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과 농업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싶지만, 최근 생산되는 약품들의 면면을 보면 이해가 된다. 제약회사 같은 거대기업들 하면 당연히 공장이 떠오르고, 약은 예쁜 알약으로 예쁜 포장에 담겨 나오기 때문에 당연히 공장에서 찍혀 나오리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원료는 대체 어디서 오는 걸까. 특히나 흔히 말하는 ‘천연물’에서 생산하는 약들이 많아지는 요즘은. 말라리아약으로 사용되는 알테미시닌을 예로 들어보자. 알테미시닌은 중국에서 예로부터 해열제로 사용되어오던 개똥쑥을 원료로 한다. 식물에서 추출한 중간 물질을 가공하여 약품으로 판매하는데, 이 개똥쑥은 주로 중국이나 베트남, 동남아시에서 경작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들의 중요한 환금 작물이다.

2006년, 말라리아약 생산에 중요한 진전이 있었다. 현재 가장 널리 사용되고 있는 알테미시닌은 합성하여 만들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된 것이다.(Production of the antimalarial drug precursor artemisinic acid in engineered yeast
http://www.nature.com/nature/journal/v440/n7086/full/nature04640.html) 연구의 단면만 보자면 기후나 주변 환경, 경제적 요건에 많이 휘둘릴 수 밖에 없는 농작물 보다는, 공장 안에서 이스트를 이용해 수율이 높은 중간물질을 안정적으로 합성 할 수 있다면 약값 안정도 되고 필요한 사람들에게 적절한 시기에 공급되니 좋은 현상이라 생각할 수 있다. 현재 개똥쑥을 키워 약으로 만들어내는데 까지는 약 일년 반의 기간이 필요하고, 이는 시장의 수요에 반응하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개똥쑥의 생산은 말라리아 박멸 사업을 진행하는 펀드(특히 Global Fund to Fight AIDS, Tb and Malaria)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 펀드를 통해 개똥쑥 생산량이 떨어졌을 때 농민들에게 지원금도 들어가고, 더 많은 양을 생산하도록 유인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개똥쑥 시장과 알테미시닌 시장은 포화상태이고 매우 불안정한 상황에 놓여있다. 올해가 글로벌 펀드가 말라리아 약품 공급 프로그램에 펀딩을 제공하는 마지막 해라는 이유도 크다. 작년에는 잉여 생산물과 펀딩 종료에 따른 불안감으로 알테미시닌 가격이 폭락과 폭등을 반복했다. 2007년에는 킬로그램당 300달러 안팎이던것이 2011년에는 400-1000달러 사이를 오갔고, 현재는 400-600달러 선에 머물러 있다.
 이렇게 불안정한 시장에 갑자기 합성 알테미시닌이 들어와 세계 생산량의 1/3을 공급한다면 기존 알테미시닌의 원료로 쓰던 개똥쑥의 가격은 폭락 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불안정한 시장 상황에 소규모 농민들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걸까. 환금작물에 의존하여 질병과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상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이다.(환금작물 의존과 말라리아 유행에 대한 옛 글: http://scienceon.hani.co.kr/37686) 심지어 그 환금작물이 질병을 박멸하기 위해 생산되는 작물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연구자는 ‘궁극적’으로 합성 알테미시닌 생산이 안정화되고 가격이 내려가면 더 많은 이들이 혜택을 볼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궁극적으로는. 때문에 이 기술을 개발한 사람은 현재 생산자들과의 일종의 가격 담합을 통해 시장에 도입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는 듯 하다. 연구가 가져올 가능성에 대한 신념도 좋지만 그것이 과연 옳은 방향일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잘 빠진 연구가 현실에 적용되기에 현실은 시궁창이다. 그 시궁창에 빠질 의도가 없다면 잘 빠진 연구를 현실에 무작정 적용하는 것이 얼마나 큰 폐해를 가져 오는지 연구자들은 알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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