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요. 제가 오래 입원하면 선생님 입장이 곤란해 지시지요?”

얼마 전에 회진을 돌다가 마음이 안 좋았다. 젊은 말기암 환자분으로 임종을 몇 주 안 남기고 완화의료만 받는 환자분 입에서 나온 말 때문이었다. 그 환자분은 진통조절과 복수 조절로 인하여 우리병원 완화의료 병동에 있는 젊은 암환자인데, 외래에서부터 계속 본인이 말기임을 받아들이지 못하였다. 암은 계속 자라는데, 환자 본인과 가족분들은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있고, 통증이 계속 심해져서 완화병동에 입원을 하였다. 입원하여 가족상담, 미술치료, 호스피스 상담, 목사님 방문 등을 우리 완화의료 팀에서 다각도로 접근하여 겨우 말기임을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을 수 있는 말기 돌봄 계획을 세워나갔다. 문제는 재원기간이었다. 환자는 이미 장기재원이 되어 있었고, 나는 환자에게 전원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을 드렸다. 그러자 환자분이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었다.

Wikipedia image - St Christopher's Hospice in 2005


우리병원은 그래도 국립병원이어서 다른 사립병원들처럼 의사들에게 진료 수익을 많이 강요하는 편은 아니고, 돈이 안되더라도 다른 병원에서 안받아주는 중증/난치성 질환을 서울대병원에서 봐야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의사들에게 진료 실적을 많이 압박하는 편은 아니다.

그래도 의료 수가 자체가 워낙 저수가 이니, 환자를 볼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임은 우리병원도 예외가 아니고, 요즘 병원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고 있어, 장기재원이 되면 여러가지가 신경쓰이게 된다. 입원대기 환자가 늘어나게 되는 것도 그렇지만, 재원일수가 병원 수익과 반비례하기 때문이다.

재원일수를 줄인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병상회전률을 증가시켜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들에게 보다 신속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입원대기 기간을 감소시켜 고객만족도를 늘리고 경영합리화에 이바지 한다는 것이다. 보다 솔직히 그냥 쉬운 이야기로 말하면 환자가 장기재원이 되면 병원이 손해를 보니 장기 환자는 빨리 퇴원시키고, 검사 많이 하는 신환을 많이 받으라는 것이다.

병실은 한정되어있고, 입원해야 할 환자분들은 많은데, 그 환자분이 장기 재원이 되니, 다른 환자분들이 입원을 못하게 된다. 결국 그 환자분은 말기 돌봄 계획을 세우고 나서, 다른 호스피스 완화의료 기관으로 전원을 권하였다. 이럴 때 의료진이 원망을 많이 받는다. 여태까지 항암치료 하라고 해서 했고, 검사하라면 시키는 대로 다 했는데, 이제 와서 항암치료 못한다고 하고, 임종준비 하라고 하고 나가라고 한다며 원망을 많이 받는다. 나가서 죽으라는 소리냐는 원망도 받는다.

말기 돌봄 계획을 세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환자 본인과 가족들은 현재의 질병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아직도 완치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된 보호자는 누구인지, 가족분들은 잘 간병을 해주시는지, 경제적 어려움은 없는지, 가족 내 다른 어려움은 없는지, 종교에 많이 의지하는지, 사는 곳은 어디인지, 심리적으로 불안해 하지는 않는지 이런 것들을 모두 종합하여 말기 돌봄 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 젊은 말기암 환자의 보호자도 결국 전원갈 만한 병원을 여기저기 알아보고 다녔다. 이번에 생긴 문제는 갈 곳이 없다는 점이었다. 거리가 가까워서 마음에 들면, 시설이 너무 지저분하고, 시설이 깨끗해서 마음에 들면, 입원대기가 너무 길다고 하고, 입원이 바로 된다고 해서 알아보면 4주 이상 장기 입원은 안되니 4주되면 다른 병원으로 나가야 한다고 하고… 어디로 가야할지 마땅한 호스피스 의료기관이 없었다.

말기 암환자는 어디가나 찬밥신세이고, 현실은 몇 십년째 달라지지 않고 있고, 말기 암환자분들은 편안히 돌아가시지 못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크게는 네가지 이유이다

첫째, 호스피스 환자들이 돈 되는 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병동은 운영하면 할수록 적자이다. CT MRI PET 검사를 하고 보험 안되는 시술도 해야 적자를 면하게 되는데, 말기 암환자분들은 그런 고가의 검사나 시술을 안 한다. 그러다 보니 말기 암환자를 받아서 편안하게 임종 때까지 돌봐드리겠다고 나서는 병원이 별로 없다. 공공병원도 적자를 보면 정부에서 폐쇄시키는 마당에, 자본주의 세상에서 적자를 감수하면서 누가 돈 안되는 환자 진료를 하겠는가. 정부에서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수가를 만든다고 하는데, 20년째 공청회만 하고 제자리 걸음이고, 미안하지만 진료 현장에서 내가 느끼기에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나마 이제 부터는 의료비 급증을 감당할 수 없어 의료비를 적극적으로 줄이겠다고 하는데,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돈을 쓸 이유가 없다. 100만원짜리 PET검사는 보험급여를 해주어서 95만원을 지원해 주면서, 완화의료 상담에는 0원을 지원해 준다.

둘째,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그나마 웰빙과 웰다잉의 붐에 힘입어서 죽음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긴 하였으나 아직도 우리 국민 대다수는 “ 호스피스 = 말기 환자에 대한 전문적인 의료 서비스” 라는 것보다 “호스피스 = 성직자 무료 자원봉사” 라는 인식이 강하다. 고로 이런 무료 자원봉사에 돈을 투자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셋째, 민원이 없다. 민원이 없다는 것은 좀 생뚱 맞는 이야기인데, 농담반 진단반으로 공무원들이 움직이려면 민원이 있어야 한다. 한달에 1000만원짜리 항암제는 보험을 해달라며 조직적으로 환우회 같은 곳에 민원을 내고 있고, 민원을 자꾸 내다보면 보험도 되고 하는데, 말기암환자 분들은 민원을 낼 기력이 없다. 환우회도 있을 리 없고, 가족분들도 돌아가시고 나면 마음속에 안타까움만 남긴 채 그들의 어려움은 잊고 만다. 그들은 분명 잘못된 의료제도의 피해자인데, 정작 본인들은 제도의 피해자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넷째 마지막으로 그들은 아쉬울 것이 없다. 정책을 만들고 제도를 개선하려면 결국 힘이 있는 사람들이 움직여주어야 하는데 그들은 전혀 아쉬운 것이 없다. 그들의 가족이 말기 암환자가 되면, 연줄을 동원하고 특실로 가고, 어떻게 해서든 그들은 가족을 편안하게 임종 맞으시도록 모신다.

이러한 여러 이유들과 제도들로 인하여 인구당 CT 보급률은 10년 전부터 세계1위인데, 임종의 질은 32위, 말기돌봄에 쓰는 비용은 35위 (참고로 36위는 우간다임)이다. 의사의 잘못도 아니고 환자의 잘못도 아니고, 결국 의료시스템이 잘못되어서 매년 6만여명의 암환자분들은 제대로 돌봄을 받지도 못하고 고통 속에서 돌아가시고 계신다. 당신의 죽음은 예외일 것 같은가?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