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벼룩에 이은 체외기생충 빈대 이야기입니다. 옛부터 사람들과 가장 친분이 깊은(?) 기생충이기도 하지요. 벼룩과 이와 빈대라는 민담도 있고, 지금도 흔히 쓰는 빈대 붙다 같은 표현도 있는데다 빈대떡이라는 음식도 있고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도 있지요. 이처럼 빈대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에 깊이 들어와 있는 기생충이었습니다. 옛날에는 살아있는 빈대를 으깨어 ‘메스꺼운 치료제’로 쓰기도 했다고 합니다.(…) 어쨌든 주거환경이 개선되면서 국내에서는 급격히 사라져 이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죠. 빈대의 생김새도 모르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진중공업에서 노동운동을 했던 김진숙 위원장님의 책 소금꽃 나무를 보면 80-90년대에도 환경이 열악했던 곳에서는 여전히 빈대가 많았음을 알 수 있지요.

빈대는 짙은 적갈색이며 몸길이는 5mm 안팎입니다. 불완전변태를 하기 때문에 유충때도 성충과 모습이 거의 동일하지요. 몸길이만 짧습니다. 흡혈을 하기 전에는 납작한 몸체를 지니고 있어 메트리스 접힌 부분, 벽 사이의 작은 틈, 침대 프레임의 사이사이, 마루바닥 틈새, 가구나 옷 사이 등 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어 있습니다. 흡혈을 마친 빈대는 적갈색의 - 마른 피 색깔 - 배설물을 내놓는데, 침대 주변이나 메트리스 등에 흘러내린 자국이 남게 됩니다. 이 자국을 통해 빈대의 은신처를 찾아내기도 하죠. 또 빈대는 특유의 냄새가 있어서 빈대가 아주 많을 경우 은신처 근처에서 냄새를 맡아 찾아내기도 합니다. 빈대의 생존능력은 상당한데 먹이 없이 4개월 이상 살 수 있고, 배불리 흡혈한 상태에서는 최장 18개월까지 살 수 있습니다. 게다가 먹을게 없으면 서로 잡아먹기도 하기 때문에 - 정확히는 체액을 빨아 먹는 것이지만 - 먹이가 없어도 상당기간 생존이 가능합니다.

한동안 주거환경의 개선 등으로 전세계에서 빈대가 많이 사라져가는 추세였는데, 요즘은 의외로 런던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빈대가 다시금 활개를 치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외국에 살다 귀국한 가정에서 빈대가 발생했다는 보고가 몇건 들어와 있습니다. 따로 관리대상에 들어가는 체외기생충이 아니기 때문에 질병관리본부에 보고가 들어온 건수가 세건이지, 실제로 세스코 같은 민간업체에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는 최근 급격히 늘었다고 합니다. 한국 등의 지역보다도 영국이나 미국 같은 서구지역에서 빈대의 피해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은 어디선가 재유입되어 그렇게 된 것도 있지만, 침대를 많이 사용하고 카펫 등 빈대가 숨기 좋은 은신처가 더 많이 확보되는 서양식 주택의 특성 때문에도 그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여행객 등 인구유동이 더 많은 런던이나 뉴욕 같은 대도시는 타 지역에서 빈대가 재유입되기도 그만큽 쉽겠지요. 최근 대형 호텔들이 골치를 썩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빈대는 딱히 질병을 옮기지는 않지만, 물리면 무척 가렵습니다. 여기에도 개인차가 있는데 물린 사람 중 약 1/3은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 비해 어떤 사람들은 빈대가 걸어간 자국마다 염증반응이 일어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 정도의 피부반응을 보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 독특한 점은 빈대가 나병, 브루셀라, 샤가스, 황열 등 실험실 상에서는 다양한 질병을 옮길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지만, 실제 생태계 내애서는 질병을 옮긴 예가 없다는 점입니다. 어떤 기전으로 체내에서 이런 병원균의 발생과 전파를 억제하는 것인지도 하나의 연구 대상이기도 하죠.

빈대는 방제하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체외기생충이나 해충 중 살충제 저항성이 가장 높은 녀석들 중 하나이기 때문이죠. 때문에 그냥 집 안 가구를 다 버리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사람도 있지요. 런던 시내에서는 길에 멀쩡한 가구나 침대 프레임, 메트리스 등이 버려져 있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적지 않은 케이스가 빈대에 오염된 가구를 버린 것입니다. 멋모르고 주워왔다가는 다음날 빈대에게 헌혈을 하는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지요. 올 초에는 영국에서 빈대에 오염된 쇼파에 소독용 알콜을 뿌려 방제해 보려던 아주머니가 실수로 알콜에 불이 붙어 집이 전소된 이야기도 전해졌습니다. 속담 그대로 빈대 잡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죠. 그만큼 빈대가 짜증나고 잡기 어렵다는 의미기도 하겠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틈 안이나 메트리스 사이에 숨어 있기 때문에 직접 살충제에 노출시키기도 어렵구요. 때문에 연막소독 등의 방법을 많이 사용합니다.

빈대의 가장 독특한 특성이라면 바로 짝짓기입니다. 굉장히 거칠거든요. 빈대는 짝짓기 과정에서 외상성 사정이라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암수모두 생식기관이 있지만, 암컷의 생식기관은 단순히 산란에만 쓰입니다. 수컷은 암컷의 몸 아무곳에나 생식기를 찔러 넣고 체액 안에 사정을 하지요. 이렇게 들어간 정자들은 몸 안을 헤엄쳐가 난소에 도달해 수정을 시킵니다. 실험실 상황에서처럼 개체 밀도가 높은 환경에서는 이런 외상성 사정에 너무 많은 상처를 입어 암컷이 죽는 경우도 많지요. 물론 짝짓기 시기에 도달한 수컷들은 암컷 수컷 가리지 않고 찔러 넣어 사정을 하기 때문에 실험실에서 키우던 집단이 거의 몰살당하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여튼 가장 거친 짝짓기 과정을 보이는 동물 집단으로 손에 꼽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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