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을 왜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얼차려도 아니고 왜 돈을 내면서까지 그 먼 거리를 뛰려는 걸까. 어느 마라톤 대회에서, 사회를 맡은 개그맨 유세윤씨가 이렇게 물었었다.

“그런데 이거 완주하면 뭐 줘요? 선물 같은 거 주나? 네? 참가비가 있다고요? 돈을 받으면서 뛰어도 시원찮을 판인데 돈을 내고 뛴다고요? 이해가 안 되네.”

그의 익살에 사람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거죠?”

 한번 뛰어보고 나니 마라톤의 매력이 느껴졌다. 달리는 도중에는 ‘내가 미쳤지. 도대체 왜 이걸 한다고 했을까.’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지만, 막상 골인지점을 지나고 나면 그만큼 후련한 일도 없었다. 그 후로 종종 마라톤대회에 나갔다. 풀코스를 뛰고 싶었으나 워낙 체력이 약한지라 하프마라톤 완주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과 뒤섞여 달리다보면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엄청난 속도로 달려가는 금발 여자선수를 보며 그 체력에 감탄하기도 하고, 임산부가 달리는 장면도 목격했다. 그녀의 불룩 나온 배에는 ‘똥배가 아니에요. 아기가 있어요.’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도 있었고, 가수 션은 아이가 탄 유모차를 몰고 10킬로미터를 완주하기도 했다.

그 중 신기했던 것은 서로 손목을 묶고 달리는 사람들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다정한 커플로만 생각했다. 서로 뒤처지지 않게 페이스 조절을 해주려는 걸까. 나중에야 진실을 알게 되었는데, 시각장애인 러너였다. 앞이 보이지 않기에 손목을 묶어서 가이드가 길을 인도해주는 것이었다.

그날도 손목을 묶은 선수들이 몇 명 보였고, 내 앞에도 시각장애인 러너 한 명이 뛰고 있었다. 일요일 한강변에는 마라톤을 뛰는 사람 외에도 산책 나온 사람, 자전거 타러 나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그들은 마라토너들을 마뜩찮게 생각했다.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강변을 점령하고 있으니 짜증이 난 것이다. 어떤 이는 일부러 자전거 경적을 울리거나 바로 옆에서 위협하며 지나가기도 했다. 자전거에 치기 싫으면 알아서 비켜가라는 것이다.

악! 갑자기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시각장애인 러너가 멈춰선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맞은편에서 자전거를 타고 오던 사람이 그의 팔을 툭 치고 지나간 것이다.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피했겠지만, 안타깝게도 앞이 보이지 않는 그는 자전거를 피할 수가 없었다. 슬쩍 부딪힌 거라 다치지는 않았나본데,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사람이 지나가는데 왜 치고 지나가느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자전거를 탄 아저씨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거 슬쩍 부딪힌 거 가지고 뭘 그렇게 난리입니까?”

그의 말에 시각장애인 아저씨의 분노가 폭발했다. 둘은 한참이나 소리를 높였다. 마라톤 중이었기에 그 자리에 계속 있을 수가 없어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옆을 지나가던 한 사람이 혀를 끌끌 찼다.

“얼마나 놀랐겠어. 자기 눈 안 보이는 거 아니라고 너무하는구만. 남 입장에서 생각해야지.”

나 역시 그의 말에 동감했다. 슬쩍 부딪힌 것뿐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앞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무언가에 부딪힌다면 그 순간에는 그것이 사람인지 자전거인지 트럭인지 알 도리가 없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결과적으로 다치지 않았으니 괜찮다는 말은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는 합당하지 않은 것이다. 조금만 남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충분히 이해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 만한 상황인데, 자기 입장에서만 바라보니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많고, 배려는 부족한 것 같다. 아는 선배가 미국 콜로라도 브리큰리지 스키장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갑자기 리프트가 정지했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하체가 절단된 장애인이 리프트를 타고 있었다. 장애인이 가운데에 타고 양 옆에서 그를 도와주는 스키어 두 명이 같이 리프트를 타고 올라갔고, 내릴 때에도 마찬가지로 리프트가 완전히 정지한 후 두 명의 도움을 받아 내렸다. 놀랍게도 그는 특수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 앉아서 타는 장애인용 스키를 타고 비장애인 2명의 호위를 받으면서 하얀 눈 위를 질주했다고 한다.

장애인이 스키 타는 걸 처음 봤으니 신기하기도 했는데, 더 놀라운 것은 리프트를 기다리던 사람들 중 아무도 그 장면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마치 그가 그렇게 리프트에 오르고 스키를 타는 것이 전혀 문제될 것 없는, 지극히 평상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분명 쑥덕거리며 곁눈질을 하거나, 몸도 불편하면서 왜 스키를 타겠다고 리프트 멈추게 하느냐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었을지 모른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분이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인식 비교’를 주제로 논문을 쓰려고 했는데, 결국 논문 주제를 바꿔야 했다. 연구가 힘들었던 것이 아니라, 논문을 지도하는 미국인 교수가 그 주제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거죠?”

교수의 물음에, 장애인에 대한 미국인과 한국인의 관점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고 논문 주제를 포기했다고 한다.

병원에서의 내 업무 중 하나가 바로 장애진단서를 작성하고 발부해주는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안고 살아온 사람도 많지만, 사고와 질병으로 장애를 얻은 사람도 정말 많다. 앞날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고, 그들도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비장애인과 똑같은 사람이었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옳지 않다. 돕고 배려하지는 못하더라도, 깔보거나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남은 코스를 달려가는 내내 화를 내던 시각장애인과, 인상을 찌푸리던 자전거 아저씨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다 똑같은 사람인데,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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