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나요?

아님 그런 거 없이도 그냥 혼자 뭐든지 잘 해쳐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나요ㅎ
믿는 구석이 있다면 뭘 믿고 있나요?

통제감(sense of control)이란 외부의 영향에 상관 없이

'내가! 내 의도대로 내 일들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반대로 낮은 통제감, 내 힘의 크기나 범위가 제한되어 있다는 느낌은 무기력과 맞닿아 있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꽤 높은 통제감을 보이는 편입니다.

같은 주사위도 남들보다 내가 던지면 왠지 더 높은 확률로 딱 원하는 숫자가 나올 것 같고
(실제로 다른 사람 말고 자신이 주사위를 던질 때 배당금을 더 높이 걸곤 합니다)
복권도 내가 긁으면 당첨 확률이 더 높아질 것만 같지요.
남들은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설마 내가..'라며 자신이 위험에 처할 확률은 과소평가 하기도 하고요.

우리가 이런 과도한 통제감, '통제감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을 보이는 한 가지 이유는

그래야 마음이 편하기 때문입니다ㅎ

'당장 내일 어떻게 될 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다'라는 걸 직시하면 마음이 너무 불안하거든요..

'내가 어쩔 수 없는 환경이나 운에 의해 내 삶의 많은 부분이 좌우된다'는 것 또한 왠지 우울하지요.
이렇게 우리 삶에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깨닫고 인지하는 건 잔인한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착각이든 뭐든

'나는 세상이나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예측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고싶어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살다보면 이런 높은 통제감이 항상 잘 유지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입니다.

시험에서 예상치 못하게 너무 어려운 문제가 나와 망하기도 하고
갑자기 집이 가난해져서 어쩔 수 없이 뭔가를 포기하게 되기도 합니다.
갑작스런 날씨 변화나 자연재해로 옴작달싹 못하게 되기도 하지요.

이럴 때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걸 깨닫고 무기력해지곤 합니다.


근데 계속 무기력해 하고 있을 수는 없지요.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다양한 대처방법이 있겠지만

심리학자 Kay와 동료 연구자들은 '더 큰 힘을 가진 무엇에게 기대는 것'에 주목했어요.

미약한 나 대신에 내 삶과 주위 환경을 통제해 줄 강한 무언가를 찾게 되면

약한 통제감으로 인해 오는 불안감을 어느정도 해소할 수 있게 된다는 거에요.
통제 대리를 통해 찾아오는 이런 통제감을 '2차적 통제감'이라고도 합니다.
'믿는 구석'을 찾게 되는 것.

그리고 연구자들은 '정부(government)'와 '(God)'이 이런 2차적 통제감의

중요한 원천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면서

나 대신 나와 내 주변을 통제해 줄 수 있거나
혹은 최소한 그렇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대리 통제자가 이 둘이라고 본 것이지요.

그래서 연구자들은

사람들으로 하여금 통제감을 잃게하면
정부나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고
이 둘에 기대려는 모습이 나타날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진짜 그런지 볼까요?


한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통제감을 느꼈던 사건을 쓰게 하고

다른 조건의 사람들에게는 통제감을 잃었던, 무기력했던 사건에 대해 써보게 합니다.

그리고 나서 '신적 존재'에 대한 믿음을 묻습니다.


참가자의 반에게는 '창조자(세상을 만드심)'인 신을 믿는가를 묻고

나머지 반에게는 '통제자(인간사를 컨트롤하심)'인 신을 믿는가를 물었습니다.

우리가 무기력해졌을 때 대리로 통제감을 얻기 위해 신에게 기대게 된다면

창조자인 신에 대한 믿음보다 특히 '신이 우리 인생을 통제한다'는 믿음이 강해지겠지요?



그래프를 보면

'신 = 통제자'라는 믿음에서

통제감이 낮아진 사람들이 훨씬 높은 믿음을 나타내는 게 보이지요.

'미약한 나 대신 내 삶을 통제해 줄 누군가, 믿고 기댈 누군가가 필요해!!'

이런 외침이 들리지 않나요ㅎㅎ

이런 믿음은 신적 존재뿐만 아니라 정부에도 해당됩니다.


이번에는 10년 간 67개국에서 모은 약 9만명의 샘플을 대상으로

개인이 느끼는 통제감과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는 모습과의 상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소득수준, 교육, 나이, 정치성향과 상관 없이

통제감이 낮은 사람들이 정부가 사람들의 삶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정부의 책임을 강조하는 현상을 보였습니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점선'을 보면 정부가 믿을만할 때(정부가 부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때)

개인의 통제감이 낮을수록(왼쪽으로 갈수록)
정부가 사람들의 삶에 많은 책임을 져야한다고 이야기 하는 경향이 높았다는 게 보이지요?

즉, 특히 정부가 신뢰할만하다고 여겨질 때

무기력한 사람들은 정부에 기대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무기력한 사람들은 기존의 정부가 믿을만하다고 생각될 때
현 체제를 옹호,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음..


무기력해질수록 아주 큰 권력이 있어 보이는 신이나 정부를 믿게 되고 옹호하게 된다는 결과가 재미있지 않나요ㅎㅎ


가난하고 약해질수록 친정부적인 성향, 극단적인 체제 옹호 경향을 보이게 되거나

극단적인 종교성을 보이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같아서요ㅎ

연구자들은 개인이 통제감을 갖는 것을 비교적 덜 권장하는 (동아시아 등의) 문화권에서는

종교나 정부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이 더 강하게 나타날 가능성도 언급했네요.

이 외에도

 
비교적 높은 통제감을 갖고 있을 것으로 예측되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고 행복할수록 현 체제를 좋아하지만
아마도 통제감이 낮을,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불행하고 자존감이 낮을수록 현 체제를 좋아한다는 연구도 있었어요 (Jost & Thompson, 2000)


그럴 수 있는 능력과 여력이 있다면

자신의 이익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내 이익에 맞는 체제는 -> 좋아하고, 아니면 -> 싫어하게 되지만

통제감, 실제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 자원 등이 없는 경우

수동적이게 되고 생존과 현상 유지에 급급하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이런 순응 역시 살아남기 위한 나름 이유있는 몸부림이겠지만요.


'변화'에는 이걸 이뤄 낼 수 있는 능력과 자원, 에너지가 필요하기도 하겠고요.

아마 그럴 여력이 있는 사람들이 변화를 외칠 수 있는 거겠지요.

여튼 이렇게

사회적 계층(능력과 자원, 환경, 멘탈상태 등)에 따라
사람들의 동기나 목적, 행동들이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관련된 사회 현상들을 이해할 때는
이런 점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이런 연구들을 주욱 보고 있는데

세상이 이런 건 다 이유가 있어서.. 라는 생각이 든달까요ㅎㅎ

관련해서 재미있는 연구들 간간히 소개할게요 :)


Kay, A. C., Gaucher, D., Napier, J. L., Callan, M. J., & Laurin, K. (2008). God and the government: testing a compensatory control mechanism for the support of external system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5, 18.

Jost, J. T., & Thompson, E. P. (2000). Group-based dominance and opposition to equality as independent predictors of self-esteem, ethnocentrism, and social policy attitudes among African Americans and European Americans. 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 36, 209-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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