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본과시절, 인턴시절. 다른 집안 살림에는 영 소질이 없었던 편이었지만 그래도 하나 잘 하는 것은 바로 세탁.
세탁후 다림질이 필수(?)인 셔츠를 즐겨 입는 편이었는지라 빨래를 돌릴 때에는 색깔옷/흰옷, 소재별로 구분해서 세탁을 했었다. 그리고 수 많은(?) 셔츠들을 모아서 꼬박꼬박 다림질도 했었다.

이런 나에게 주변에서는 "희안한 놈" "그냥 티셔츠 입어"라는 말로 나의 희안한 옵세니즘을 꺾기 위해 노력했지만 의대 입학시절부터 시작된 7년 셔츠 다림질 외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나를 멈추게 하지 못했다. 빨래 건조기를 쓰면 옷이 빨리 상한다는 이유로 인턴때에도 세탁후 직접 건조대에 옷을 널어 말리고 다림질을 했을 정도니, 하루종일 방망이 두들겨 대던 조선시대 여인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열심히 한 축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시간은 흘러 어느덧 외과 1년차가 되었고, 현재 몸담고 있는 병원의 외과 파트 중 땡보(?)파트에서 빈둥거리고 있는 처지이지만 그래도 바쁜 것은 어쩔 수 없나보다. 학생시절 세탁비를 아끼기 위해 일일이 셔츠를 다림질 했던 나는 수입이 있는 직장인이라는 것을 핑계로 오프때나 회식때 입고 나갔던 블라우스나 남방, 손상되기 쉬운 소재로 만든 티셔츠, 심지어 청바지 마저 세탁소에 모조리 맡겨 버린다.

세탁소에 전화를 하고 의국 비서에게 세탁소에서 오면 건네주라고 옷 보따리를 주면 며칠 뒤 언제 옷을 가져다 줄까요 라는 세탁소 아저씨의 전화가 온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옷은 기분좋게 깔끔히 처리되어 있다. 이렇게 대부분의 겉옷을 세탁소에 맡기면 세탁비가 많이 나올 것 같지만 일주일에 4일+회식날만 병원 밖을 나가는 처지이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이 들지는 않는다.

속옷이나 타월은 1주일치를 쌓아놓는다.
병원 본관에 위치한 의국 숙소에는 세탁기가 없는지라 친히 별관에 있는 전공의 숙소까지 원정을 나가야 한다. 커다란 쇼핑 바구니에 1주일치 타월과 속옷, 몇몇 옷가지를 구겨 넣고 전공의 숙소를 가면 드럼 세탁기가 3대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는 빨래를 널어 놓을 만한 공간이 없기 때문에 반드시 세탁기의 건조 기능을 써야 한다는 것.

그리고 공용으로 쓰는 세탁기의 건조 기능이 그렇게 신통하지 않은 편이라 1주일치 빨래를 다 돌리고 건조를 하면 축축한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에 반드시 최소한 세탁기 2대에 나눠서 돌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건조"버튼은 한번 더 눌러야 한다는 것. 인턴 때 까지만 해도 절대로 건조 기능은 안썼는데......

이번주에는 빨래가 유독 많았다.
그래서 황금연휴라 많은 전공의들이 오프를 나간 틈을 타 전공의 숙소 샤워실의 세탁기 3대중 3대를 점령하여 폭풍같은 세탁을 했고, 세탁기 3대가 동시에 돌아가던 5시간동안 빨래를 하러 온 다른 여자 전공의들은 씁쓸히 발길을 돌려야 했을 거라 사료된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난 소중하니까.
그리고 오늘은 빨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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