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윤형은 세대론에 대해 그리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지만 읽고난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세대를 가늠해보게 된다.  나는 과연 어떤 세대에 속한 사람이었던가.  94년도에 대학에 들어가 386세대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보았고, 당구가 저물고 스타크래프트가 뜨는 순간을 체험했으니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 단어였던 x세대쯤 되지 않을까 가늠해본다.  베이비붐 세대라며 취업의 고통을 하소연하던 학번은 하나 높지만 나이는 조금 많던 다른과 선배의 모습이 얼핏 떠오른다.  하지만 선배의 하소연 직후, IMF는 우리를 급습하였고 모두가 힘들다는 시대에 명예퇴직을 종용받던 아버지의 버팀으로 다행스럽게도 나는 학자금 지원이라는 수혜를 받으며 무사히 의대를 졸업할 수 있었다.  이후 군의관시절, 경제위기의 긴 여파로 인하여 젊은 친구들이 마지못해 군입대를 선택해 들어오는 모습들을 보며 마음아팠던 일을 생각해보면 한윤형이 제목에서 말하는 청춘이라는 세대적 범위의 경계는 크게 잡아 내 또래의 바로 뒤에서 형성되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나 역시 세대론적 분석이나 경계지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은 세대간의 수많은 교류를 만들어내며 함께 흘러가는 시공간이기에, 그리고 자본이나 계급등 수많은 경계지음의 기준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굳이 세대까지 구분해가며 싸움을 붙일 필요는 있겠나 싶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으로 따지자면, 정해진 부의 운영과 분배방식의 문제를 해결하면 취업난으로 대표되는 현시대의 세대간의 갈등은 자연적으로 해소되는 면도 없지 않기에 세대론은 부차적인 의미로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오히려 '인민'이라는 대상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위고의 말처럼 인민은 빵과 배고픔때문에 움직이는 존재라면 굳이 이렇게 자잘한 정치평론이나 세태에 대한 고민은 필요없을 것이다.  '인민이 위대한' 이유가 언제나 함께 가야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라면 그저 배고픔과 불만이 극도에 다다를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존재들이고, 그래서 세상에 대한 수많은 이야기와 분석과 주장을 내놓는다.  그렇다면 우리의 답답함과 우울함은 빵과 배고픔 이상의 무언가가 결핍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 아닐까?  개인적으로는 몇년전 프랑스에서 연금법 개악에 반대하는 데모가 한창일 때, 고등학생들이 내건 플래카드에 '은행에서 현금을 모두 인출해버리자!' 라는 문구가 항상 뇌리에 맴돈다.  그 문구는 그들과 달리 우리에게 보편적으로 필요한, 어떤 지적인 바탕이 부족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해와 논리가 완벽하지는 않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현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와 그 이면의 현상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하는 저자에 대한 감탄 이면에 마음 한 켠의 어떤 답답함이 늘상 자리하고 있던 느낌은 위에서 말한 나의 생각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저자의 분석과 글이 무척 마음에 들면서도 한윤형 이전의 사회를 분석했던 수많은 평론가들에 비하여 신선함의 면 외에는 별반 차이가 없는 느낌이었다.  그가 내놓는 소소한 대안은 '바리케이트를 치고 짱돌을 들라'는 우석훈의 대안보다 좀 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이긴 하지만 공감은 작기만 했다.  물론 우리사회가 뾰족한 대안이나 해법이란게 대뜸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복잡하긴 하다.  동시에 나의 생각은 치밀하고 현실적인 저자의 분석과는 거리감이 있는, 은연중에 세대론에 빠져있는 구세대적 연령공간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가 보편적으로 지녀야 하는 세상을 직시하는 지적바탕을 고민하고 있다.  한윤형의 분석을 조금 지루하게 받아들이게끔 만든 나의 고민에 대해 한윤형은 이러한 생각을 하는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줄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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