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매체에서 소개된 사진이 시선을 끌었다. 단체로 머리를 빡빡 깎은 건장한 26명의 남자들 모습인데, 자세히 보니 앞 줄 한가운데에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앉아있고, 그 왼쪽에도 역시 대머리의 귀여운 어린애가 보인다. 사진 아래로 이어지는 글 내용을 읽어보니 사연인즉....  

가운데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는 전직 미국 대통령(제41대, 1989~93) 조지 HW 부시(George Herbert Walker Bush)이고, 어린애는 백혈병으로 치료를 받고있는 두 살배기 사내아기 패트릭(Patrick), 그리고 사진 속의 건장한 남자들은 부시를 모셨던 비밀경호(Secret Service detail) 대원들이다. 패트릭이 백혈병에 걸려 치료받으면서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자 아빠의 옛 동료 경호대원들이 함께 삭발하고 투병을 돕는 모금에 나섰다. 그들의 보스였던 전직 대통령이 모금에 힘을 보태고 아이에게 용기를 주려고 머리를 깎은 것이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에 나란히 푸른 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은 여느 조손(祖孫) 할아버지와 손자의 사진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완전히 남남이다. 아이가 항암치료를 이겨내고 건강히 자란다면, 그때 알게 될 것이다. 약 3억1500만 명의 미 국민을 통치하고 세계 질서를 호령했던 전직 백악관 주인이 자신의 투병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함께 삭발했다는 사실을...

아이의 목에는 밴드가 붙여져 있는데 항암제 주사를 맞았던 장소이다. 생존한 전직 미 대통령 가운데 최고령인 HW 부시는 혈관성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을 앓고 있다. 고령에 몸까지 불편한 그가 ‘삭발 캠페인’에 동참한 것은 백혈병 환우 가족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헤아리고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패트릭의 친구들(Patrick's Pals)
치료비를 모금하기 위해 홈페이지 개설

위 사진들은 24일(현지시간) 네티즌과 세계 언론의 시선을 모은 이 사진은「패트릭의 친구들(Patrick's Pals)」이라는 단체가 이날 홈페이지(www.patrickspals.org)에 올린 것이다. 이 사이트는 패트릭의 치료비를 모금하기 위해 최근 개설됐다. 「패트릭의 친구들」 측은 부시의 삭발과 관련, “대통령 내외의 배려와 염려에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사진은 부시 전 대통령 측 대변인 짐 맥그레스(Jim McGrath))의 트위터(@jgm41)에도 올랐다. 이를 팔로어가 92만 명 가까이 되는 빌 클린턴(Bill Clinton, 66세, 42대 1993~2001) 전 대통령이 리트윗하면서 널리 퍼졌다. 클린턴은 부시를 별칭인 ‘41’(41대 대통령의 의미)으로 호칭하며 “당신이 한 일을 사랑한다”고 썼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도 “대단히 존경스럽다”고 썼다.


조시부시 대통령 딸아이도 네 살 때 백혈병으로 숨져
바바라 부시 여사가 들려준 이야기는 ...


1953년 HW 부시는 막 네 살이 된 딸 로빈(Pauline Robinson Bush)을 백혈병으로 잃었다. 1946년 태어난 장남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67세, 제43대 미국 대통령)에 이어 1949년 둘째로 얻은 딸이었다. 지난해 11월 영국 데일리메일이 전한 바에 따르면 HW 부시의 부인 바버라 부시(Barbara Pierce Bush, 1925~) 여사는 손녀 제나 부시(조지 W 부시의 둘째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금발머리에 얌전한 아이였지. 어느 날 로빈이 기운이 없어 병원에 데려갔더니 백혈병이라고, 2주 정도 더 살 거라 하더구나. 백방으로 치료방법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어느 날 아침 아이 머리를 빗기는데, 영혼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어. 병 진단을 받고 일곱 달 더 산 거지.”  부시 여사는 “아이의 짧은 삶이 우리 부부로 하여금 이 생에서 좋은 일을 하도록 이끈 것 같다”고도 회고했다. 또 “남편이 요즘도 종종 ‘죽으면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사람이 로빈’이라는 말을 한다”고 했다.



한국의 전 대통령들은 어디에 있는가
HW 부시는 올해가 퇴임 20년째다. 그는 지난 15일 백악관에서 열린 자원봉사 공로상 ‘포인츠 오브 라이트 어워드’ 시상식에 참석했다. 이 상은 그가 재임하던 1991년 제정됐다. 여느 미국 전직 대통령들도 활동과 공로를 통해 언론에 등장한다. 퇴임 후 인권운동에 주력한 지미 카터(88)는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클린턴은 비영리 단체인 클린턴 재단을 운영하고 있다. 조지 W 부시도 최근 아프리카를 방문해 테러 희생자들을 기렸다.

 전직 대통령들이 불행한 최후를 맞거나 정쟁(政爭)의 대상이 되고 숨겨둔 재산 때문에 압수수색까지 당하는 우리 경우를 생각하게 된다. 국민의 사랑과 박수를 받으며 이웃처럼 편안하게 어우러지는 전직 대통령을 우리는 언제쯤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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