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전에 임금의 부름을 받아 대궐로 갈 때 큰 비가 내리는 가운데 역마를 급히 몰아 달려갔다. 어떤 객점에서 한 아낙네가 앞에 아이를 앉히고 머릿니를 잡고 있는 광경을 보았다. 아이는 그 어미가 머리를 긁어주는 것을 좋아하고 어미는 이 잡는 것을 기쁘게 여겨 둘이 서로 즐거워하는데, 거짓 없는 참다운 정이 가득했다. 마침내 ‘인생의 지극한 즐거움 중에 무엇이 이것과 바꿀 수 있겠는가?’ 이렇게 생각하였다. -p32, 「인생의 즐거움이란 무엇인가」(유언호, 정조 시대 문신)


머릿니, 몸니, 사면발이는 모두 이 종류로 오래전부터 인류와 함께 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이의 유전적 정보를 토대로 인류의 진화를 역추적 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인류와 오랫동안 함께해온 동반자입니다. 과거 문학작품에도 자주 등장하고 그림들에도 어머니가 아이들의 머릿니 몸니를 잡아주는 장면이 자주 등장합니다. 흔히 우리가 구석구석 빈틈없이 하다는 표현으로 쓰는 말인 ‘이잡듯’이라는 말 역시 이 머릿니와 몸니에서 유래했습니다. 영어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지요. nit-picking이라는 말인데 ‘사소한 일에 구애 받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여기서의 nit은 머릿니의 알인 서캐를 말하죠. 이처럼 이는 문화나 습관, 관습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왔습니다.

머릿니, 몸니, 사면발이는 모두 비슷한 이 종류로 인간에만 기생하는 체외기생충 종류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털 있는 생물체들은 저 나름의 이들을 가지고 있죠. 머릿니와 몸니는 외형상으로는 사실상 구분하기가 거의 불가능 한데, 저마다 매달릴 수 있는 털 종류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하나는 머리에만 하나는 몸에만 살고 있습니다. 예를들어 머릿니를 몸에 난 털에 붙여 놓으면 제대로 매달려 있지를 못하고, 몸니를 머리에 붙이면 매달리지 못하는 차이가 있죠. 머릿니는 간지럼증, 피부염 등의 비교적 가벼운 증상만 일으키지만, 몸니는 재귀열, 티푸스 등 다양한 질병을 옮기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어른들 사이에 가장 흔한 기생충은 저번 민물고기 기생충 이야기 할 때 증장했던 간흡충이겠습니다만, 어린이들로 넘어가면 가장 흔한 기생충은 머릿니와 요충입니다.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감염되어 있고, 오늘날에도 중요한 공중 보건 문제이기도 하죠. 5년전에 질병관리본부에서 초등학교/유치원생 15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를 보면 약 4%의 학생들이 감염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전체 규모로 보면 약 10만여명이 감염되어 있다고 하네요. 적지 않은 숫자지요. 지금도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서 서캐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꽤 많은 참빗이나 구충 제품들이 올라와 있습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이야기겠죠. 과거에는 감염률이 97%에 달하는 학교들도 있었으나 학급당 학생 수가 줄어들고, 이들간의 접촉이 줄어든데다 위생의 향상 같은 이유로 현재 감염자는 많이 줄어든 상태입니다. 성인에게서는 잘 발견되지 않는 머릿니가 어린이들에게서 많은 이유는 머릿니는 이동력이 좋지 않아 머리끼리 직접 접촉하는 과정에서 옮을 수 있기 문입니다. 따라서 같이 부비고 뒹구는 아이들이 훨씬 잘 감염되지요. 위생도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꼭 더럽다고 이에 잘 걸리고 그러는건 아닙니다. 감염자와의 접촉 기회가 얼마나 되느냐의 문제죠.

몸니는 몸니라 불리기는 하지만 옷에 살고 있습니다. 털에 잘 못매달리기도 하고 사람의 몸에는 털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죠. 때문에 몸니가 출현한 시점은 인간이 옷을 발명한 시기와 같습니다. 의복의 역사를 추적하기 위해 몸니를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죠. 몸니는 이제 한국에서 거의 사라진 상태로 알려져 있고, 사면발이의 경우에는 질병의 특성상 감염자들이 감염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고 특별히 감염성 질환을 옮기지는 않기 때문에 정확한 감염률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산발적인 보고를 통해 보면 현재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면발이는 음모에 기생하며 성관계를 통해 전파되는데, 전염력이 가장 강한 성병 중 하나입니다. 최근에는 찜질방 문화의 확산으로 간접감염이 일어나는 경우도 꽤 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머릿니는 서캐나 가려움증으로 인한 피부박리가 비듬처럼 보일수도 있고 해서 아이들이 수치스러워하기도 하고 왕따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때문에 조기에 잘 치료해 주는게 중요하죠. 치료법으로 민간요법에 사용되는 식초나 알콜 등을 이용하는 경우도 많이 있는데 이럴 경우 피부 자극이 심해져서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살충효과도 그리 크지 않구요. 살충성분이 들어있는 샴푸를 약국에서 팔고 있으니 이런 제품을 사서 이용하시는 것이 가장 효과적입니다.

하지만 살충샴푸의 경우 서캐까지 죽이지는 못하기 때문에 완전히 박멸될 때까지 꾸준히 사용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참빗으로 머리를 잘 빗어 서캐를 떨어뜨려주는것도 좋지요. 린스를 머리에 잘 발라두고 5-10분간 놔둔다음 참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서캐가 더 잘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머리를 짧게 - 아주 짧게 - 자르는 것도 한가지 방법입니다. 사실 삭발만큼 확실한 방제법도 없기는 하죠. 아예 살 자리를 없애버리는거니까요. 사면발이도 마찬가지로 부끄럽다고 집에서 끙끙앓지 마시고 병원에 바로 가시는게 좋습니다. 심한 피부염으로 번지기도 하니까요. 머릿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비키니 왁싱을 한 사람들은 사면발이에 걸리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있습니다.

[질문]
1. 과연 파마나 스트레이트를 한 사람의 머리에 이가 살 수 있을까?
대충 찾아보니까 너무 곱슬이거나 유분이 너무 많거나 너무 가는 머릿결일 경우에는 머릿니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곱슬이 심한 아프리카계 사람들의 경우에는 머릿니에 잘 걸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네요. 모발이 튼튼하고 유분이 적당하고 긴 머리카락을 가장 선호한다고 하니 오히려 매직 스트레이트를 하면 역효과가?! 때문에 유분이 너무 많은 지저분한 머리를 오히려 이가 선호하지 않는다고 해요. 오히려 이도 쾌적한 깨끗한 머리를 선호한다고. 그러니 지저분한게 무조건 이가 생기기 좋은 머리는 아닌거죠.

2. 몸니가 곱슬머리에 살 수 있을까?
몸니의 경우에는 털에 매달려 생활한다기 보다는 옷 사이사이 틈이나 겹친 곳에 있다가 사람이 활동을 멈추었을때 피부로 내려와서 흡혈을 하고 돌아가는 형태의 생활을 하거든요. 때문에 머리에 계속 매달려 살아가기는 어렵습니다. 사면발이의 경우에는 아이들의 경우 음모가 없으니까 속눈썹에 매달려 있는 경우가 종종 보고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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