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서는 내 환자가 아닌데
토요일 일반진료를 하는 동안 몇번 만난게 인연이 되어
만나면 반가운 동생같은 환자다.

종서는 이 블로그 초반에 훈남 총각이라는 제목으로도 등장했었다.
피부가 너무 좋아서 내가 무슨 화장품 쓰는지도 물어보았고 그에게 강북 맛집 소개도 받고 그랬었다.


종서는 항암치료를 계속 받고 있지만 좋아지지 않고 있다. 사실은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

종서도 가족도 모두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항암치료 독성이 심해서 종서는 외래에 자주 온다.

가끔 지나가다 만나면 난 요즘은 뭐 하고 지내냐고 묻는다.



종서는 늘 새로운 뭔가를 시작하고 있다. 그래서 바쁘다.

그리고 그의 새로운 시도는 일관적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실현하는 그 연속선상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고 발전하고 있다. 아주 창조적인 아이이다.



종서는 디자인을 전공했는데

그의 얘기를 들어보면 감각도 아주 뛰어나고 미학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정서도 풍부하고 생각도 깊다.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실재로 많은 일을 하고 산다.
항암치료 받으러 병원에 입원할 때만 빼고.



그런 종서를 오늘 우연히 만났다.

나를 만나자 마자 가방을 부시럭 거리면서 무슨 카탈로그를 보여준다.






젊은 남성 캐주얼복인것 같다.

카타로그 전체에 아주 모던한 옷들이 소개되어 있다.


종서가 디자인했다고 한다. 홍대 근처에 작업실이 있는데
매장은 아니고 showing room 이라고 해서 방문하면 자기가 만든 옷들을 구경할 수도 있고 직접 살수도 있다고 한다. 아직 본격적으로 시장에 출시된건 아니고 주로 여러 회사들에 납품할 거라고 한다.
'아레나'라는 잡지 표지모델에게도 협찬으로 의상을 제공한다고 하는데, 내가 아레나가 뭐냐고 했더니, '선생님은 역시'라는 표정을 짓는다.


아는 누군가가 방문을 해서 옷을 300만원어치 사갔다며 자랑한다. 내가 그 사람 너무 심한거 아니냐며, 무슨 옷을 300만원 어치나 한꺼번에 사냐고 했더니, 자기가 만든 자켓 한벌에 30만원 정도 파는데, 그 정도 돈으로 이 정도 디자인, 이정도 제품을 살 수 없다고 한다. 자기는 원단도 진짜 좋은 걸로 쓴다고 한다. 자기가 만든 옷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나도 한번 가서 옷 구경을 해보기로 했다.

www.trwa.co.kr

종서가 친구 두명과 함께 시작한 회사다.


   
종서는 항암 치료 와중에도 자기 일을 추진하고 파리에도 다녀오고 피아노와 작곡도 배우고 패션쇼도 준비했다.


우리 호스피스 팀에서는 종서를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종서가 하고 싶은 일들을 잘 도와주고 가르쳐 줄 수 있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 중에 종서의 멘토가 되어줄만한 사람들을 찾아 소개시켜 주었다. 그러나 사실 종서는 자기 힘으로도 얼마든지 독립적으로 알아서 잘 하고 있다. 낫지 않는 병에 굴하지 않고, 피부도 상하지 않고, 그 어떤 젊은이보다 더 창의적이고 생산적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언듯 보니 많이 야위었다.


치료가 힘든 것 같다. 그래도 난 그런 내색 하지 않았다.
종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고
꿈을 이루는 것이다.

치료는 그 과정에서 스쳐 지나가는 일일 뿐이다.



기본이 되니까요.


종서야, 넌 어쩜 그렇게 피부가 좋아?

아이, 선생님, 기본이죠.

넌 항암치료 받는데도 참 미남이다.

기본이 되니까요. 


유쾌한 아이다.

이번 가을에는 종서가 디자인한 자켓 한벌 사서 입어야겠다.


종서를 보면 삶에 대해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종서야, 돈 많이 벌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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