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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기 다신 오나 봐라!


신경과 전문의를 취득한지 얼마 안 된 내 의국 후배는, 최근 환자가 계속 늘고 있다. 하루 30명도 채 안 오던 병원인데, 지금은 80명이 넘는단다. 환자의 이야기를 잘 듣고 하나하나 꼼꼼하게 진찰을 해 주기 때문이다. 너무 자세히 상담을 해서, 대기하는 분들이 불평을 할 정도다. 여기저기 세심하게 봐주니 환자는 의사를 따르게 되고 자연히 병원은 붐비게 되는 것이다.

후배 이야기를 들으면서 떠오른 기억이 있다. 20여 년 전, 대학생 새내기였던 나는 서해안 XX포 해수욕장으로 동문회 MT를 갔었다. 미리 사전답사를 해서 숙소 예약까지 마친 상태였다.

막상 숙소에 도착해 짐을 풀려고 하니 험상궂게 생긴 주인아저씨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값이 올랐으니 7만원을 더 내라는 것이다. 학생 신분에 7만원은 큰돈이라, 예약할 때의 값을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고 했더니 콧방귀를 뀌며 딴 데 가란다. 성수기라 민박이 꽉 차있는 것을 알고 값을 올려 부르는 것이다.

험상궂은 아저씨의 모습에 우리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한참 공포분위기를 조성하던 중, 마침 간이샤워장에서 아주머니가 나오는 것을 본 아저씨의 눈이 반짝였다. 아주머니는 이 민박집에 묵는 분이 아니었나보다. 먹잇감을 발견한 맹수의 눈빛이었다.

“아줌마, 그 샤워실 누구 허락받고 쓰는 거요? 남의 샤워실을 맘대로 써도 되는 거요? 엉?”

“모르고 쓴 거잖아요. 뭘 그렇게 소리를 질러요.”

아주머니도 만만치는 않았다. 우리는 얼어붙은 채 둘의 말다툼을 바라보았다.

 “허, 참, 이 아줌마 안 되겠구만? 만 원 내놓으쇼.”

“만 원? 잠깐 씻고 나온 게 만원이라고? 나 돈 못 내니까 맘대로 하쇼.”

아주머니는 그대로 돌아서서 가려했다. 아저씨가 아주머니를 붙잡았다. 팔을 뿌리치고 서로 밀치고 당기며 소리를 높였다. 그 때, 우리 눈으로 보고도 못 믿을만한 일이 벌어졌다. 아저씨가 발로 아주머니의 가슴팍을 걷어찬 것이다. 퍽. 아주머니가 저만치 날아가 바닥에 뒹굴었다.

“아이고, 나죽네. 나죽어!”

아주머니는 비명을 질렀고, 아저씨는 침을 바닥에 퉤 뱉더니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우리를 괴롭혔던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아저씨가 사라졌으니 방 값 흥정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바다로 나왔다. 고무보트 하나를 대여하기로 했다. 주인이 우리를 슥 보더니 우리가 끌고 가려는 보트 말고 다른 걸 가져가라고 했다. 다른 보트는 탱탱했는데 그 보트는 좀 힘이 없었다. 왜 그러나 싶긴 했는데 별다른 의심 없이 시키는 대로 했다.

한참 고무보트를 타고 노는데, 어쩐지 바람이 좀 빠지는 것 같았다. 노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놀았는데, 막상 반납하러 가니 주인아저씨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어, 뭐야! 바람 빠졌네! 찢어졌구먼!”

보트 여기저기를 살피더니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에서 바람이 좀 새고 있었다. 아저씨는 우리에게 보트 비용으로 20만원을 요구했다. 우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우리 잘못이 아니라고, 원래 그랬노라고 하소연했지만, 험악한 아저씨들이 인상을 쓰며 우리를 둘러싸는 통에 어쩔 수 없이 변상할 수밖에 없었다.

밤이 되자 경찰이 찾아왔다. 아주머니가 경찰에 신고한 모양이었다. 주인아저씨는 눈치를 채고 이미 도주했다. 선배 한 명이 경찰서에 가서 증인으로서 조서를 쓰고 왔다.

다음날,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선배가 말했다.

“내가 여기 다신 오나 봐라!”

선배의 말대로, 나는 그 후 XX포 해수욕장에 간 적이 없다. 불친절과 바가지에 다시 갈 마음조차 나지 않았다. 물론 20년 전 일이니 지금도 그렇게 배짱장사를 하지는 않겠지만, 수많은 해수욕장 중 그곳에 다시 갈 이유는 없었다.

만약 그 해수욕장에서 내가 별 탈 없이 즐거운 추억만 남겼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여름마다 그곳에 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 이후로 나는 XX포 이야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영업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비결은 ‘다시 오고 싶어지게 하는 것’에 있었다. 음식점은 맛이 있어야 다시 오고 싶고, 호텔은 깨끗하고 편안해야 자주 들리게 된다. 환자는 꼼꼼하고 친절한 의사를 잊지 못하고, 소비자는 A/S가 확실한 회사의 제품에 지갑을 열게 되는 것이다. 눈앞의 이익에 연연해서 남을 속이거나, 내 몸이 편하자고 불친절하게 대해서는 성공할 수가 없다.

내 후배 병원에 환자가 몰리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평판이 좋은 후배가 자랑스럽기도 하고, 또 많이 배우기도 한다. 다시 오고 싶어지게 하는 것,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었다.

권준우  iniaini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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