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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영화 지슬 - 유채꽃밭을 걸으며 울음을 삼킬 친구를 생각하다

쑥국이 나왔다. 점심 식단으로. 병원 직원 중 누가 어제 금정산에 가서 깨 온 것으로 국을 끓였다고 식당 아주머니가 말했다. 봄 향기가 물씬 배어났다. ‘바람 든 달’이라고 결혼도 하지 않는다는 음력 2월의 날씨는 일교차가 크다. 동장군과 세찬 북풍도 완연한 봄기운에는 속절없다. 계절의 변화에는 한 치의 어김도 없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건만 어기는 일이 다반사다. 계절 따라 누구에게나 슬픔의 기억들과 가슴앓이가 있게 마련이다. 나의 경우는 삼월, 사월과 오월이 그러하다. 마음보다도 몸이 먼저 알아낸다. 3.18 부미방 사건. 삼십년도 더 지났어도 고문당하던 그때의 기억이 오늘 일처럼 뚜렷하다. 제주 4.3이 그러하고, 5월 광주가 그러하다. 꼭 그 맘 때쯤이면 몸이 먼저 말을 한다.

흑백영화 <지슬>을 보았다. 지난 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되었던 영화인데, 시간이 맞지 않아 보지 못했던 영화다. ‘신위’(神位-영혼을 모셔 앉히다) - ‘신묘’(神廟-영혼이 머무는 곳 ) - ‘음복’(飮福-영혼(귀신)이 남긴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 - ‘소지’(燒紙-신위를 태우며 드리는 염원) 네 개의 부분으로 미군정 치하의 외로운 섬 제주에서 억울하게 죽어야했던 4.3 영령들을 위해 제사지내는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는 감독의 말처럼 난 제사 드리는 마음으로 화면을 응시했다. 감자를 뜻하는 제주방언 지슬. “구워 온 겨?” 동굴 속에서 배고픔에 떨다가 허겁지겁 맛있게 먹으며 누군가 뱉은 말. 어머니가 군인에게 살해당해 돌아가실 때 품었던 감자임을 말할 수 없는 무동이의 마음. 눈물이 나왔다. 영화를 보면서 떠올린 것은 시인이자 민속학자인 문무병의 ‘살의 노래, 피의 노래, 뼈의 노래’란 시였다. 이 한 편의 시 속에 제주 4.3의 진실이 오롯이 담겼다. 2006년 7월 13일에 나는

50년 전 무자(戊子). 기축년(己丑年) 한라산에서 군경의 쏜 총에 억울하게 나는 죽어 무정한 세월 피 묻은 옷에 고이 싸서 여기 살의 노래 몇 글자 적어봅니다. 이제 나의 살은 썩었습니다. 어머니, 나의 살은 썩어서 흙이 되었습니다. 해방이 되자 미군이 왔습니다. 미군이 오고, 군인이 오고, 지원경찰과 서북청년단이 오고, 모두 무기를 들었습니다. 어머니, 나는 죽음이 두려웠습니다. 나는 산에 숨었다 잡히어 빨갱이가 되었습니다. 나는 빨갱이가 아니라 하였습니다. 빨갱이가 아니라면 산에서 잡혀온 다른 빨갱이를 이 죽창으로 죽이라 하였습니다. 눈감고 “살려줍서, 살려줍서”하며 반은 미쳐 내 이웃을 향하여 죽창을 들고 찔렀습니다. 피 묻은 죽창을 들고 내가 미쳐서 소리 지를 때, 희미한 여명 속에 “겨누어 총! 쏘아!”하는 소리 반복되고 사람들은 허망하게 쓰러져 있었습니다. 모두 구덩이에 처박아 휘발유를 뿌려! 어머니, 그 시국에 우리는, 제주 땅에 태어난 죄로 허망하게 쓰러져야 하였습니다. 이제, 나의 살은 부정하여, 이승도 저승도 오도 가도 못하여 어머니, 나는 구천을 떠돌고 있습니다. 이것은 피의 노래입니다. 내가 부르는 무자(戊子). 기축년(己丑年) 피의 노래입니다. 어머니, 태양은 떠도 캄캄한 이 세상 피로 물들고 미친 듯 울어대는 바람 까마귀는 어디론가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그날 우린 밤에 산에서 내려, 가물개 친척집에 곱았수다. 와흘리(臥屹里)로 올라가는 곳에 비크럭밧이 있었는데, 오맹이루라 합니다. 길 서녘에 우리 밭이 있고 밭에는 굴이 있어 남편은 거기 숨었지요. 내려가면 우릴 수용소 생활시키다 죽여 버린다니, 남편은 거기 숨어 있었던 거지요. 당신 하나 희생할 셈치고 같이 내려가요. 운이 따르면 같이 살기로 하고, 그럴 셈치고 내려가자고 애원했으나, 남편은 산에 간 개똥이 아버지랑 동네 청년들 보기가 부끄럽다고, 굳이 내려가려 하지 않았습니다. 쌍년 의리가 있지 나만 내려가면 되나? 무슨 의리가 밥 먹여 준대요. 목숨은 하나 뿐이우다. 그래서 우린 내려왔지요. 내려와 뒷날 날이 밝으니 삐라가 하얗게 뿌려져 있었어요. “강태봉이 이 새끼 너 죽여버리겠어!” 그리고 한 일주일은 됐어요. 조천 비석거리 그 앞은 공회당이었는데, 거기 모두 모이라 해요. 도(道)에서 나와 연설도 하고 그런 저런 말을 하다 보니 어두워집디다. 늙은이하고 아이들은 돌아가라 해서 우린 돌아와 버렸지요. 어두워도 남편은 안 오기에, 왜 안 오나 하고 있는데 함덕 대대본부 9연대가 와서 통행증 없는 사람들 통행증 내주겠다며 모두들 실어 갔다고 해요... 함덕가며, 내일은 폭도들 잡으러 산에 오른다 하더니, 그 날 함덕 잡혀간 사람은 차에 실려, 박성내 다리에 가서, 총을 쏘아, 전부 죽여서, 굴헝에 처박아, 멸치젓 담듯 처박아, 죽여버렸대요!



어머니, 제주 것들, 붉은 섬 빨갱이들, 10만의 목숨은 휘발유를 뿌려 죽여도 좋다는 그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제주 섬은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도깨비 불 사방으로 번져가고, 피 바람에, 내 온 몸은 타고 있었습니다. 나는 뜨거워 소리쳤습니다. “살려줍서-” 그러나 나의 노래는 기름불에 활활 타 들어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머니, 이제랑 그 날 내가 남긴 피 묻은 옷을 보고 나를 찾아 주세요. 이제 세월은 흐르고, 살은 썩고 녹아 흙이 되었지만, 한라산 곶자왈(荒野) 굴헝마다 굴러다니는 뼈의 노래를 부를까 해요. 시신은 눈알 터지고, 바람 까마귀 떼, 황량한 들판을 날아갑니다. 어머니, 육신은 갈기갈기 찢겨 까마귀밥이 되었고, 나의 뼈, 내 육신을 지탱하던 순 제주산(濟州産) 나의 뼈, 북촌에 하나, 원동에 하나, 표선백사장에 하나, 정방폭포에 하나 해 뜨는 일출봉에 하나, 알뜨르 비행장, 정뜨르 비행장 아스팔트 밑에, 그리고 박성내 다리 아래, 여기 저기, 산지사방에 흩어져 있습니다. 내 영혼, 이승도 저승도 못간 내 영혼 어디에 머물러야 합니까. 뼈를 잇고 살을 붙여 피를 돌게 하고, 이 한 몸 이승에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신다면, 밥 배불리 먹는 거, 옷 따뜻하게 입는 게 소원입니다. 어머니, 가난은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린 가난 때문에 황량한 겨울 한라산으로 내몰렸던 겁니다. 토끼몰이 사람사냥이 시작되었던 겁니다.


허공중에 흩어진 넋이여, 살은 썩고 녹아 흙이 되고, 뼈로 남은 혼백이여, 북촌 옴탕밧에서 죽어간 영혼이여, 알뜨르 비행장에서, 표선백사장에서, 원동 주막번대기에서 총살당한 조상들이여, 기름불에 타 형체마저 녹아버린 육신이여, 그날 박성내 다리에서 “살려줍서!” “살려줍서!” “살려줍서!”하며, 처절하게 죽어간 무자(戊子). 기축년(己丑年)의 사람들이여, 여기 오셔서 원미 한 그릇 소주에 계란 안주 잡수고서, 설운 조상 손목잡고 엉엉 실컷 울고 가옵소서. 눈물 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고, 땀 든 의장 뼈를 싸 얼었던 몸 녹히고, 얼은 마음 풀어서, 저승 상마을로 가 나비로나 환생 헙서. 원통하고 칭원한 영신님네, 인간의 삼혼 중에 한 넋만 없어져도 검뉴울 꽃 되는 법이오니, 허공 중에 떠도는 넋 차사영신기 둘러받아 초혼(初魂) 이혼(二魂) 삼혼(三魂)을 씌우려합네다. 불쌍한 영신님네, 초혼을 씌우져 합네다. 초혼 돌아옵서 초혼 본- 이혼을 씌우져 합네다. 이혼 돌아옵서 이혼 본- 삼혼을 씌우져 합네다. 삼혼 돌아옵서 삼혼 본- (전문)

 


굴렁쇠님의 제주 4.3에 대한 일련의 작업에 이웃지기로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또한, 분노하고 가슴으로 피울음을 울면서 하는 힘들고 외로운 작업이기에 격려의 박수를 보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4.3문제의 해결이 한반도의 통일시대를 여는 중요한 열쇠이고, 인권이 이 땅에서 살아 숨쉬고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는 디딤돌이기 때문이다. 굴렁쇠님을 알게 된 것은 나에게 큰 행운이다. 그의 제주 4.3 진실캐기는 계속 되어야만 한다.

오마이 블로그의 오랜 이웃지기인 굴렁쇠님 생각이 났다. 그는 내 마음 속의 굴렁쇠의 제주 4.3의 진실캐기란 폴더를 통해 역사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왔다. 우리는 서로 교감이 있었다. 나는 제주로, 그는 부산으로 오곤 했다. 제주에서 그의 안내로 둘러 본 제주 4.3의 속살들이 생각났다. 4.3 평화공원, 조천읍 북촌리의 너븐숭이 애기무덤, 백조일손지지, 알뜨르 비행장, 불타버린 곤을동 마을 그리고 중산간 마을을 지나면서 들은 팽나무의 아픔! 그 중대표적인 예비검속 집단 학살 사건인 모슬포 ‘백조일손’사건의 현장은 충격이었다. 사망자 192명. 도민들은 형체도 알 수 없는 시신을 수습하여 사계리 공동묘지에 '백 할아버지에 한 자손의 땅'이라는 뜻의 백조일손지지 (百祖一孫之地)를 조성하여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기리고 있었다. 5.16 군사쿠데타 당시 23위 강제 이장하여 현재 109위 남아있다. 그때 우리는 박정희의 무덤에 침을 뱉는 정도가 아니라 무덤을 파헤쳐 주마라며 저주했다. 지금은 그 딸이 청와대에 들어 앉아 있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플라치도

* 강요배 화백님의 그림과 사진은 굴렁쇠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왔습니다.

플라치도  chy0167@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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