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하복부 통증으로 응급실에 내원한 어느 연예인이 있었다.
그 시각, 병원을 배회하며 응급실 당직을 서고 있던 일년차가 있었다. 핸드폰 문자를 통해 그가 외과 환자로 응급실에 체류중임을 알게 된 나는 당직의의 소임을 다 하고자 부리나케 응급실로 내려가서 진찰을 했다.

"선생님, 몰랐어요?? 연예인이잖아요!"

그런데 이름이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이다.  그런데 누군지 도통 모르겠다.
복부 진찰을 하고 피 검사 결과를 보고, 아무래도 CT촬영이 필요한 듯 하여 처방을 내놓고 다시 병동으로 가려는 찰나, 갑자기 다른 젊은 여자가 뛰어오더니만 스케줄이 많이 밀려있는데 오늘 집에 갈 수 있냐고 물어본다.  인터뷰도 해야 하고 미팅도 있다고 한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응급실을 나서려는 찰나, 한 인턴쌤이 나에게 황급히 다가온다.

"선생님, 몰랐어요?? 연예인이잖아요!"

알고보니 이미 인턴선생님들 사이에서 서로 그 환자의 문진을 하겠다며 소리 없는 전쟁이 일어난 터였다.  충수돌기염이라면 내가 있던 파트로 입원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우리파트 인턴선생님들께 기쁜 소식을 알렸고 조금만 과장해서 전화기 너머로 우리 인턴선생님의 입이 귀에 걸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CT결과는 충수돌기염이 아닌 게실염.
우리 파트가 아닌 대장항문외과로 입원을 시켜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 때부터 다시 응급실 의사들의 물밑작전이 치열해졌다.

일부 인턴선생님들 사이에서 서로 그 환자의 심전도를 찍겠다며 눈치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한편 그 옆에서 3살짜리 꼬맹이를 꼬매고 있던 성형외과 1년차 선생님은 그 환자 입원시킬 때 팔이나 다리에 상처 하나만 내고 성형외과로 상처 케어에 관한 컨설트를 써달라는 부탁을 했다. 연예인이 입원한다는 소리를 들은 외과계 펠로우 선생님은 본인이 주로 머물고 있는 중환자실로 입원시키면 안되냐고 하셨지만, 그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서는 환자의 대장에 빵꾸를 내서 중환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no do harm 이라는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에 위배되는 바 정중히 refuse하였다.  어떤 내과 전공의는 그 환자가 열이 나니 본인들 파트로 컨설트를 써주면 안되냐는 농담 반 진담 반의 부탁을 하였고,  환자를 병실로 옮기는 이송사원들이 갑자기 나에게 환자가 언제 병실로 올라가는지 물어보는 횟수가 늘어났다.

아무튼 그 환자는 스케줄에 겨 입원 치료 중 급하게 퇴원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뒤 신문에서 그 연예인의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아파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환자들을 보면 어딘가 씁쓸하다.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