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혈흡충처럼 일부일처제의 목가적인 삶을 영위하는 기생충들도 있지만, 정반대의 경우도 많이 있다. 오징어가 속해 있는 여러 무척추동물들은 외상성 사정(traumatic insemination)이라는 방법을 통해 짝짓기를 한다.(1) 어려운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해 놓았지만, 적나라하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수컷의 암컷 몸 아무곳에나 생식기를 찔러 넣고 사정을 하거나 몸을 파고들 수 있는 특수한 형태의 정자 주머니를 - 오징어의 경우에서 보았듯 - 까놓는 경우도 있다.


물론 몸에 구멍이 나기 때문에 암컷에게는 매우 불리하다. 감염의 위험도 있고 정자 자체가 들어와 면역반응을 일으켜 에너지를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형태의 짝짓기 방식은 무척추동물 여러 종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왜 이런 무자비한 방식이 여러번이나 진화하게 되었는지는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만, 하나 설득력 있는 가설은 다른 수컷과의 경쟁에서 나타는 설이 있다. 어떤 동물들은 사정 후 끈끈한 물질을 분비해 암컷의 생식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다른 수컷이 알들에 접근할 수 없도록 물리적으로 막아버리는 방법이다. 그럼 생식기를 통해 정자를 넣을 필요가 있나, 그냥 몸체를 뚫어 정자가 몸 안에 스며들도록 해버리자는 과정에서 이런 짝짓기 방식이 진화했다는 가설이다.

어쨋든 본격적으로 짝짓기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첫번째 주자는 거머리. 거머리는 자웅동체다. 보통 자웅동체라고 하면 암수생식기가 둘 다 있어 자기 스스로 번식이 가능할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고 다른 녀석과 짝짓기를 해야만한다. 자체 생식이 불가능하다면 자웅동체의 장점이 뭐냐, 생각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자신과 동일한 종에 속하지만 다른 성을 가진 짝을 찾는것 보다 동일한 종이라면 누구나 산란을 할 수 있는 쪽이 여러모로 공간 점유에서 효과적이다. 번식하기 위해 필요한 개체수가 그만큼 적어도 된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거머리의 짝짓기 과정은 굉장히 독특하고 좀 요상하기 때문에 아직도 전체적인 과정은 다 밝혀지지 않았다. 짝짓기 계절이 되면 거머리들은 몸 안에서 정자와 알들을 만들어 내기 시작하고, 성적으로 성숙한 두마리의 거머리가 만나면 불꽃 튀는 짝짓기가 시작된다. 두마리는 뒤엉켜 산란관 가까운 곳에 정자 주머니를 박아 넣는데, 여기서 스며나온 정자는 몸을 파고 들어가 알에 도달한다. 몸을 파고 들어간 정자에 의해 수정이 완료되면 알은 일종의 고치에 담기는데, 고치에 둘러 싸인 상태로 어미의 몸 밖으로 나온다. 거머리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고치가 완전히 단단해지는데 며칠이 걸리고, 고치가 단단해지기 전까지는 포식자의 공격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어미 거머리가 몸으로 고치를 둘러싸 방어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남의 고혈을 빨며 살아가는데다 침대에서는 무지막지하게 거칠지만 아이에게는 자상한 부모랄까.

거머리는 시작에 불과했다. 빈대에 비하면 거머리의 침대 매너는 매우 신사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 빈대의 성생활이 얼마나 거친가하면, 실험실에서 빈대가 마음껏 짝짓기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면 짝짓기 과정의 부상으로인해 괴멸 상태까지 간다. 빈대는 아예 생식기 자체를 상대방에 꽂아 넣고 사정을 한다. 암컷도 생식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관은 오로지 알을 낳는데만 사용된다. 또 수컷은 생식기에 다른 수컷의 정자를 감지할 수 있는 기관이 달려 있어, 이미 다른 수컷이 사정을 하고 간 암컷과 짝짓기를 할 때는 짝짓기 시간도 줄어들고 사정량도 낮아진다.

림프나 혈액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닫힌 순환계를 가진 인간과 달리 곤충들은 혈림프(hemolymph)라 부르는 액체 속에 모든 장기가 담겨 있는 열린 순환계 형태를 띄고 있다. 따라서 몸 안에 아무데나 정자를 집어 넣으면 알이 있는 곳까지 별 어려움 없이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이렇게 몸 아무데나 생식기를 찔러 넣는 방식은 암컷에게 매우 불리하다. 짝짓기 과정에서 생긴 상처는 감염 등의 요인으로 암컷을 취약하게 만들기 문이다. 실제로 너무 과도한 짝짓기를 당한 암컷은 수명이 크게 줄어든다.

빈대의 무차별적인 짝짓기 방식은 꼭 암컷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데, 동성끼리의 짝짓기도 흔하다. 보통 수컷 빈대는 암수를 구별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크기를 측정해 사정을 하는데, 막 흡혈을 마친 빈대가 가장 많은 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막 흡혈을 마친 상대라면 암수를 가리지 않고 몸 안에 찔러 넣는다. 이렇게 공격적이고 무차별적인 짝짓기 방식 때문에 앞서 언급했듯 실험실에서 다량의 빈대를 한데 넣고 사육할 경우 짝짓기 자체 때문에 죽는 빈대들이 속출하게 된다.

게다가 빈대는 종도 가리지 않는다. 사람을 무는 빈대는 크게 두개 종이 있는데 온대 지역에 서식하는 종과 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종이 있다. 이 둘을 한데 두면 서로 종을 가리지 않고 짝짓기를 하는데, 일반적으로 다른 종의 정자 자체가 강한 면역반응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기도 하지만, 때로는 알이 수정되어 혼종이 탄생하는 경우도 있다.(2)

그러니 밤에 빈대에 물리고 있다면, 비단 흡혈만 당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몸 위에서 파티가 벌어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

1. Arnqvist, Gran; Rowe, Locke (2005-07-05).Sexual Conflict (Monographs in Behavior and Ecology). Princeton, NJ:Princeton University Press. pp. 8791.
2. Newberry, K. (July 1988). "Production of a hybrid between the bedbugsCimex hemipterus and Cimex lectularius". Medical and Veterinary Entomology (The Royal Entomological Society) 2 (3): 29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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