/doi/full/10.1056/NEJMsb0803929
4. http://jme.bmj.com/content/30/1/68.f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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