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 다양성 이야기가 나오니 생각나는 이슈 하나. 신기하게도 광물이나 석유, 목재 등의 천연자원이 풍부한 지역에서는 흔히 사람들이 잘 떠올리지 않는 다른 천연자원도 풍부하다. 바로 생물 자원(혹은 유전자원)이다. 최근 또 논란이 된 인간 유전자 특허 등록에 대한 논란도 그렇지만, 생물 자원은 이제 직접적으로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품목이 되었다. 몬산토 같은 대형 종자 회사들이 생물 자원을 닥치는 대로 끌어 모으고 농민들에게는 특정 종자만을 보급하여 생물학적 다양성을 고사시키는 해묵은 문제점은 더 이야기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바야흐로 생태 자원에 대해서도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런 생물학적 해적질의 기원은 옛날부터 있었는데, 현 예수회 교황의 선임자들이 남미에서 가져온 기나나무가 좋은 예다.(교황과 말라리아, 키니네의 관계는 https://www.facebook.com/byontae/posts/596524427042662) 기나나무가 말라리아의 특효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무분별한 남획이 시작되었다. 19세기 키니네가 전시 필수품이 되면서 질 좋은 기나나무를 확보하기 위해 남미에 모여든 열강들이 마구잡이로 가져가면서 멸종 위기를 맞기도 했다. 유럽에서 발명한 유리온실은 열대지역에서 확보한 식물자원을 온대인 유럽에서도 키울 수있는 기술적 배경을 마련해 주었고 초기에는 식물자원 확보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영국 최대의 식물원인 큐가든은 19세기 식물자원 확보에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엄청난 양의 식물 종들을 수집했을 뿐 아니라 단순히 관상용이나 특이한 식재료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환금 작물의 확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큐가든에서의 연구를 토대로 인도에 농장을 확보한 영국은 중국이 독점하고 있던 차 시장에 파고들 수 있었고, 세계 각지에 커피 농장을 퍼뜨려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바나나, 파인애플, 고무나무 등이 전세계로 퍼져나간 것은 모두 식민지 시절에 환금작물로 식물 자원을 쟁탈한 결과였다.

그리고 1980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미국 대법원에서 새로운 박테리아 균주에 대한 특허권을 인정한 것이다. 이 균주가 자연 상태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전까지 살아있는 생물체에 대해서는 특허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생태계의 일부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전자의 중요성이 점차 강조되면서, 특정 유전자로 특정 생명체를 규정지을 수 있다는 오해가 자리잡고 - 여기서 도킨스가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욕을 퍼부어주고 싶지만 - 이런 오해를 바탕으로 특정 유전자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인정해 줄 수 있다는 판결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 유전자가 실제로 유기적인 생명체와 어떤 관계를 맺지 않고서는 아무런 기능을 할 수 없고 그 자체만으로는 별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는 것은 무시한채 말이다. 즉 유전자에 대한 지적 재산권 인정은 과학적 판단을 전제로 한 것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시장 확보를 염두에 둔 경제적, 정치적 판단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동식물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들에 대한 지적 재산권이 인정되면서, 이제 사람들은 마음대로 종자를 뿌리지도, 가축을 번식시키지도 못하게 되었다. 개개의 개체들의 특허권이 회사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씨앗을 사서 '정당한 사용권'을 획득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농사조차 짓지 못하는 것이다. 생물종에 대한 독점적 공급이 이루어지면서 나타난 가장 큰 위협은 농업 구조 자체가 거대 종자 회사에 종속되고 농민들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는 문제겠지만, 그 안에 품종이 단일화 되면서 식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동식물의 품종 다양성이 급속도로 줄어가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FAO는 2007년 세계에 소, 양, 염소, 돼지, 말, 닭 등 사육되는 동물의 품종이 약 7600여 가지가 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이들 중 20%가 멸종 위기에 있으며, 2001년 부터는 매달 한 품종씩이 멸종되어 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첨부했다. 종 내 다양성 위기는 더욱 심각하다. 지난 세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식량 요구량도 그에 따라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때문에 가장 많은 생산량을 보이는 몇몇 품종만이 집중적으로 양산되었고 다양성 확보에 대한 인식은 부족했다. 현재 미국에는 370만 마리의 홀스타인 젖소가 있는데,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서는 최소한 100여 마리의 교배용 소가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확보된 것은 절반에 불과하다. 결국 이런 다양성의 병목 현상을 막기 위해 아직 어느정도 품종 다양성이 보존되어 있는 아프리카 같은 지역을 찾게 된다. 미국은 품종 개량을 위해 짐바브웨 등에서 다양한 품종의 소를 수입해서 자국 내 특허권을 걸어두었다. 하지만 그 로열티 중 어느 부분도 지난 수백여년간 품종 개량을 해온 짐바브웨 소규모 목축업자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그런가하면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 다양성의 파괴를 낳는 경우도 있다. 2006년 게이츠 재단과 록펠러 재단은 아프리카에서 녹색 혁명을 일으키기로 했다. 1960-70년대 아시아에서의 녹색 혁명을 재현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개량을 통해 생산량을 극대화 시킨 벼, 옥수수, 밀 등 극히 일부 품종만이 도입되었고, 결과적으로 지역 내 품종 다양성을 훼손시켰다. 일단 단기간에 밀 생산량을 10배, 쌀은 3배가 늘었지만, 개량 품종이 막대한 양의 물과 비료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지하수가 고갈되고 지력이 고갈되었다. 결과적으로 제시간에 물과 비료를 댈 수 있는 대형 지주들이 이득을 보았고, 소규모 농부들은 토지를 팔아 빚을 내어 농사를 짓게 되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농업 혁명이 소규모 농민들을 소작농으로 만들어 빈곤의 굴레를 형성하는데 일조한 셈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대하는 농축산물에서 조차 다양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사회적 구조가 다양성을 늘리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면 이는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과학은 다른 소비재와 달리 나누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더욱 풍성해진다는 특성이 있다. 물론 품종 개량이나 유전자 조작을 통해 사람들에게 더 나은 작물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학자나 기술자, 회사들에게 분명 보상은 있어야 한다. 특허권을 통해서든 다른 방법을 통해서든. 결국 무조건 특허권을 보장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특히 생명체에 특허를 내는 과정에서는 이를 제공해준 대상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심해에서 발견한 연충에서 항암물질을 발견했다면, 항암물질을 특허내 연구 개발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겠지만 그 일부는 해양 생태계 보전에 돌아갈 수 있는것 아닌가. 아니면 아마존 밀림의 식물에서 채취한 약용 물질로 항말라리아제를 만들었다면 회사는 아마존의 생물다양성 보전 사업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앞서 언급한대로 특정 품종의 소를 수입해 타국에서 특허를 인정 받았다면, 본래 그 품종을 개량해 왔던 지역 주민들에게 마땅한 대가가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참고문헌
1. FAO, 2004. International Treaty on plant genetic resource for food and agriculture. Rome: FAO.
2. FAO, 2007. The state of the world's animal genetic resource for food and agriculture. Rome: Commission on genetic resources for food and agriculture.
Gura, S. 2008. 'Livestock breeding in the hands of corporations.' Seedling. Jan: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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