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10.16 수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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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혹은 십분

내가 좋아하는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와 뜻을 함께 하는 절친한 친구가 얼마전 위암을 진단받았다며 암환자를 보는 나에게 의견을 묻는다.
그의 목소리에 눈물이 묻어난다.


나랑 동갑인데...
검사를 하고 보니 수술할 수 없는 단계라고 했나봐. 수술을 못하고  항암치료를 담당하는 종양내과 의사를 만났다는데 의사를 만나고 온 친구가 항암치료보다는 자연요법으로 자기 몸을 다스리며 치료하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게 좋으냐...

정신과인 그에게 일일히 설명하는 것 보다 환자랑 직접 통화를 하는게 낫겠다 싶어서 내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직접 전화하시라고 했다.

저녁 무렵 그분이 전화를 하셨다.
40대 후반인 그는 자기 병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신다.
이미 많은 정보를 찾아보셨고 알아보신 상태다. 많은 것을 알고 계신다. 아주 객관적이고 차분한 어조로 
자기의 경과와 증상과 자기가 의사에게 들은 설명을 나에게 얘기하시는데, 마치 자기 문제가 아니라 남의 문제에 대해 분석적으로 말씀하시는 형국이다.

아주 논리적이다. 감정의 동요가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게 겉으로 평정심을 유지한 채 말할 수 있기까지
그는 얼마나 마음을 곱씹어 먹어야 했을까 내심 얼마나 몸을 웅크리고 있었을까  그의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게 느껴진다.

그는 냉랭한 의사의 태도에 '의사선생님이 아주 친절한 편은 아니시더라구요' 라며 서운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의 설명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털어놓는다.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보니 의사도 설명을 잘 하였고 환자도 내용을 잘 이해한 상태이다. 내가 더 설명할 것이 별로 없다. 그런데도 그는 나에게 이렇게도 묻고 저렇게도 묻는다. 나는 비슷한 답변을 이렇게도 이야기하고 저렇게도 이야기해 본다.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되새김을 하게 될까?

그는 식사 등 먹는 것에 대해 민간 요법에 대해 사는 집과 환경에 대해 많은 것을 물으셨지만
사실 내가 잘 아는 분야가 아니다. 나는 늘 그렇듯 원칙적으로 대답하였다.
환자가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지침을 주지못하는 막연한 원칙만.

그는 친구의 후배라고 생각해서 그러는지 마지막으로 한가지만 더 묻겠다면서도 계속 질문을 한다.
수화기 건너편으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린다. 아마 미리 질문사항을 메모해 놓은신 것 같다.

우리는 한 시간 정도 통화를 한 것 같다. 의사가 보기에는 환자의 이야기가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피를 말리는 다급한 사항들이다. 자기 주치의에게 묻지 못한  다소 사사로운 것 처럼 보이는 질문들을 나에게 묻고 대답을 듣고 싶어하셨다.

그 주치의 선생님이 나보다 연배도 훨씬 높으시고 환자 진료의 경험도 많으시고 좋은 임상연구도 많이 운영하고 계시는데 낯선 그보다는 친구의 후배라는 이유로 얼굴도 본 적이 었는 나를, 그의 CT도 본 적이 없는 나를 믿고
대답을 듣고 싶어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 환자들도 그렇겠지....

난 오늘도 열명에 달하는 신환을 만났고 그들에게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였다.
그들 중에는 내가 시키는대로 하면 완치될 수 있으니 큰 걱정말라며 용기를 주고 항암치료를 시작하자고 말할 수 있는 환자도 있었고  (완치.... 그거 참 부담스러운 말인데...)

비록 재발을 했지만 아직 완치를 노려볼 수 있는 단계이니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치료를 시작해 보자고 아쉽지만 어줍잖은 격려를 해 드릴 수 있는 환자도 있었고

결국 완치되지 않는 단계이니 증상을 완화시키고 생명을 연장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치료밖에 할 수 없는 상황임을 직면시켜 환자가 결국 울며 진료실을 나설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다.

그들 마음 속에도 나를 붙잡고 한시간씩 터놓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을텐데 난 10분 전후로 거두절미하였다.
진료실을 나서는 그분들의 섭섭하고도 뭔가 이해되지 않는 듯한 뒷모습이 떠오른다.

죄송해요. 우리는 계속 만날거잖아요.
다음에 만나면 좀 더 차근차근 얘기하도록 해요. 시간이 필요한거 같아요.
물어보시면 제가 가능한 자세히 설명드릴께요. 단 주어진 시간 내에 말이죠.

그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수현  socmed@bravomybrea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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