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각(forgetting)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하는 인지심리학 이론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오늘 소개할 두 가지는 간섭(interference)과 부식(decay) 이론이다. 간섭 이론에서는 망각을 기억의 상실이 아닌 인출 실패로 보는데, 그 원인을 다른 기억에 의한 간섭에서 찾는다. 반면에 부식 이론에서는 망각을 기억된 내용 자체가 없어지는 것으로 본다. 이 두 이론은 망각을 설명함에 있어서 경쟁적인 이론이었는데, 최근의 연구들은 대체로 간섭 이론을 지지하고 부식 이론을 반박하는 편이었다. (이정모, 2009)

하지만 이번에 소개할 한 논문에서는 간섭 이론을 반박하고, 부식 이론을 지지하였다. Hardt et al.(2013)에 의하면, 망각을 '부식'으로 볼 수 있을 만한 경험적 증거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최근의 신경과학적 연구들을 포함한다. 또한 과거에는 간섭 이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연구들이, 사실은 부식 이론을 지지하는 것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입장이다. 한 마디로, 부식 이론은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억은 어떻게 '부식' 될 수 있는가? 저자들에 의하면 그 답은 PKM-zeta(PKMζ)라 불리는 물질에 있다. 이 물질은 기억이 형성될 때 만들어지는 물질인데, 하는 역할은 기억을 망각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이다. PKMζ 는 기억이 재강화될 때마다 다시 합성되는데, 만약 그러한 재강화가 없다면 PKMζ 는 점점 파괴될 것이다. 결국 충분한 PKMζ 로부터 보호되지 않는 기억은 일련의 생물학적 과정을 통해 '부식'된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부식'은 우리에게 큰 이득을 가져다 준다. 첫 번째는 너무 많은 생각들의 '홍수'에 빠지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한 번 본 것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능력을 가졌던 사람들의 사례로부터 확인된다. 이러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의식에 흘러들어오는 생각의 홍수에 빠져,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들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Funes 라는 가공의 인물이 이러한 상태를 잘 묘사하고 있으며, 역사상 몇몇 인물들이 실제로 그러한 삶을 살았다. 두 번째 이득은 추상적 사고를 잘 하게 된다는 것이다. 추상적 사고란 공통적 속성은 추출하고, 개별적 속성은 무시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망각은 개별적 속성을 무시하는 과정을 도와줄 수 있다.

이러한 견해는 망각이 '간섭'이라기보다는 '부식'이며, 그것이 수행하는 기능적 역할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참고문헌]

이정모, 인지과학: 학문 간 융합의 원리와 그 응용,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09, pp. 451-453.

Oliver Hardt, Karim Nader, and Lynn Nadel(2013), Decay happens: the role
of active forgetting in memory,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Vol. 17, No. 3,
pp. 1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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