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소외열대질환은 치료비가 아주 저렴하다. 저번에 소개한 요우스도 항생제 일회 투여로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0.70 정도 밖에 들지 않고, 강변사상충증, 회충, 촌충 등 토양매개선충, 주혈흡충증 같은 기생충 감염은 약품이 대형제약회사에 의해 무료로 공급되고 있어 거의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물론 여기에도 예외는 있다. 요우스와 비슷하게 피부궤양을 일으키는 브룰리 궤양(buruli ulcer)이다.


브룰리 궤양은 Mycobacterium ulcerans에 의해 일어난다. 한센병이나 결핵을 일으키는 마이코박테리아 계열 박테리아다. 브룰리 궤양의 유행이 심각한 서부아프리카 지역에서는 결핵이나 한센병 감염환자보다 브룰리 궤양 감염환자가 더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기도 하다.

브룰리 궤양의 원인균이 밝혀진 것은 50여년이 넘었지만, 전파 경로에 대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2008년이 되어서였다.(1) 습지나 토양 등 주변 환경과 접촉하면서 감염되는 것으로 추측은 하고 있었지만, 한번도 박테리아가 분리된 적은 없어서다. 2008년도에야 수서곤충과 습지 생태에서 박테리아가 분리되며 환경과의 접촉이 중요한 감염 경로가 될 수 있으리라 실마리를 얻어냈다. 물론 환경에서 균을 얻어낸 것은 첫걸음일 뿐이고, 균들이 어떻게 사람에게 유입되는지를 알아내는 것은 아직도 기초 단계에 머물고 있다. 최근 호주에서 일어났던 브룰리 궤양 유행 사태 때는 모기에서도 박테리아가 발견된바 있다. 코알라나 포섬 같은 동물도 궤양균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므로, 최근에는 이런 야생동물에서 모기를 통해 브룰리 궤양이 전파될 수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2)

 전파 경로의 특성상 브룰리 궤양은 폭발적으로 환자가 늘어나는 형태의 감염성 질환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 환경에 잠복해 있는 박테리아를 모조리 박멸할 수도 없고 사람들이 접촉할 수 있는 경로를 완전히 차단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예방 방법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현재로서는 비누로 청결을 유지하고, 가벼운 상처도 충분히 소독을 해 치료하는 것을 권장하는 정도가 최선이다. BCG 백신 접종이 6-12개월 정도 어린아이들에게서 감염을 예방하고 골수염으로의 발전을 차단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지만 현재의 BCG 백신 접종률로는 큰 효과를 보기 어려워 보인다.(3)

현재 가장 많은 환자가 보고되는 곳은 코트디부아르를 비롯한 서부아프리카 지역이지만, 습기가 많은 열대, 아열대 지역 전체에서 꾸준히 감염이 확인되고 있다. 꾸준히 감염이 일어나고 있는 국가는 총 30여개 국으로 파악되었는데 그 중에는 일본도 있다. 지난 20여년간 20건 가량이 발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전세계적으로 보고되는 신규 환자 수는 연간 약 7000명 정도인데,(4) 사람들이나 보건 인력들이 브룰리 궤양에 대해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점과 사회적 차별 때문에 실제 환자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질병의 잠복기가 수개월에서 수년으로 매우 길고, 치료 기간 역시 몇 달씩 걸린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지금 감염되어 있는 사람의 숫자는 몇배로 불어날 수 있다.

요우스와 비슷하게 브룰리 궤양도 15세 미만의 청소년에게서 집중적으로 나타난다. 두 질병 모두 피부의 손상을 통해 체내로 박테리아가 유입되기 때문에 야외활동이 많고 수영 등 습한 환경에 접촉할 확률이 높은 아이들이 더 많이 감염되는 것이 아닌가 추정하고 있다. 브룰리 궤양은 정도를 불문하고 외상이 있었던 자리에 주로 생겨나는 특성을 보이는데, 작게는 예방접종을 했던 자리부터 총상이나 지뢰 파편상을 입었던 자리에까지 생겨난다. 따라서 예방접종 후 제대로 소독을 하거나 상처관리를 하지 않은 아이들도 위험에 놓일 수 있고, 외상이 잦은 분쟁지역에서도 더욱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브룰리 궤양은 처음에는 통증이 없는 작은 혹을 만든다. 여기서 면역억제 및 조직 괴사 효과를 내는 단백질을 균이 뿜어 내면서 점차 궤양이 나타난다. 한가지 특징은 대체로 초기 단계에는 별 다른 통증이 없다는 점인데, 궤양균이 분비하는 단백질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피부 궤양은 보통 지방층을 집중적으로 파괴하고, 근막을 손상시키지만 근육층까지 파고 들어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궤양균이 뼈로 전이되어 골수염을 일으키는 경우가 감염자의 약 10% 정도에서 발생하는데, 이 경우 치료도 쉽지 않고 영구적인 장애를 일으키거나 전이 정도에 따라 절단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5)

초기에는 간단히 혹을 제거해내거나 항생제 투여만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궤양의 크기가 커지거나 지방층 깊이 침투한 경우에는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 손상된 조직이 괴저를 일으키거나 파상풍 같은 이차감염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수술을 통해 감염된 조직을 완전히 제거하고 항생제를 몇주간 투여하면서 피부이식술을 통해 최대한 손상된 부위를 보존하고 복원하는 쪽으로 치료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수술 후에도 관절 부위 같은 경우에는 흉터가 남으면 운동성이 상당히 제한 될 수 있어 재활과 물리치료도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브룰리 궤양도 서아프리카 지역처럼 소득이 낮고 보건 시스템이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지역에서 주로 유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험 많은 의사라면 임상 증상만으로도 충분히 브룰리 궤양을 진단해 낼 수 있지만, 이렇게 경험 많은 의사들이 해당 지역에 많지 않다.

또 치료는 초기에 발견하면 수주간 항생제 투여를 통해 수술적 개입을 피할 수 있는데, 이렇게 장기간 사후 관리를 하며 복약 지도를 해줄만한 보건 인력도 없다. 무엇보다 상황이 심각한 것은 궤양이 상당히 진행된 중증 환자들인데, 수술적 치료는 광범위한 피부이식술을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아 적게는 몇주에서 길게는 몇달까지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이런 병원비를 감당할 만한 지역 주민들은 그리 많지 않다. 치료가 다행히 잘 끝났다 하더라도 물리치료와 재활을 꾸준히 해야하는데, 전문적인 물리치료사도 거의 손에 꼽을 정도인 것이 현실이다.(6)

적절한 치료만 이루어진다면 브룰리 궤양의 예후는 굉장히 좋은 편이지만, 그렇지 못해 사망에 이른 예도 많이 있다. 대체로 이차감염에 의해 사망하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궤양균이 전신으로 퍼져 심각한 장기 손상을 일으켰을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최근 HIV 유행으로 에이즈 환자 안에서는 브룰리 궤양이 더 빠르고 공격적으로 조직에 침범해 사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브룰리 궤양은 요우스와 마찬가지로 피부 궤양을 일으키고 심각한 흉터를 남기는 질병이다. 하지만 전파 방식의 특성상 사실상 예방이나 관리가 현재의 기술과 지식으로는 거의 불가능 하다는 점, 그리고 궤양이 진행된 상태에서는 전문적인 의료 인력과 장비를 필요로 하는 장기간의 수술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점, 간단히 약물만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없다는 점, 치료의 비용이 상당히 높다는 점이 소외열대질환 중에서도 특히 관리하기 어려운 질병으로 만들고 있다. 즉 현재로서는 경력이 풍부한 일차의료기관에서 지역 주민들의 감염 여부를 조기에 파악하여 간단한 시술로 치료가 가능한 시점에서 질병의 진행을 차단하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의미다. 결국 브룰리 궤양으로 인한 중환자의 수는 일차의료의 질을 판단하는 하나의 좋은 지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1. Portaels, F., Meyers, W.M., Ablordey, A., Castro, A.G., Chemlal, K., de Rijk, P., Elsen, P., Fissette, K., Fraga, A.G., Lee, R., Mahrous, E., Small, P.L., Stragier, P., Torrado, E., Van Aerde, A., Silva, M.T., Pedrosa, J., 2008. First cultivation and characterization of Mycobacterium ulcerans from the environment. PLoS Negl. Trop. Dis. 2, e178.
2. Johnson, P.D., Azuolas, J., Lavender, C.J., Wishart, E., Stinear, T.P., Hayman, J.A., Brown, L., Jenkin, G.A., Fyfe, J.A., 2007. Mycobacterium ulcerans in mosquitoes captured during outbreak of Buruli ulcer, southeastern Australia. Emerg. Infect. Dis. 13, 16531660.
3. Uganda Buruli Group, 1969. BCG vaccination against Mycobacterium ulcerans infection (Buruli ulcer). Lancet 1, 111115.
4. WHO, 2008. Buruli ulcer progress report, 20042008. Wkly Epidemiol. Rec. 83, 145154.
5. Wansbrough-Jones, M., Phillips, R., 2006. Buruli ulcer: emerging from obscurity. Lancet 367, 18491858.
6. Aguiar, J., Steunou, C., 1997. Buruli ulcers in rural areas of Benin: management of 635 cases. Med. Trop. (Mars). 57, 8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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