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2일 밤 11시 40분. 경희가 도담이 엄마가 되었다. 도담이가 뱃속에 있을 때 경희는 입덧도 안하고 감기도 안 걸리고 별로 붓지도 않고 큰 탈없이 잘 지냈다. 출산 직전까지 근무를 했다. 초산인데 10시간 진통을 했지만 정작 배가 아프다 싶었던 건 2시간 정도. 그 와중에도 경희는 카톡으로 문자하고, 페이스북에 들락달락 거리고, 크게 힘들지 않았나 보다. 예정일에 딱 맞춰 세상에 나온 도담이, 엄마를 성가시게 안하는 착한 아들이다.  

오늘 퇴원하는 경희. 뭐 먹고 싶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아무거나 다 먹고 싶다며 거절을 안한다. 주섬주섬 빵을 한 바구니 사가지고 병실에 가 봤더니 산모가 붓지도 않고 아주 쌩쌩하다. 애기 황달검사를 했는데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며 퇴원 준비 한창이다. 옆에 있는 남편이 더 초췌하다. 행복해 보인다. 좋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경희는 지금의 삶 자체를 사랑하고 마음껏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밝은 경희의 표정.

동아리-의학을 쉽게 푸는 모임-에서 의대생 경희를 처음 만났다. 멀끔하게 키크고 별로 말이 없는 사람, 지나치게 침착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표정은 차분하다 못해 다소 침울해 보이기도 했다. 모임이 있어도 있는듯 없는 듯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 2008년 내과 레지던트가 되었다. 자아가 없는 1년차, 늘 멘붕인 1년차 시절은 몇일씩 씻지도 않고 밥을 언제 제대로 먹었는지도 모른 채 시간이 간다. 그러다가 홍역을 앓는다. 이 녀석도 한번 도망갈려고 했었다. 몇 시간을 당직실에 쳐박혀 두 눈이 퉁퉁 붓게 울다가 짐을 싸려고 했던 것 같다. 내가 땀을 뻘뻘 흘리고 그녀를 끌고 가 시원한 맥주를 마신 것으로 기억하는 걸 보면, 아마 지금 이맘때 쯤 되는 것 같다. 그녀는 참으로 심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귀걸이 사주고 책 사주고 밥 사주고 신촌 거리를 헤매면서 걷다가, 다시 병원으로 데리고 들어온 기억이 난다. 그때 그녀의 표정은 참으로 어두웠다. 그렇게 1년차를 마쳐갈 무렵 2009년 2월의 중순, 경희는 유방암을 진단받았다. 3기A 혹은 3기B.

경희는 수술전 항암치료를 6개월 동안 받았고 유방 전절제술에 이어 방사선치료까지 다 받고 2010년 2년차로 복귀하였다. 치료를 받기 시작한 2009년 3월부터 다시 내과 레지던트로 복귀하기 직전인 2010년 2월까지 우리는 1년동안 함께 ‘한쪽 가슴으로 사랑하기’를 썼다. 나는 마음속으로 경희가 너무너무 안쓰러웠지만 최대한 루틴하게 안부를 물었고 아무것도 아닌양 종양내과 의사로서 그녀의 질문에 답해주었다. 절대 위로하지 않았다. 위로를 하다가 내가 먼저 무너질 것 같아서. 원래 별 말이 없는 조용한 아이라 만나도 별로 할말이 없는 뻘쭘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난 원고 독촉을 빌미로 경희네 집에도 찾아가고 글 못 썼다고 핀잔주고, 명절날도 나와서 나한테 원고 교정 받으라고 하면서 경희를 괴롭혔다. 나는 경희가 시계 바늘이 돌아가는 것만 바라보며 남몰래 걱정하고 우울해 하는 청춘이 되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경희는 나의 이런 쓸데없는 걱정이 무색하게도 치료 잘 받고, 레지던트로 복귀하고,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였다. 경희가 이렇게 정상적인 생애 주기를 밟아나가는 것은 수많은 젊은 유방암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 있었다. 본인은 모르고 있었겠지만. 나는 학회에 가면 다른 병원에서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시는 선생님들로부터 그런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자기네 환자들에게 경희는 희망의 슈퍼맨이라고.

이제 disease free survival 3년이 지나가고 있다. 삼중음성유방암은 2-3년을 무사히 넘기면 잘 재발하지 않는다. 전절제상태인 유방도 슬슬 복원수술을 계획할 때가 되었다. 유방암 치료를 받은 젊은 환자가 임신하고 아이를 낳으면 재발율이 더 감소한다. 그 이유는 잘 모른다. 우리는 그것을 healthy mother effect 라고 부른다. 경희는 그런 그룹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나는 그녀의 주치의로서 말 못할 몇가지 고민을 함께 나누어야 했다. 불현듯 찾아오는 재발의 두려움, 난소 기능이 떨어져 있는 상태인데 자연 임신이 될까, 한달전 유방 초음파 검사에서 발견된 작은 몽우리, BRCA 검사를 안한 경희가 졸리의 예방적 유방 전절제술 소식을 듣고 지금이라도 검사를 해봐야 하나 다시 고민하게 된 거… 밝고 행복해 보이는 경희의 마음 속에도 무수한 고민과 갈등이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아무 일도 아닌 듯 나에게 그런 자신의 고민을 슬쩍 비춘다. 나는 별로 적극적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야, 너 fellow 1년차인데 논문 좀 썼어? 애 낳고 나면 열심히 스터디하고 논문이나 좀 써라. 너 너무 노는거 같아. 너 알레르기 파트 선생님들께는 잘 하니? 박중원 선생님 잘 모시고 있어? Fellow가 되면 레지던트 때처럼 패시브하게 굴면 안되. 공부도 열심히 하고, 논문도 많이 쓰고, 학회도 열심히 다니고 그래야지. 주말에 남편이랑 놀러만 다니지 말고.’

이렇게 짜증나고도 별볼일 없는 일상, 그러나 그 일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를 알기 때문에 경희는 내가 그렇게 말도 안되는 잔소리를 하면 씩 웃는다. ‘네 그렇게 할게요. 언니’ 경희는 내가 만난 수많은 유방암 survivor 중에 가장 쿨하고 긍정적이고 행복한 survivor 중의 한 명이다. 당분간 병원일을 잊고 도담이와 남편과 함께 잘 지내다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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