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는 일본에서 시작된 단어다. 상대방의 집을 높여 부르는 말 '귀댁(お宅, おたく)'이라는 일본어에서 유래됐다.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비디오 등에 취미가 있던 사람들이 만나서 ‘귀댁(오타쿠)에서는 어떤 애니메이션을 즐겨보십니까?’와 같은 대화를 나누다가, 그것이 애니메이션, 게임과 같은 특정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초기에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사교성이 부족한 은둔형 외톨이를 뜻했으나, 요즘 들어서는 한 분야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나 전문가를 지칭하기도 한다. 영어로는 마니아(mania)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오타쿠라는 말이 우리나라에 전해지면서, 마치 한국인 이름처럼 익살스럽게 바뀐 것이 바로 ‘오덕후’다. 짧게 ‘덕후’라고 부르기도 하고, ‘~덕’처럼 접미사로 사용하기도 한다. 누군가를 ‘겜덕’이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게임 오덕후’ 또는 ‘게임 마니아’라고 생각하면 된다. ‘애니덕’은 ‘애니메이션 덕후’, ‘밀덕’은 ‘밀리터리 덕후’, ‘건덕’은 ‘건담 덕후’를 뜻한다.

나는 가끔 오타쿠의 집합소라 불리는 한 사이트에 들어가 보곤 한다. 덕후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한 분야에 강한 흥미를 지닌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 중 특히 서양출신 덕후들은 내가 상상하지도 못한 일들을 저지르곤 했다. 배트맨을 좋아하는 스웨덴 사람은 직접 배트카를 만들었다. 어느 밀덕은 철판 수작업으로 전차를 만들었고, 로켓이나 비행기를 만들어 날리기도 했다. 철도 덕후는 철도 모형을 손으로 직접 만들어 완성했고 그들이 하는 코스튬 플레이는 게임화면과 거의 흡사했다.

나는 그들을 보면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저걸 만들면서 얼마나 재미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 한 가지에 열정적으로 매달린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취미에 푹 빠져있는 사람들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행복하게 마련이다. 물론 도가 지나쳐 직장이나 사회생활에 지장을 주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야 취미활동에 열심인 것이 나쁠 이유가 없다.

나도 그런 오타쿠의 대열에 동참한 적이 있다.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며 사용했던 고물 노트북이 있는데 이제는 너무나 구식이어서 인터넷 서핑도 힘들 정도의 퇴물이 되었다. 버리기엔 아까워서 처치곤란이었는데, 잘 하면 미니 오락기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책장 하나를 희생해 오락기 케이스를 만들었다. 처음엔 간단하게 생각했었는데 하다 보니 스피커 매립도 하고 도색에 아크릴 인쇄까지 대공사가 되어버렸다. 손수 톱질, 사포질, 페인트칠을 하는 동안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뭔가를 만드는 재미를 꽤 오래 잊고 살았던 것이다. 그럭저럭 멋진 오락기가 만들어졌고, 그 제작기는 사진과 함께 인터넷 유명 포털의 메인화면에 소개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비주류에 대한 편견이 심하다.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취미는 모두 오타쿠로 치부하며 특이한 사람 취급을 한다. 하지만 우리가 오타쿠라 부르며 폄하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의 취미에 즐거워하는 건강한 정신의 소유자들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한 분야에 빠져서 행복해하는 것을 왜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지 모르겠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내게는 아무런 취미도 없이 TV나 보며 하루일과를 마감하는 사람보다, 한 가지 취미에 열정적인 사람이 더 좋아 보인다. 더 행복해 보인다. 어찌 생각하면, 제대로 된 취미 하나 없는 사람이 더 불행한 건 아닐까.

전해 내려오는 명언이 하나 있다.

“덕후는 되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되어있는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하다 보니 덕후라는 말을 듣는 것뿐이다. 덕후는 그런 것이다. 애정과 열정이 있기에 덕후가 되는 것이다.

내가 플라모델을 만들고, 미니 오락기를 만드는 것이 다른 이의 눈에는 ‘쓸모없는’ 일처럼 보일지 몰라도, 중요한 것은 그런 짓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즐거웠는가’가 아닐까. 내가 즐거웠다면 그것은 ‘쓸모 있는’ 짓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쓸모없는 짓을 한다. 남들은 그 시간에 얼마나 인생에 도움 되는 일들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행복으로 가는 길이 다른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으로 가는데 꼭 같은 길을 걸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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