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서의 완화의료 (Palliative care in ICU)' 라는 주제로 강의 준비를 하고 있다.

중환자실에 입실하는 여러 유형의 환자들
예를 들면 수술 후, 사고, 급성질환, 만성질환이 악화된 경우, 소아환자, 그리고 암환자 중에 내가 강의를 준비하는 부분은 암환자. 그 중에서도 완치 목적으로 수술을 하기 전 후의 조기 암환자들이 아니라 4기 암환자들의 중환자실 치료에 관한 내용이다.

중환자실은 unlimited treatment 가 제공되는 공간이다. 환자가 중환자실에 입실했다는 것은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기관삽관,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갖가지 피검사와 수혈 등을 적극적으로 시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관삽관을 하고도 폐기능이 좋지 않으면 환자를 뒤집었다 뉘었다가를 반복하기도, 엄청난 약들을 퍼붓기도, 또한 엄청난 검사가 동반되기도 한다.

그 어떤 비용과 시간, 노력을 들이더라도 환자를 낫게 하는 것이 최고의 목표이다.
기적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의사로서의 보람과 희열을 느낄 수 있다.
진정 현대 의학의 꽃이다. (그러나 한국 의료에서는 적자의료의 꽃이기도 한다. 중환을 볼 수록 적자가 가중되는 우리나라 의료보험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통해 설명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

4기 암환자라고 해서 중환자실 입실에서 제외되어서는 안되지만 회생의 가망성이 높지 않은데 최선을 다한다는 이유로 말기암환자가 중환자실에 가서도 안된다. 환자를 진료하면서 늘 딜레마로 느끼던 주제이다. 그래서 강의요청이 들어온 것을 핑게함에 이참에 공부를 해보기로 했다.

공부를 할 때면 늘 느끼지만 나의 문제의식이 새로운 적은 한번도 없었다. 늘 많은 기존 연구들이 진행되어 있다.
논문들을 찾아 읽다가 2007년 NEJM 에 실린 논문 한편이 눈에 띈다.

A communication strategy and brochur for relatives of patients dying in the ICU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눈앞에 둔 환자의 가족과의 대화 전략과 브로셔

프랑스의 22개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회생이 어렵다고 판단되는 시점에 126명의 환자 가족을 임의로 배분하여
통상적인 형식으로 면담을 진행한 그룹과 End-of-life conference를 통해 가이드라인에 따라 면담하고 관련 브로셔를 준 그룹으로 나누었다.

환자 사망 90일 후에 전화로 설문조사를 하여 환자 사망 후 충격이나 가족의 우울증 및 불안 정도 등을 비교하였다.

환자가 더 이상 회생하기 어려운 시점이라는 것이 판단되면 실험군에서는 72시간 내에 End-of-life conference 를 열어 관련 가족과 원래 주치의, 중환자실 스태프, 간호사, 종교인 등 환자 치료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 환자의 상태에 대해 상의하고 환자 가족들의 입장, 궁금한 점을 묻는 시간을 주었다. 매번 면담시 참석한 환자 가족의 수, 면담시간, 의사 및 간호사들의 설명 시간, 가족이 말하는 시간 등등을 조사하였다.

가족들이 말하는 내용을 분석하여 죄책감, 감정표현, 환자의 증상이 잘 조절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중환자실 의료진에 대한 태도 등으로 범주화하였다. 또 환자의 중환자실 입원 기간, 생명연장 장치의 사용유무 등 의료적인 측면도 조사하였다.

실험군에서 사용한 대화 전략은 VALUE 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정리된다.

V…   Value family statements  가족들이 중시하는 가치
A…   Acknowledge family emotions 가족들의 감정을 인정하는 것
L…    Listen to the family 가족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
U…   Understand patient as a person 환자를 한 사람으로 이해하는 것
E…   Elicit family questions 가족들의 질문을 이끌어내는 것

이런 원칙이 실현될수 있는 면담을 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는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지만, 면담의 가이드라인을 정한 책자를 중환자실별로 배포하여 그런 원칙에 맞게 면담하도록 교육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는 환자의 죽음을 준비하고 사별 이후를 준비할 수 있는 브로셔를 제공했다고 한다.

면담 과정에서의 그룹별 차이가 나타난다. 중환자실 입원기간도 짧았고 생명연장 장치를 유지하는 기간도 짧았다.
환자의 죽음 이후 가족들이 느끼는 스트레스의 정도에서도 현저히 차이가 났다.

우리라고 못할 것도 없는 스터디인것 같다.

가족을 중환자실에 보내본 사람은 이런 정보가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담당 의사에게 궁금한 점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듣고, 환자의 상태 변화, 예후에 대해 논의하는 정기적인 면담을 갖는 것, 그리고 의사 뿐만 아니라 환자 진료에 관여된 여러 사람들로부터 환자의 소식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것이다.

실험군에서는 가족이 원할 경우 환자 면회 시간기준을 덜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가족들은 나중에 그 점에 대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였다. 물론 중환자실은 감염 등 안전 문제 때문에 자유로운 면회가 어려운 공간이기는 하다. 그러나 원칙을 정한다면 면회시간을 유동적으로 조절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논문을 읽으며,
중환자실 회진을 가면 보호자 대기실에 있는 보호자들을 불러내 복도에 서서 설명하는 내 모습이 떠오른다. 때론 가족을 외래 진료실로 오시게 해서 따로 설명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지만, 그건 진짜 환자 상태가 나빠져서 돌아가시 전에 아주 나쁜 소식을 전해야할 때야 비로소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우리 병원 중환자실 진료를 담당하는 호흡기내과 선생님들이 워낙 잘 해주셔서, 그들과의 의사소통에서 어려운 점도 없었다. 급할 때는 직접 담당 선생님께 전화로 상의를 하기는 했지만, 대개 선생님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기 보다는 중환자실 내 담당 전공의를 통해 의견을 전하고 결정을 전달받는 시스템이었다. 내가 좀 소극적이었나?

이 논문을 보며 우리 시스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계시는 한 선생님께 나의 의견과 질문을 담은 메일을 보냈다.
선생님은 나에게 많은 문제의식을 던져 주셨다.

이 논문에서는 의료진과 죽음을 앞둔 가족들 사이의 의사소통의 중요성과 정보제공의 측면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우리 현실에는 더 큰 문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완치되지 않는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최선의 치료란 무엇인가, 치료의 기준은 무엇인가, 중환자실 담당 의사와 원래 암환자를 진료하던 종양내과 의사와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기존 논문을 검토해 보니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4기 암환자들의 중환자실 치료 성적이 좋지 않다.
내 환자 중에는 4기 환자로 중환자실에 들어갔다가 인공호흡하고 혈액투석까지 하면서 위기를 맞이했지만 잘 치료받고 퇴원하여 지금도 걸어서 외래를 다니며 치료받는 환자들이 있다. 그들은 나의 자랑이다.

그러나 그렇게 회생하지 못하고 생의 마지막을 아무 유언도 못하고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더 많다. 아픈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으로 과거를 미화하고 싶은가 보다.

발표 준비를 아직 제대로 다 못해서인지 아직은 결론을 잘 모르겠다.
발표를 마치고 나면 뭔가 좋은 아이디어로 지금의 관성적인 진료보다는 대안을 찾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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