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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더러워도 괜찮아?'

위생가설

저번주에 이야기 한 내용 중에 위생가설이 잠시 등장했었습니다. 최근에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가설이기도 하지요. 잠시 언급했다시피 위생가설의 가장 큰 줄기는 ‘위생의 과잉으로 여러 자가면역질환들이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즉 기생충을 비롯한 여러가지 미생물이 우리의 환경에서 사라진 것이 병의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이 가설은 알레르기 같은 자가면역질환의 유행 양상을 살펴보다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위생 및 사회 기초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선진국에서는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기생충이 많은 개발도상국이나 빈곤국가에서는 알레르기 질환의 발병률이 낮다는 독특한 양상을 누군가 발견한거죠. 깨끗해야 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오랜 믿음이 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 발견 이후 위생가설에 대한 많은 기초 연구가 급속도로 진행되기 시작했고, 최근 10여년간 기생충학에서 가장 각광 받는 연구분야가 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치매 같은 퇴행성 질환도 기생충이나 미생물의 노출에도 연관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요.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기생충은 일종의 배경이었습니다. 인류가 나무에서 내려오기 전에도 기생충은 배 속, 피 속, 근육 속, 장기 속, 피부 위에 항상 존재해 왔고 나무에서 내려오기 한참 전인 바다에서 헤엄치던 시절에도 있었으며, 세포가 하나 밖에 없던 시절에도 있었습니다. 즉 모든 생물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기생충은 항상 함께 해왔기 때문에 당연히 몸 안에 기생충이 있을 것이라는 ‘대전제’를 해두고 일어난 것이죠. 인간의 면역계도 마찬가지죠. 저번 시간에 이야기 했다시피 회충이나 촌충 같은 대형 장내 기생충들은 어느정도 숙주의 면역반응을 억제하는 효과를 보입니다. 사람의 면역계는 불과 20여년전까지 당연히 우리 몸 속에 기생충이 항상 있어온 상태로 진화했기 때문에 기생충의 억제효과를 이기기 위해서라도 더 강한 면역반응을 보여야 했을것입니다.

하지만 불과 십수년만에 우리 생활에서 기생충이 사라졌지요. 작은 규모의 진화라도 이렇게 짧은 시간 내에 사람들이 적응하기는 어렵습니다. 기생충이라는 조절장치를 전제로 개발된 면역계에서, 이 조절장치가 사라지자 급작스레 면역계가 과민 반응을 보이기 시작한거죠. 또 위생가설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단지 기생충만을 이야기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몸 안팎을 형성하고 있는 다양한 미생물도 여기에 포함되지요. 흔히 정상미생물총이라고 하는데요,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전체 세포 중 인간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10조개, 그리고 나머지 미생물들이 100조개의 세포를 차지합니다. 즉 세포의 수로 보자면 우리 몸 중 10%만 인간인 것이지요. 하지만 최근 우리가 위생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되면서 항생물질이 들어있는 수많은 물건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죠. 일상에서 우리가 접촉하는 것들만 봐도 세제, 치약, 비누, 손세정제, 물티슈를 비롯한 수많은 항균물품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항균물품 덕분에 접촉을 통해 감염되는 다양한 질병들 - 감기 등 -이 예방되어 우리의 삶이 크게 윤택해 진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우리 몸을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미생물들 -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 이 사라져 버리게 되었습니다. 위생의 ‘과잉’ 상태가 된 것이죠.

위생가설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부분 중 하나는 우리의 몸을 형성하고 있었던 - ‘과거에는 정상이었던’ - 다양한 미생물과 기생충들에 어린시절에 노출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즉 어린시절 면역계가 형성되고 있을 때 이런 다양한 외부환경에 노출되는 것이 이후에 면역계의 과민한 반응을 막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이런 이이유로 다양한 동물이나 외부환경에 노출될 수 있는 농장 주변의 어린이들과 도시의 어린이들을 비교해 보았을때 농장 주변에 사는 어린이들의 알레르기성 질환 발병률이 더 낮았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빈곤국가에서 자가면역질환이 더 적었다는 결과와 비슷한 맥락이죠.

최근 위생가설과 정상미생물총의 중요성을 통해 나온 가장 급진적(?)인 치료법은 대변이식요법이 아닐까 싶은데요. 올 초에 유수 저널인 NEJM에 실려 상당한 호응을 얻기는 했지만 같은 방식의 치료법은 이미 40년 이상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즉 염증성 장질환 중 적지 않은 숫자가 위생가설에 기반하여 장 내에 있는 미생물 생태계까 교란되어 일어나는 현상이라 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방법은? 아픈 사람의 장을 비우고 건강한 사람의 장 내 미생물을 이식하는 것입니다. 장 안에는 워낙 다양한 미생물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까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가려낼 방도가 없습니다. 결국 따로따로 이식할 수 없기 때문에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받아 물에 희석한 다음 아픈 사람의 장 속으로 관장을 통해 밀어넣는 방법이 사용되지요. 거칠게 말하자면 똥물로 관장을 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의외로 이런 치료법은 굉장히 높은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받는 입장에서는 조금 껄끄러울 수도 있겠지만요. 기생충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저번 에피소드의 제목은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에서 따온 것인데, 정말 똥도 약에 쓰는 날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항균, 멸균을 통해 우리는 다양한 감염성 질환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되었지만, 역설적으로 자가면역질환이나 알레르기가 늘어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물론 항균과 멸균이 무조건 나쁘고 이제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갈 때라고 하기에는 이로 인해 우리가 얻는 혜택이 너무도 많지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균형을 지키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충분히 밖에서 뛰어놀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다양한 환경과 접촉할 자리도 만들어줘야지요. 또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미생물과 기생충들의 생태계를 무조건 더럽고 나쁜 것으로 보지 않고 함께 해야할 동반자로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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