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과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마치 생태계에서 동떨어진 존재, 혹은 생태계를 지배하는 존재처럼 행동하고 생각해왔다. 비교적 최근에서야 이런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도 생태계의 일부라는 관점을 가지고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뿌리 깊은 고정관념 속에서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인간이 생태계에서 고립된 존재라는 생각 덕택에 인간 자체가 생태계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큰 함정을 파게 되었다. 때문에 생물다양성에 대한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생물 다양성의 보존을 아마존 밀림이나 깊은 심해에서 지구의 생명체로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생명체를 다루거나 몇 마리 남지 않은 코끼리나 코뿔소, 사자 같은 야생동물을 지키는 일로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 자신은?

우리가 한 인간을 지칭할 때 인간을 이루고 있는 세포 중 90%는 미생물이라는 사실은 이제 꽤 잘 알려져 있다. 인간을 구성하는 인간 세포가 10조개인데, 그 위에 살고 있는 미생물의 개체수가 100조개다. 한 명의 인간 위에도 거대한 미생물의 생태계가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코흐가 미생물이 감염성 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낸 이후로 이런 미생물들은 단지 적대적인 외계 생명체들로 인식될 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주변을 수 많은 살균 멸균 제품들로 둘러싸고 위생에 강박적으로 신경쓰며 삶에서 미생물들을 몰아내는데 총력을 기울여 왔다. 하지만 이들이 우리의 삶에 필수적인 존재라는 쪽으로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았다. 2007년 미국 NIH는 1억4천만 달러를 투자한 인간 미생물군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를 시작했는데, 이 연구는 인간의 미생물군을 구성하는 공통된 중심/필수 미생물들이 있는지, 미생물군의 변화가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등을 알아보는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를 필두로 인간의 정상 미생물군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는데, 최근 연구 성과들로는 극단적인 영양상태(비만, 기아 등)와 미생물군의 변화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연구, 미생물군의 변화가 동물에게서 행동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연구, 장내 미생물군의 교체를 통해 항생제 저항성 박테리아 감염이나 자가면역성 염증성 장질환을 치료할 수 있다는 연구 등이 있다. 심지어 개개인의 미생물군이 마치 지문처럼 고유하다는 특성을 이용해 법의학에 이용하려는 시도도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현재는 변화가 있다, 혹은 치료 효과가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지 어떤 기전으로, 어떤 미생물에 의해 이런 작용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기초적인 단계다.

정상 미생물군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밝혀진 사실은 본래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많은 미생물들은 우리 몸 안팎에서 살아가는 무해한 미생물들이라는 점이다. 면역계의 변화가 일어나거나 상처를 통해 혈류 내로 들어가는 등의 내외부적 요인에 의해 균형이 파괴되는 순간 무해한 박테리아가 치명적인 폐렴이나 패혈증을 일으키는 박테리아로 바뀌게 된다. 여기서 또 하나 재미난 문제가 떠오르는데, 과연 본래 무해한 미생물들이 - 혹은 오히려 인체의 면역계 등을 조절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던 미생물들이 - 상황에 따라 병원균으로 바뀐다면 이들을 공생관계로 보아야 할까 아니면 기생관계로 보아야 할까. 여기서 양생생물(amphibiosis)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 학자도 있다. 즉 생물학적 맥락에 따라 기생생물일 수도 있고, 공생생물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현재 기생충으로 분류된 많은 생물들도 임상적 증상을 일으키지 않는 수준에서는 다른 기생충의 유입을 억제하거나 유아기 면역계 형성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들이 늘어나면서 기생과 공생의 관계가 많이 모호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맥락에서 양생생물이라는 개념은 기생충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 보는데 많은 도움을 주지 않을까.

기생충 이야기가 나오면서 흥분해서 이야기가 잠시 곁다리로 흘러갔는데, 다시 인간과 미생물이 전쟁을 벌이던 시대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미생물과 질병의 관계가 밝혀진 이래로 인간은 깨끗한 물, 살균/멸균법, 항생제의 사용 등으로 미생물과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차단시켜왔다. 미생물의 번식력과 생존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하더라도 이 정도의 파상공세를 받게 되면 인간의 정상 미생물군에도 지난 세기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여기서 학자들은 위생가설을 한단계 더 발전시켜 미생물의 다양성이 낮아진 것이 질병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특히 미생물이 전반적으로 줄어든 것이 문제가 아니라 '중심 미생물군'을 유지하고 있는 특정 미생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무균 상태에 노출된다. 무균상태인 수술실에서 제왕절개로 태어나 어머니의 질에 있는 미생물을 피해 태어나고, 모유수유 대신 분유를 먹기 때문에 피부를 통해 얻는 미생물도 얻을 수 없으며 모유에 있는 항체도 받지 못해 면역계 형성에 변화가 생긴다. 가족 구성원의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이 가진 고유의 미생물에 노출되거나 전염성 질병에 노출되는 기회도 적다. 살균효과를 가진 다양한 목욕 욕품이나 청결제, 소독된 수돗물 등등 모두 미생물에 노출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효과를 가진다. 또 이렇게 강제로 미생물들이 제거된 공간에는 어떻게든 다른 미생물들이 그 빈 공간을 차지하게 마련이다. 예를들면 항생제 저항성이 있는 미생물들 - MRSA 같은 - 이 최근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과연 이런 생태적 공백과 연관 지어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여기서 특히 중요한 부분은 어머니에게서 아기로 미생물군이 '이식'되는 과정이 차단되었다는 점이다. 중심 미생물군을 이루는 많은 미생물들이 어머니에게서 아이로 수직 전파 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제왕절개로 태어나 모유수유를 받지 않고 질병 등의 이유로 항생제를 다량 투여 받았다면 이런 중심 미생물군을 구성하는 특정 미생물들이 누락되어 있을 수 있다. 특정 미생물이 누락된 채 자라난 아이가 어른이 되어 다시 아이를 낳는다고 가정해보자. 이 아이에게서 태어난 다음 세대 역시 중심 미생물군 없이 자라나게 될 것이다. 항생제와 항균제품이 광범위하게 퍼진 상황에서 이런 세대들이 반복되었다고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는 18세기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미생물군 구성을 지닌채 살아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이런 미생물군의 누락이 수직 전파 되는 것이라는 사실과 위생가설을 연결해보면, 많은 알레르기성 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들이 가족력을 보이는 것 역시 설명이 가능하다.

인간 미생물군 연구를 통해 재미난 연구들이 많이 나오고 있고 앞으로 의학적으로 중요한 발견들이 많이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연구가 진행되면서 생물들간의 관계가 그렇게 흑과 백으로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개념이 정착될 수 있는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기생충은 생물학에서도 흑에 속하는 - 박멸의 대상이 되는 - 생물들이지만, 자연에는 선악도, 흑백도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분법이 더 많은 상상력과 기회들을 놓치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생물학에서 가장 초반에 배우는 개념이 균형(equilibrium)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다.

참고문헌
1. Blaser, M. J. & Falkow, S. What are the consequences of the disappearing human microbiota? Nature Rev. Microbiol. 12, 887894 (2009).
2. Dethlefsen, L., McFall-Ngai, M. & Relman, D. A. An ecological and evolutionary perspective on humanmicrobe mutualism and disease. Nature 449, 811818 (2007).
3. Rosebury, T. Microorganisms Indigenous to Man (McGraw Hill, New York, 1962)
4. Ley, R. E., Lozupone, C. A., Hamady, M., Knight, R. & Gordon, J. I. Worlds within worlds: evolution of the vertebrate gut microbiota. Nature Rev. Microbiol. 6, 776788 (2008).
5. Blaser, M. J. Who are we? Indigenous microbes and the ecology of human diseases. EMBO Rep. 7,
956960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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