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뉴스를 보니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연명의료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권고안이 나왔다고 한다.
http://www.docdocdoc.co.kr/news/newsview.php?newscd=2013073100011

 요지는 회생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고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대해 의료현장에서 발생하는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특별법 제정 등 제도화를 권고한다는 내용이었다. 내용만 놓고 보면 좋은 내용이고 분명 진일보 한것이긴 한데, 시민단체나 종교계에서는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권고안 내용에, 환자의 의사 표현이 어려울 때에는 가족에 의한 환자의 의사 추정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이다. 연명의료의 중단이 생명을 경시하고 자칫 잘못하면 대리인에 의해 악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시민단체나 종교계의 우려이다.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911364

 글자 그대로 놓고 보면 시민단체나 종교계의 우려도 이해는 간다. 남용되거나 악용되어 생명경시풍조가 생기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연명의료 방안대로 법제화되면, 가족 대리 결정 방식이 고착될 우려가 있다고 우려한다.

하지만 막상 의료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번만 병원을 와서 임종하는 환자를 한번만 보았다면 이런 이야기가 안 나왔었을 것이다. 현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전혀 모른 채, 책상에서 글자 그대로 해석만 하다 보니 이런 우려가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사망원인 1위인 암의 경우만 해도 매년 12만명이 암을 진단받고 매년 5만~6만명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 5~6만명이 현재는 어떻게 죽어가는가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8/01/2013080100156.html

 우리병원에서 자료를 모아본 적이 있는데, 현재 병원에서는 환자가 의식을 잃고 사경을 헤맬 때가 돼서야 환자 대신 가족이 연명 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있다.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자료로는 지난 2011년 내과에 입원해 암으로 사망한 172명을 분석한 결과, 10명 중 9명(89.5%)이 대표적인 연명의료 심폐소생술을 거부했다. 이런 결정의 99%를 환자 본인이 아닌 가족이 했다. 결정이 이뤄진 것도 대부분 임종 일주일 전이다. 심한 경우 임종 하루 이틀 전에 심폐소생술을 안 할 목적으로 환자 가족들이 싸인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현재 진료현장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는 크게는 아래의 네가지 이다.

첫째, 환자에게 질병의 상태를 정확히 말하지 않기를 바라는 보호자 문화

둘째, 외래나 입원에서 환자 본인과 충분히 질병의 상태와 나쁜 예후에 대해 미리 상담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충분한 시간 및 전문적인 완화상담 인력 부족

셋째, 체계적인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의뢰 시스템 및 기관 부족

넷째, 사회적 지원의 부족


말기 암환자에게 죽음이란 하나의 자연스러운 과정이지 치료의 실패나 생명경시가 아니다. 환자들이 사전에 연명 의료에 대한 의사 표시를 명확히 하는 문화가 활성화되고, 환자에게 직접 임종 단계를 말하도록 하는 것이 우선적으로 이루어 져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책상에 앉아서 펜대를 굴리기 보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그래야 문제의 본질이 보이고, 제대로된 해결책이 나오게 된다. 

가장 시급한 것은 체계적인 호스피스 완화의료의 의뢰 시스템을 만들고, 전문적인 완화의료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의 노력에 대해 그에 맞는 지원을 해주는 일이다.

현재 우리병원에는 호스피스실(http://hospice.snuh.org/) 이 있다. 전문적인 상담인력이 말기 암환자와 가족을 돌보며, 이들이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여러 직제의 사람들과 다학제적 팀 협진을 하며 계획을 세우고, 진료를 하고 있다. 하지만, 호스피스 상담을 하고 받는 돈은 민망하게도 0원이다. 수가 자체가 아예 없다. 호스피스 상담으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몇시간씩 상담을 하고 말기암환자와 가족을 전인적으로 돌보는 전문적인 의료행위에 대해 우리 사회가 0원의 가치밖에 부여해줄 수 없냐는 것이다. 병원도, 정부도, 사회도 지원을 해주지 않는 상태에서, 개인적인 믿음과 봉사정신으로 말기 암환자를 돌보는 전문인력과 호스피스 기관에게 지원이 절실하다. 호스피스는 단순한 무료봉사가 아니라 전문적인 의료행위이기 때문에 그러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올해 6월 현재 법적 기준에 맞게 환자에 완화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의원은 전국 55곳, 880개 병상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나라 전체 병상 수 36만9830개(2011년 말 기준·요양병원 제외)의 0.2% 수준이다. 그나마도 완화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의원은 대부분 서울의료원 등 국공립 공공병원이거나 서울성모병원 같은 종교 기반의 의료기관이다. 이외 완화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갖춘 일반 민간 의료기관은 5곳밖에 없다.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80101070927109002

 민간의료기관 입장에서는 운영할수록 적자가 나는 완화의료 병동을 운영할 수가 없다. 매년 5~6만명의 암환자가 죽어가지만, 이들이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할 병상은 전국에 1000개가 채 안되니, 나머지 암환자 분들은 고통 속에서 방치되다가 제대로 된 말기 돌봄도 받지 못한 채, 가족도 쉬쉬한 채, 그냥 고통 속에서 돌아가시고 계시다. 이들의 죽음을 방치한 잘못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이런 진료실 현실을 외면한 채 펜대 굴려서 법을 몇 개 바뀐다고 우리의 문화가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고 외치면서 아무 행동도 안 한다면 늘 그랬듯이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법도 좋지만,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제도를 보완하고 지원을 하는 일이 우선이다. 제도를 보완하고 지원한다면, 어쩌면 법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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