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는 미생물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위생가설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종합하는 의미로 인간을 뒤덮고 있는 미생물총과 이들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해볼까한다. microbiome(미생물총, 미생물군집으로 번역되기도 함)이라는 단어를 처음 만든 사람은 조슈아 레더버그다. 1958년, 불과 33살의 나이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던 이 할아버지는 미생물학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다. 무성생식을 통해서만 번식과 진화가 가능하다고 믿었던 박테리아 세계에서도 수평적으로 서로 유전물질을 나누며 섹스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밝혀낸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이후, 미생물 유전학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나사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지구의 미생물로 우주 공간이 오염될 수 있다는 개념을 내놓기도 했다. 미생물총은 ‘우리 몸과 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공생, 기생, 혹은 무해한 미생물들이 구성하고 있는 생태 집단’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외부 생명체들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게 되고, 최근에 대량의 데이터를 수집 분석할 수 있는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고 다량의 염기서열을 짧은 시간 내에 분석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서 인간의 미생물총을 통채로 분석하기 위한 시도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인간의 몸에는 약 10조개의 세포가 있는데 우리 몸 안 팎에 살아가는 미생물을 모두 합치면 100조개가 넘는다. 그 무게만해도 최대 4.2kg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거대한 미생물총이 우리 몸을 뒤덮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것은 90년대의 일로, 어떤 학자들은 ‘잊혀져던 기관’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우리 몸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나 중요도, 여러 기능들을 생각하면 하나의 독립적인 기관 혹은 장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련해 최근 가장 많은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곳은 미국 정부의 후원으로 진행되고 있는 인간 미생물총 프로젝트(human microbiome project)로, 단순히 미생물총을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을 넘어 특정 질병이나 건강상태와의 연관성도 찾고 있다. 특히 여기서의 연구들을 보면 피부 미생물총과 건선의 관계, 미생물총과 크론병 및 궤양성 대장염, 장내미생물총과 비만의 관계, 피부 미생물총과 여드름의 관계. 상부위장관 미생물총과 식도암의 관계, 아토피와 미생물총의 관계 등등 매우 다양한 질병들의 관계를 알아보고 있다. 이외에도 당뇨, 근위축증, 다발성 경화증, 류마티즘 관절염, 일부 암 까지도 그 연결 분야가 확장되고 있다.

미생물총과 여러 질병의 관계를 그럼 하나하나 살펴보자. 여기서 설명하기 전에 하나 주의해야할 점은, 아직 미생물총의 변화와 질병의 인과관계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즉 어떤 변화가 선행되었는지, 미생물총의 변화가 원인이 되어 질병이 생겨난 것인지, 질병이 생겨 미생물총에 변화가 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는 의미다.

뉴스를 통해 가장 잘 알려진 미생물총 관련 연구결과는 장내 미생물총이 비만인 사람의 경우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결과일 것이다. 동일한 유전정보를 지닌 쌍둥이일지라도, 비만인 쪽과 마른 쪽의 미생물 다양성에 매우 큰 차이가 나타났다. 비만인 쪽의 미생물 다양성이 크게 낮았다. 또한 기아 상태인 사람들 역시 장내 미생물이 정상적인 영양 섭취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크게 차이가 났는데, 장내 미생물이 영양소의 분해와 흡수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자가면역질환의 하나인 1형 당뇨병이다. 당뇨병이 발병한 사람의 경우에도 장내 미생물총의 다양성이 크게 낮아져 있었다. 또한 미생물총의 안정성도 낮았다. 피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 건선이나 아토피 같은 질환들이 미생물총과 큰 연관을 보였다. 우리 눈에는 두피와 겨드랑이의 차이가 얼마나 날까 싶지만, 미생물 다양성으로 보면 같은 숲이라도 온대 지역의 소나무 숲과 아마존 열대우림 만큼의 차이를 보인다. 그만큼 우리 몸 안에도 다채로운 생태계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미생물총의 영향은 단순히 신체적 질병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최근에는 우울증, 불안장애나 자폐증과의 연관성도 드러나고 있다. 라임병을 일으키는 기생충에 감염되면 2/3 가량의 환자들이 우울증을 겪는다고 한다. 또 우울증을 유도한 쥐에게 미생물군(probiotics)을 투여하면 신경전달물질의 분비에 변화가 일어나 우울증이 개선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불안 장애의 경우, 장내 정상미생물총이 흔들린 환자들에게서 자주 나타는데, 주요 장내 감염증 중 하나인 캄필로박터균에 감염된 쥐의 경우 불안 행동을 보였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자폐증과 미생물총의 관계는 아마 가장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분야가 아닐까 싶은데, 자폐증 환자의 경우 절반 이상이 위장관계 장애를 보이고 있으며, 비자폐 아동에서는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이 자주 발견된다는 아주 독특한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자폐증 발병 초기에 항생제를 통해 미생물총을 변화시킬 경우 일시적으로 증상이 완화된다는 연구가 있다.

미생물총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면서 우리의 면역계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이 부여되고 있는데, 기존의 생각은 우리의 세포, 조직, 장기가 합심해서 우리 몸에 있는 미생물들을 몰아내는데 집중하고 있다는 견해였다. 하지만 우리 몸 안에 수 많은 미생물들이 존재하고 있고, 이 미생물과의 공존이 일반적이며 나아가 필수적인 것이라면 미생물을 모조리 몰아내는 것은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면역계는 미생물을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쥐 등을 완전히 무균 상태로 키우면 성장이 더디기도 하고 특히 면역계가 제대로 발달되지 않는다는 것은 실험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즉 면역계는 미생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오히려 면역계가 미생물의 조종을 받기도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면역계 뿐 아니라 진화의 과정에서도 미생물총은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기생충이 유성생식의 발생을 촉진시킨것처럼, 미생물군도 진화의 중요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진화를 종 단위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종과 연관된 다양한 미생물군, 즉 하나의 ‘집단적 진화’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최근 산호의 급격한 개체수 감소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는데, 산호가 죽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하나가 바로 박테리아 감염이다. 산호에는 적응 면역력이 없기 때문에 오랜 시간에 걸쳐 박테리아에 면역력이 있는 유전형질을 가진 개체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질병에 대항할 능력이 없다. 하지만 2002년에서 2003년 사이, 불과 1년 만에 동지중해에서는 박테리아 감염에 저항성이 있는 산호군집들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산호의 번식 및 성장 시간을 따져보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를 산호와 공존하고 있는 미생물군이 다른 해로운 박테리아에 저항성을 얻을 수 있게 해주었으며, 이 ‘집단’이 진화적으로 선택되었다는 가설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어릴때 잔병치레가 많은 아이들이 커서 건강하다는 이야기도 사실 위생가설과 정상미생물총의 개념으로 따지고보면 일리가 있는 이야기인 셈이다. 다양한 미생물들에 노출되어 적절히 면역계가 형성되고, 이를 기반으로 풍부한 다양성과 안정성이 높은 미생물총을 가진 사람들은 그만큼 감염성 질환이나 자가면역질환이 발병할 확률이 낮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제는 영어 조기 교육이 아니라 미생물총에 어릴 때부터 노출시키는 미생물 조기 교육이 필요한 시점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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