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흔하게, 일정수련과정을 이수한 후 봉직의가 되거나 개원의가 되면 ‘강호의 세계에 뛰어든다’ 말한다.  아직 그런 ‘강호의 세계’에 대한 감이 없던 때엔 열심히 성실하게 환자를 대하다보면 ‘강호의 고수’가 될 수 있겠지 하는 순진한 생각을 머금기도 했었다.  하지만, 강호의 세계에 뛰어든 4년 남짓의 봉직의 생활과 주변에서 들려오는 선배나 동료의사들의 이야기들에서 깨닫는 것은, ‘강호의 고수’는 단지 성실함이나 의학적 실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더라라는 것이다.  이미 병원은 어정쩡한 영리병원의 형태로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체제의 정점에 근접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 안에서 의사들은 가감없는 말로 ‘신음’중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말이다.

 ‘돈밝히는 의사’는 과거에도 많긴 했다.  그리고 상당한 비난도 받아왔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과거와 같이 ‘돈밝히는 의사’를 비난하기는 많이 어려워졌다.  과거의 의사는 온전히 자신의 부를 위해 돈을 밝혔지만 지금은 생존과 유지를 위해 돈을 밝힐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구조는 돈을 밝혀야하는 의사들을 폭넓게 양산하고 있는 중이다.  개인적으로도 봉직의 생활을 하면서 알게모르게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야 한다.  환자 하나하나에 대한 적합한 치료권유나 정성보다는 달 단위로 병원실적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가가 지금의 내 자리를 유지하는 데 있어 무척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이 현실이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기에, 내 주위에서 들리는 병원에 다녀오는 사람들의 의사에 대한 불만은 한 단계 자체적으로 걸러지며 때로는 비난의 대상이 된 그 의사에 대한 이해와 동정심마저 들 정도이다.

분명한 것은 의료는 산업이 되어버렸고,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체제의 한 톱니바퀴로서 역할을 도맡으며 이윤추구의 장이 되었다.  그것은 의료의 사회적 역할과 본질에 비추어 보았을 때, 분명히 잘못된 모습이다.  그와 동시에 언론이나 여론이 이런 현상을 의사들의 잘못으로만 매도하는 것도 분명 잘못된 모습이다.  이유는 위에서 말했던 대로이며, 이 책 역시 그 이유를 매우 적절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의료가 공공재로서 충실하게 역할하기를 바라는 개인의 입장에서 이 책은 현재의 의료가 왜 점점 망가져가는 지에 대해 매우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생각한다. 

의료보험으로 시작하여 건강보험으로 이어진 제도는 분명 좋은 정책이다.  문제는 의도적인 저수가정책으로 일관하여 변화하는 경제적 환경안에서 의사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과, 더디기만 한 건강보험의 보장수가율 변화와 대상확대, 그리고 사보험과의 경쟁에서 점점 우위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의료를 이윤율 추구 시스템의 톱니바퀴로 전락시킴으로 개개의 의사가 이윤추구를 위해 뛰지 않으면 안되는 환경이 조성된 현실은 의사가 어쩔 수 없이 환자를 쥐어짬으로서 병원조직에 인정을 받고 자영업자로서 생존을 추구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을 일반화시켜 ‘의사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말할 수는 없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은 상당한 비중을 가짐이 사실이다.

거기에 빅5라 불리는 병원들의 독식은 교통시스템의 발달에 더불어 심화되고 있고, 한 술 더 떠서 환자들이 요구하는 좀 더 질 높은 의료서비스에의 욕구는 그들의 독식을 부채질한다.  물론 환자들의 그런 욕구를 무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변방의 많은 병원들과 의사들은 상대적으로 생존과 실적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가중받는다.  이는 국가나 제도가 나서서 질환의 중증도관리 등등의 교통정리를 통해 환자분산을 해주어야 할 문제이지만, 산업화가 본격화되고 자본화가 심화되면서 그런 역할은 성장논리에 맞지않는 불필요한 일이라 치부되어버렸다.  하지만, 책에서도 나오듯, 영리병원 또는 영리를 추구하는 대형병원이 더 나은 서비스와 의료의 질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서는 그러한 평가가 이제서야 시작되고 있고 이 책에는 그러한 첫 결과를 소개한다.  빅 5병원을 시기하는 것이 아닌, 환자들의 의료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필요함을 생각하는 개인적 입장에서는 무척 반갑기도 한 대목이다. 

최근 개인적으로는 포괄수가제에 대해 작은 목소리로 몇 번 성토한 일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포괄수가제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그것은 공공재로서의 의료가 완벽히 역할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의 포괄수가제는 의사를 두번 쥐어짜는 제도일 뿐이다.  항간에 개원가에서는 포괄수가제에 따른 수당에 그나마 수익을 보존할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저수가를 바탕으로 책정된 수당과, 질환에 대한 진단으로만 묶어버려 환자의 처치나 경과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다양한 변수들에 대한 완충이 전혀 없다시피 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더없이 불편하고 불합리하기만 할 뿐이다.  출혈이 심한 치질환자에게 수혈과 증상완화에 필요한 처치, 그리고 대장내시경까지 생각하다보면 가장 필요한 수술은 현재의 포괄수가제 안에서는 입원 한 번으로 모두 해결할 수가 없었던 개인적 경험도 있다.  환자의 입장에서는 저렴하고 적정한 비용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어 좋겠지만, 제도가 어느 한쪽의 일방적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이 되는 것이라면 그 제도는 합리적으로 고쳐나가야 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심평원과 건강보험은 그럴 의지도 없어보이고, 의료의 산업화와 병원의 영리화에 대한 비판도 없어보이며, 오히려 그런 추세에 무언으로 동조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듯 보인다. 

의료는 어떤 입장에서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아무리 뛰어난 의사라도 개개인의 질환과 경과에 대해 확답할 수 없으며, 환자의 기대나 시술이나 처치의 효율앞에서 다른 이면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입장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정치적으로는 의사들의 오랜 콩가루성향이 지금의 이런 불합리와 의료왜곡을 자아낸 원인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시스템이 이런 성향과 무관심을 최대로 활용하여 밀어붙이는 느낌이다.  터져나오는 의사들의 발언과 행동은 그것 그대로 환자들을 담보로 하는 무책임하고 위협적인 이기심으로 돌변하는 현상을 보면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좀 더 체득하고 공부 한 후에 풀어보기로 하면서 여기서의 말은 일단 접어두며, 본질이 왜곡된 의료산업과 그 안에서 의사들의 처지가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읽고 난 후에는, 이 사회에서 양심적인 의사들은 대체 어디갔는가를 한탄할 것이 아니라, 양심적이고 싶은 의사들에 대한 응원을 좀 해주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본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그렇듯, 서로간의 이해와 응원이 세상이 좀 더 바를 수 있는 작은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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