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9.10.18 금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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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소견서를 쓸 것인가

나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일지도 모른다.
과도한 의료비용의 증가를 우려하면서도
고비용의 표적치료제를 보험으로 환자에게 쓸 수 있기를 바라는 것.

제한된 돈과 자원문제라고 한다면
우리의 비용지출구조를 다시 점검해 볼 필요는 없는 것일까?
꼭 모든 암환자에게 5% 본인부담금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일까?

전이될 가능성이 매우 매우 낮은, 각종 암의 0기 환자들도 다 5%만 낸다. 그래서 건강검진차원에서 PET-CT를 찍고, 머리가 아프면 MRI를 찍는다. 몇만원 안드니까. 진료실에 있다보면 환자들의 도덕적 해이 (Moral hazard) 를 자주 경험한다. 

또 다른 재원 조달 구조는 없는 것일까?


예를 들면
HER2 양성 유방암은 그 자체가 공격적인 성격이 강해 빨리 재발하고 HER2 경로를 차단하는 표적치료제를 쓰지 않고 일반적인 항암제만 쓸 경우 잘 치료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가능한 HER2 치료제는 허셉틴(trastuzumab, Herceptin®)과 타이커브(Lapatinib®) 두가지가 있다. 반드시 보험에서 인정하는 용법으로만 써야 한다. 인정요법 이외로 이 약제를 사용할 경우 임의 비급여, 즉 불법 진료가 된다.

HER2 표적치료제가 보험이 되는 경우

1. HER2 양성인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서 최초 항암치료 시 허셉틴과 탁솔을 쓰는 것

2. 이런 약제로 치료하다가 병이 진행하면, 표적치료제인 타이커브를 바로 쓰면 안된다. 타이커브 쓰기 전에 반드시 아드리아마이신으로 치료를 해야 한다. 일단 아드리아마이신으로 몇 싸이클 치료한 다음 그 치료에서 실패했을 때, 즉 병이 나빠져야 비로소 타이커브를 젤로다와 같이 쓸 수 있다. 그래야 보험으로 인정이 된다.

3. 종양의 크기가 1cm을 '초과'하는 조기유방암 환자에서 1년간 허셉틴을 쓰는 것이 보험이 된다. 그러니까 0.9cm 이나 1.0 cm 은 보험이 안된다.

딱 이 경우를 제외하고는 HER2 표적치료제를 사용하면 모두 임의 비급여이다.
그러나 유방암을 전공으로 하는 종양내과 의사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허셉틴과 탁솔로 치료를 하여 한번 반응이 좋았던 환자는 시간이 지나 내성이 생겨 병이 나빠지더라도 허셉틴을 유지하면서 탁솔을 다른 항암제로 대체하면 허셉틴 감수성이 다시 살아나서 병이 다시 또 좋아진다는 사실을.

그래서 허셉틴과 바꾼 항암제로 치료하다가 좋아지면 항암제 독성을 고려하여 항암제를 중단하고 허셉틴만 유지하여도 수년간 환자의 병이 안정적으로 잘 조절될 수 있고 독성이 거의 없는 허셉틴 덕분에 머리카락도 빠지지 않고 구역 구토감도 없으며 피검사도 할 필요없이 안정적으로 자기 생활을 다 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HER2 양성 유방암 환자에서 평생 단 한번만 허셉틴을 쓴다는 것은 의학적으로 잘못된 치료라고 말할 정도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약인데도, 처방하면 쓸 수 있는 약인데도, 그냥 한번만 쓰고 포기해야 한다. 정말 아까워 죽겠다. 환자가 이 사실을 알고 내가 돈을 다 낼 테니 제발 써달라고 해도 처방하면 안된다. 임의비급여 처방은 환자가 심평원 인터넷 클릭 한번만 하면 병원이 모두 환불해야 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서는 허셉틴 탁솔 후 병이 나빠지면 구토감도 가장 심하고 한번 투약으로 머리카락이 몽땅 빠지는 아드리아마이신으로 환자를 힘들게 한 다음, 병이 나빠져야 비로소 다음 표적치료제인 타이커브를 쓸 수 있게 된다. 병을 키운 다음 약을 써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쓸 수 없는 HER2 표적 치료제

이들 두가지 약제 이외에도 퍼제타(Pertuzumab, Perzeta®), 캐드실라(T-DM-1, Kadcyla®)가 미국과 유럽에서 승인된 상태이다. 이들 약제가 공인되기까지 수많은 3상 임상연구에는 한국의 유방암 환자들이 등록 랭킹 1-2위를 다투며 임상연구에 등록되었고, 이런 한국 임상연구의 경험과 성과는 많은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한국 의료 수준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고, 최근에 는 수많은 신약 임상연구를 한국에서 시행하려는 다국젝 제약회사의 제안이 급증하고 있다.

그런 신약 임상연구가 있을 때 기존 연구 데이터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가능한 환자를 임상연구에 참여하도록 설명하고 독려한다. 진료시간이 부족하면 따로 면담시간을 잡아 환자에게 약제의 의미를 설명하고 임상연구가 ‘사람을 동물로 간주하는 비윤리적 실험’이 아니라는 것부터 이 약제의 효과가 어떻게 입증되었는지, 기존의 연구를 통해 알려진 독성은 무엇인지, 투약군으로 배정될 확률이 50%이고 위약군에 배정될 확률이 50%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것이 어떤 이득이 있을지, 찬찬히 설명한다. 그렇게 애를 써서라도 환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기회라고 믿기 때문에 굳이 진료시간 이외의 시간이라도 할애하여 의미를 전달하고 임상연구에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모든 약제에 대한 임상연구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유방암에서의 HER2는 그만큼 강력한 유전자이기 때문에, 허셉틴이나 타이커브를 다 쓴 환자에서는 보통 항암제보다 새로운 HER2 약제를 쓰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그래서 기를 쓰고 설명해서 임상연구에 참여하시도록 한다. 그것은 임상연구가 아니면 그 약을 쓸 방법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양심이기 때문이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조기유방암 HER2 환자는 수술하기 전에 허셉틴을 포함한 항암치료를 할 경우 종양이 줄어드는 속도가 매우 빠르고, 심지어 수술 시 종양조직이 남지 않는 병리학적 완전관해를 이루는 경우가 높게는 60%에 달한다. 이렇게 병리학적 완전관해를 획득한 환자는 수술 후 재발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래서 수술전 항암치료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

우리나라 환자는 일단 수술을 하고, 또 항암치료 따로 하고, 그리고 그 이후에 1년간 허셉틴을 쓰는 것만이 보험이 된다. 어차피 국내에서 쓸 수 있는 약이고 1년간 쓸 약인데 수술하기 전부터 쓰면, 환자의 치료기간도 수개월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반드시 수술 후에, 항암치료를 다 하고 나서, 그 후에 써야 한다. 그 외의 용법은 임의 비급여이다.

환자 본인이 돈을 내서 수술전 허셉틴을 쓸 수도 있다. 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100% 진료비를 환자가 다 내야 한다. 돈이 많으면 그렇게라도 하라고 하고 싶다. 성적이 확연히 좋으니까. 그러나 문제는 수술을 하고 나서 쓰는 허셉틴도 보험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심평원에서 인정한 약제조합과 용법이 그렇기 때문이다. 심평원에서는 3상 임상연구에서 좋은 결과를 낸 임상연구와 똑같이 시행되는 것, 그런 연구 성과 중에서도 일부만을 보험으로 인정해주기 때문이다. 다른 암에도 이렇게 타이트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용법은 3상 연구결과가 없이 2상 연구결과만으로도 보험 적용을 해주기도 한다. 유방암은 환자가 많고, 보험으로 인정해주기 시작하면 국가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가가 공적으로 보장하는 의료보장체계의 한계라고 생각한다. 심평원에서 이를 평가하는 사람 중 의사도 있는데 도대체 이해가 안된다. 어떻게 해야 이런 주장에 귀를 귀울일 것인가. 가까운 사람 중에 HER2 유방암이 걸리면 정작 그들은 어떻게 치료할 것인가. 돈이 얼마가 들더라도 최선을 다해 치료해 달라고 말할 것인가. 개인적인 루트로 약을 사서라도 치료하고 싶을 것이다. 그 데이터를 보고 이해한다면. 

지난 9월 30일자로 미국 FDA는 HER2 양성 조기유방암 환자의 경우 수술 전 항암치료를 할 때 허셉틴과 퍼제타 두가지 약제를 동시에 사용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두가지 약제를 동시에 사용했을 때 장기 생존율이 가장 우수하기 때문에, 심지어 그렇게 치료하지 않는 것을 의학적 과오(malpractice)라고 까지 규정하였다. 퍼제타는 보험이 되지 않으면 한달에 800만원 가까이 하는 비싼 약이다. 로슈가 우리나라에서 퍼제타 약가를 얼마로 책정할 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비싸다. 허셉틴 단독보다 두가지 약제로 동시에 HER2를 막는 것이 성적은 2배 가까이 우수하다. 비용은 2배 이상이 든다. 경제적 독성 (Economic toxicity) 또한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퍼제타는 아직 우리나라에 들어온 약도 아니다.
캐드실라도 아직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못했다.
돈이 많아도 쓸 수 없다.

그들 약제를 다 쓸 수 있다면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의 치료 성적은 매우 우수해 질 것이다. 그냥 우수한 정도가 아니라 아주 아주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것이다. 이러한 성적의 향상은 유방암을 진료하는 종양내과 의사가 아니면 잘 모른다. 같은 종양내과 의사라도 체감할 수 없다. 그것은 유방암 치료 중에서도 아주 전문적인 특정 분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또한 나는 왜 한국 유방암 환우들이 이 문제를 들고 일어서지 않는지 모르겠다. 이건 정말 데모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자기 삶을 몇 년간 연장할 수 있는 문제인데 말이다.

나는 그런 신약을 빠르게, 가이드라인대로 쓸 수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 그 정도는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우리나라에 있는 허셉틴이나 타이커브라도 의학적 근거에 따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환자를 치료한 다음에 심평원에 소견서 쓰고, 사전 신청하고, 서류 냈다가 한번 빠꾸 먹으면 2년간 해당 용법은 다시 서류를 내지도 못한다. 서류 작업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는지 모른다. 나를 포함한 의사들이 너무 소심한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렇게 심평원이 시키는 대로 눈치보고,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치료하고 욕먹고, 치료보다 서류작업을 더 많이 해야 하고, 좋은 약 있는데도 쓰지 못하고 나쁜 약 쓰면서, 이렇게 의사질을 해야하는 것일까?

어차피 보험 적용의 대상이 안되는 러시아 환자들은 수술 전 허셉틴을 쓴다. 돈이 많이 든다며 울상을 짓던 환자들도 단 한번의 치료에 작아지는 종양을 보면서 환호한다. 수술하면 유방에 암세포가 없다. 그들은 한국의 HER2 환자들보다 분명히 예후가 좋을 것이다. 

너무 화가 난다.
치료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쓸 약이 있어도 보험 때문에 제대로 쓸 수가 없으니
분명히 회생 가능성이 있는 환자들인데도 그냥 지켜봐야 한다.

퍼제타 승인 소식에 흥분했다. 늘 흥분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소견서를 쓰고 있다.

이건 아닌거 같다.

이수현  socmed@bravomybreas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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