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렸을 때부터 알러지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리고 지금도 환절기만 되면 여전히 알러지는 기승을 부린다.

환절기가 되면 눈물, 콧물, 재채기로 정신이 없다. 심할 때는 숨만 쉬어도 맑은 콧물을 뚝뚝 떨어져서 휴지로 콧구멍을 막아야 한다. 눈이 가렵고 찐득찐득한 눈물이 나와 그걸 닦다보면 1년에 두세번은 다래끼가 난다. 지금도 그렇다.

고등학교 때는 재채기 많이 하고 코를 하도 많이 풀어서 독서실에서 겨난 적도 있었다. 집먼지 진드기는 기본이고, 금속 알러지도 심해서 바지 단추가 닿는 배꼽 근처는 피부가 꺼멓고 귀걸이도 잘못하면 금방 귀에서 진물이 난다. 햇 알러지 때문에 초여름 햇살이 강해지는 계절이 시작되면 햇빛에 노출된 팔뚝 피부가 우둘두둘 다 일어난다. 어렸을 때는 천식이 심해서 1년에 1달 이상 학교에 가지 못하고 병원 출입만 했다. 온갖 네불라이저를 다 해봤다. 나는 숨이 차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무서운 경험인지 안다.

코에 수백개의 폴립이 있어서 코가 잘 막힌다. 내 CT를 보면 어찌나 폴립이 많은지 지금도 매번 깜짝 놀란다. 폴립이 자라서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가 되면 폴립을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 대학원 다닐 때 폴립을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총 세번.

그래도 폴립은 계속 자라난다. 밀가루 알러지가 있다고 해서 어렸을 때는 5년 정도 밀가루 음식을 먹지 않았다. 그때 키가 크다 말았다. 4년간 면역치료도 했다. 그 덕을 보았는지 각종 알러지가 좀 잠잠해 졌다. 그러나 지금도 비염과 결막염, 피부가려움증은 여전하다.

의사가 된 후 알러지라는 병에 대해 알게 되면서 지금은 이 병이 낫는 병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적절히 증상을 조절할 줄 알게 되었다. 심할 때는 주사를 맞는다. 증상의 악화를 막아가면서 그럭저럭 살 수 있다. 면역 치료를 다시 한번 하는게 좋을 것 같은데 알러지 외래에 가질 않는다. 치료를 시작할 엄두를 못내고 있다. 알러지라는게 증상이 심할 때는 죽을 것처럼 힘들지만, 또 그 기간이 지나가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해진다. 그래서 본격적인 검사와 치료를 안 받고 그냥 지낸다. 증상만 조절하면서.

난 환자들이 알러지 증상을 호소하면 재깍 알아채고 약을 쓴다.
알러지내과를 가지 않아도 대부분 해결된다.
환자들은 내 처방에 만족한다.
나도 만족스럽다.

난 조금만 예민해지거나 걱정거리가 있거나 스트레스를 받거나 음식 조절을 잘못하면 변비가 온다. 오랜 경험 끝에, 이제는 어떤 약을 먹으면 언제 배가 아프고 언제 변을 보는데 성공하는지도 잘 안다. 어떤 약에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잘 알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약을 처방할 때 설명을 잘 한다. 다 내가 겪어 본 것들이니까. 변비의 고통을 잘 아니까. 어떤 약이 장기적으로 내성이 없으니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는지, 설령 내성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해도 급할 때는 먹으면 바로 해결되는 약이 뭔지도 안다. 그래서 진통제를 먹는 환자들에게는 변비 약을 꼬박꼬박 잘 챙겨준다.

나는 운동을 하면 혈압도 떨어지고 맥박도 안정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다. 힘들어도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면 컨디션이 얼마나 회복되는지 알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몸에 좋다는 것을 열심히 찾아 먹는 것보다, 내 능력보다 조금 과하게 운동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체력을 향상시키는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수술 후 경과관찰 하는 환자들이 '홍삼 먹어도 되요?', '다린 물 먹어도 되요?' 그런 질문을 하면 그런 거 먹기보다 운동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을 과하게 강조한다.

레지던트 2년차 때 응급실 근무를 하면서 요로감염이 몇번 있었다. 항생제를 쓰면 언제쯤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하는지, 최소한 열은 언제부터는 떨어지는게 맞는건지, 약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증상이 얼마나 나빠지는지, 효과가 확실하지 않다면 언제 약을 바꾸는 게 좋은지, 눈에 띄는 항생제를 이것 저것 남용하다가 감염이 잘 낫지 않고 고생을 해 본 나로서는, 약을 잘 쓰고, 때에 맞게 잘 바꿔주고, 증상을 해결해 주기 위해 자꾸 묘안을 짜내게 된다. 내가 아프고 나서 배운건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내가 아픈 걸 경험한 만큼, 또 이겨낸 경험이 있는 만큼, 환자에게 그 부분을 더 강조하게 된다. 인간은 역시 경험의 동물이다.

지난주 감기로 목도 많이 아프고 누런 코도 나오고 머리도 자꾸 아프고 힘들었다. 사람을 만나서 말을 하는 것 자체가 힘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말을 많이 하게 되는 종일 외래가 있는 날은 아예 타이레놀을 두알 먹고 외래를 시작한다. 외래가 끝나고 나면 목이 더 붓는다. 그래도 약을 먹고 증상을 잊어야 진료를 볼 수가 있었다.

침 삼키는게 어려울 정도로 목이 아프니 음식 먹기도 힘들고 식욕도 떨어지고 기운도 없어서 참 힘들었다. 그 무렵 비슷하게 감기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보면, 이렇게 아프고 힘든데, 항암치료도 하고, CT도 찍고 병원도 와야 하니 얼마나 고달플까 맘이 더 쓰인다.

의사도 자기 몸 아파봐야
환자의 마음을 알고
환자의 거동 하나하나를 주의깊게 관찰하게 되는 것 같다.
환자의 증상과 고통에 충분히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
세심한 처방과 진료를 할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병, 내가 먹어보지 못한 약을 쓰면서도
잘 설명할 수 있는 의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종양내과 의사처럼 암 말고도 온갖 잡스러운(!) 병을 해결해야 하는 의사라면 말이다.

지난주 나랑 비슷하게 골골대던 환자가 있었는데 그녀가 1주일만에 좋아져서 왔다.

나도 1주일만에 좋아졌다. 그녀랑 나랑 똑같은 약을 먹었다.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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