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만큼 투쟁의 대상이 명확한 시대가 있었을까?  식민지라는 현실이 외부에서 침입해 온 적대적 대상이 존재한다는 의미라면, 독재라는 내부의 적을 상대해야 했던 한국의 근대사에 비해 무엇을 해야할까라는판단은 비교적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한병철 교수가 말하는 면역학적 사회, 어떤 형태로든 상대해야 할 대상이 분명하게 존재하는 사회로 보자면 일제 강점기만큼 그 정의가 확실하게 다가오는 시대도 없을 것이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친일을 일삼은 조선인이라는 내부의 적, 조선인을 돕고 이해하려는 일본인이라는 적안의 양심 등등의 복잡하고 다양한 면면을 볼 수 있겠지만, 일단 이런 세부적인 면면은 접어두고 서술한다.

면역적으로 반응을 일으켜야 할 대상이 매우 분명한 시대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제목은 왠지 생소하거나 새로운 느낌을 준다.  레지스탕스라는 단어..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에서 나찌에 대항하던 유럽인들의 이야기에서 레지스탕스라는 단어는 익숙하게 다가오건만, 왜 우리의 식민투쟁사에서는 이리 익숙치 않은 단어가 되어버렸는가..  친일 기회주의자들이 지금시대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음을 충분히 알고 있음에도 이 단어가 어색하다는 것은 적어도 나는 일제강점기의 투쟁사를 잘 모르고 있었음을 반증하는 일이 아닐까?

님 웨일스가 쓴 '아리랑'의 주인공 '김 산'의 일대기는 투쟁의 처절함을 가감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이 시대의 우리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들이 그 책에는 수없이 맨모습으로 묘사된다.  추적을 피해 혹한의 겨울 갈대늪에서 며칠을 버텨야 하고, 굶기를 밥먹듯 하며, 결핵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만 했던 처절함에서부터 시작하여, 젊은 나이에 결국 병으로 숨져가며 말하는 마지막 소원은 연애한 번 못해 본 한 때문에 여인네와의 가벼운 입맞춤이었다.  동지의 죽음 앞에서 살아남은 동지가 자신의 아내를 데려다가 입맞춤을 시켜주던, 인간의 기본적 욕구조차도 사치인 사람들의 처절한 삶의 기록에 비하면, 한국의 레지스탕스 책은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척 흥미진진하게 서술한다.  내용도 구성도 무언가를 좀 더 친근하게 다가와 진지하게 말하려는 듯한 의지가 보인다.  일제의 현금수송마차를 감쪽같이 털어낸 사람들의 이야기, 정체절명의 포위망 안에서도 죽더라도 한 명이라도 더 죽이고 죽겠다는 의지는 죽는 순간까지 권총 방아쇠를 당기고 있더라는 열사의 모습, 임시정부의 실체, 그리고 그 안에서 보여준 이승만의 기회주의적인 모습과 그의 실체까지, 친근하고 쉬우면서도 구체적인 설명이 책장을 쉽게 넘기게끔 한다.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왜 우리는 이제껏 이런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접할 수 없었던가, 이런 내용들은 우리는 왜 직접 찾아내어 배워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아쉬움이었다.

아쉬움은 말미에 더 깊어진다.  우리에게 해방은 어떤 모습인가.  이 책에서는 미완의 해방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해방을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의 저항을 이야기함에 있어 굳이 깊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지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무언가를 이야기하려다 말아버린 듯한 말미의 내용은 무척 아쉬움과 궁금증을 자아낸다.  내가 공부한 해방의 모습은 해방이 아닌, 식민상태에서 지배세력의 교체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는 과정이었다.  일본이 항복을 선언하고 미군이 인천을 통해 들어왔을 때, 그들은 중무장 상태의 행군이었고 그들을 맞이하러 태극기를 들고 나간 조선인들 중, 감격에 겨워 행군대열 앞으로 뛰쳐나가던 두 사람이 총에 맞아 사망한 것이 내가 공부했던 해방의 모습이다.  해방이후 조선에서 대한민국 건국을 거쳐 지금까지 우리가 인식해 온 것은 자유당으로부터 시작된 독재와 친일잔재의 연연이었지만, 이를 거슬러 해방의 과정과 형식을 살펴보면 과연 우리는 정말 해방이 되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나는 저자에게 우리의 해방을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가를 묻고 싶다.  내가 알고 있는 해방의 이해는 편향된 공부때문에 형성된 것인지, 아니면 좀 더 알아야 할 해방의 모습의 일부인지, 그리고 내가 모르는 그리고 이해해야 하는 이면이 존재하는 것인지, 이 책을 쓴 저자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책의 내용을 보아서는 무척 재밌고 쉽게 말해 줄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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