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인가 기억은 안나지만 작년 언젠가 내가 한 처방을 삭감한 심평원의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하였고
그것이 인정되어 삭감이 취소되고 환급을 받았던 날 진정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논문이 채택된것 보다 더 기뻤다.

이의신청을 하기 위해 내가 한 의료 행위가 의학적으로 적절하며 적법한지에 대해 증명해야 했고 이를 위해 수많은 논문과 관련 증거들을 명시하여 결국 인정을 받게 되었다.

환급받은 액수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자존심을 걸고 의사로서 일한다는 것,
다른 이해관계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환자의 치료를 위해 노력한 결과에 대해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는 것 때문에
난 이의제기를 한 것이다.

그렇게 이의제기를 하지 않으면 해당 조항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지고, 환자를 위해서 불리한 조항인데도 그냥 수용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어떤 것이 적절한 의료 행위인가의 기준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당장 내 손해가 아니라고, 당장 나에게 위해가 되는 것은 아니니 그냥 넘어가는 것은 의사의 책임 방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날 몇일 자료를 준비해서 이의신청을 했다.

그것은 내 자존심 문제였다.

그런데 이제 그런 이의제기도 하기 어렵게 되었다. 얼마전 심평원이 '2012년 국회 국정감사 지적사항 후 시정조치 결과보고' 라는 걸 공개했는데 의료 기관이 무분별하게 이의신청을 제기하고 있어, 앞으로는 이의신청을 많이 제기한 병원에 대해서는 현장 실사를 나가겠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현장 조사를 강화하기 위해 인력을 확대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이의 신청이 많은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맞춤형 현지방문'을 진행하고 현장 지도를 해야하기 때문에 이런 직원들은 내근 일수를 줄이고 현장 근무 일수를 늘일 계획이라고 했다.

심평원은 왜 이의신청이 많은지
현행 기준이 의학적으로 보았을 때 무엇이 문제인지
이의 신청이 잦은 항목에 대해 그 기준을 점검하기 보다는 귀찮게 자꾸 이의신청을 하니까
현장 조사를 하여 모니터링을 강화함으로써 이의 신청 자체를 못하게 하겠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깡패에게 맞고 피해를 당한 사람이 경철서에 가서 신고를 하니 깡패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피해를 당한 사람을 조사하여 책임을 묻겠다고 하는 경찰이나 마찬가지 형국이다.

항상 진료를 하면서 내 진료가 보험 항목에 들어가는지 아닌지 먼저 신경을 쓴다.
이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검사나 약을 선택하기 보다는 보험에 걸리느냐 안 걸리느냐를 먼저 생각한다.
전문가로서의 지식이나 학문의 발전을 논하기 전에 나는 이미 현실 정책에 순응하고 위축된 진료를 해 온지 오래다. 그것은 우리나라의 의사 모두가 그럴 것이다.

그런데 그 나마 이의신청도 원할하게 하지 못하게 될 것같다.
현장 조사를 하면 그 항목만을 모니터하지 않는다. 해당 의사의, 혹은 의료기관의 여타 의료 행위를 포함하여 적극적으로 모니터하게 될 것이다.

앞으로 심평원에서는 나에게 HER2 양성 환자에게 허셉틴을 쓴 이유에 대해서도 보고서를 요구할지 모르겠다.
내가 찔러서 피 한방울 안나오게 완벽한 진료를 하는 의사가 아닌 이상 심평원의 현장 조사에 뭔가가 걸리게 될 것이다. 나는 다시는 이의신청 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결정을 한 사람들 중에 혹은 그 가족 중에 누군가가 아파서 병원에 오면 의사에게 최선을 다한 진료, 돈 생각하지 말고 최고의 치료를 해달라고 말하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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