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이토록 완벽해보이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나 싶었다.  중세철학의 원리들과 역사에 대한 지식, 그리고 중세권력의 분투, 종파간의 갈등과 수사학, 세상에 대한 관점 등등이 추리소설이라는 형식 안에서 이토록 긴장감있게 구성되는 걸 보면 소설을 읽으며 이해를 하려하기보다는 작가의 해박함과 완벽함에 감탄부터 하게 된다.  마치 틀 속에 자신이 가진 모든 지식을 넣고 잘 섞어 흥미로운 미로를 만들어내는 느낌이랄까? 

호르헤 노인과 윌리엄 수도사가 마지막 순간에 만나 나눈 이야기를 들으며 아드소가 느낀, 서로가 각각 만들고 향유한 지적 즐거움과 치밀함을 서로에게 칭찬받고 싶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은 어쩌면 작가가 원하는 느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사적 사실과 실존인물이 조금씩 섞여 만들어 낸 중세의 갈등과 철학은 무조건 책을 펼치고 읽는다고 해서 쉽게 이해되거나 받아들여지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것을 추리소설이라는 형식으로 구성해서 완벽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것은 작가로서 소설속의 유능하고 영리한 윌리엄수도사와 동일시하고 싶었을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작가가 글을 쓰면서 자신이 가진 지식의 옷을 입고 능란한 춤을 추는 느낌이다.

황제와 교황의 갈등, 종파간의 갈등, 그 안에서 실질적 이유가 되는 권력에의 욕심, 그리고 왜곡된 진리추구에의 방법, 화형, 살인..  그 모든 것의 위에는 신이라는 존재가 있었다.  신을 이유로, 신을 이해하고 다가가는 방식을 이유로 인간들은 서로를 경계하고 판단하고 처벌하고 죽인다.  그것은 과연 신을 위하는 진정한 모습일까?  하나하나 진실이 드러나면서 동시에 밝혀지는 것은 그런 것이다.  인간은 과연 신과 진리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의문..  불길에 휩싸이며 무너져버리는 수도원은 결국 신에게 다가간다는 이유로 인간이 쌓았다가 무너져버린 바벨탑의 또다른 모습이었다.  신과 진리를 추구하는 수도사들이 모인 수도원의 몰락..  인간은 신의 존재를 이해하지도 못할 뿐더러 존재를 추구하는 방법도 왜곡시킬 뿐임을 말해준다.  그 모습은 현재에도 충분히 보고 느낀다.  그러면서도 신의 존재를 포기하지 않는 인간은 영원히 우매한 것일까, 아니면 알뜰하게 활용할 줄 아는 영리한 존재들일까?

작품은 정말 쉽지 않다.  세 번의 번역교정 작업에도 강유원 선생님이 철학적 이해문제와 더불어 지적한 오역부분이 230군데라는 사실은 그냥 읽어내려가기에 미안함마저 느끼게 하는 어려움이다.  동시에 소설안에 차려진 지적 향연의 즐거움은 조금만 이해할 수 있다면 간접적으로나마 즐길 수 있는 요소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무척 엄청난 부피와 깊이가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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