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뭐라 생각해?”
“움직이는 그림이잖아.”

열여덟 번을 맞이했던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났다. 사람들은 흔히 ‘영화의 바다’에 빠졌다고 말한다. 10월3일 개막작인 <바라>를 시작으로 폐막작인 <만찬>에 이르기까지 나름 열심히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영화의 바다’를 허우적거리며 돌아다녔다. 영화표를 날짜별로 정리해보니 모두 열여덟 편을 관람했다. 출근하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 올해부터 다시 공휴일이 된 한글날 덕분에 꽤 많은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가졌다. 평일은 근무관계로 저녁에 상영하는 한 편만을 볼 수밖에 없었고, 휴일엔 그야말로 메뚜기 꼴이 되었다. 내가 본 영화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10.4     (1) 애비 Twisted Daddy 한국 메가박스 해운대 Table M관
10.5     (2) 화장실 블루스 Toilet Blues 인도네시아 영화의전당 중극장
           (3) 나는 아직 살아있다:페루의 음악혼 I Still Being 스페인/페루 CGV센텀시티 2관
           (4) 굿나잇 Good Night 미국 CGV센텀시티 6관
           (5) 은밀 부위 Intimate Parts 러시아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10.6     (6) 발코니 Balkon 카자흐스탄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관
          (7) 우리는 불법노동자 Workers 멕시코/독일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8) 미결처리자 The Keeper of Lost Causes 덴마크 메가박스 해운대 M관
10.7    (9) 허니문 Honeymoon 체코/슬로베니아 동서대학교 소향 뮤지컬씨어터
10.8   (10) 우마 UMMAH-Among friends 독일 메가박스 해운대 3관
10.9   (11) 카달 Kadal 인도 영화의전당 중극장
        (12) 늑대들 Big Bad Wolves 이스라엘 롯데시네마 센텀시티 5관
        (13) 톱스타 Top Star 한국 메가박스 해운대 9관
        (14) 글로리아 Gloria 칠레/스페인 동서대학교 소향 뮤지컬씨어터
10.10 (15) 제5계급 The Fifth Estate 미국 CGV센텀시티 3관
10.11 (16) 질투 Jealousy 프랑스 CGV센텀시티 Starium관
10.12 (17) 바라 Vara: A Blessing 부탄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
        (18)그랜드 피아노 GRAND PIANO 스페인/미국 영화의전당 중극장


나는 영화를 평가할 수준이나 능력도 없는 사람이다. 단지 ‘움직이는 그림’에 동조하는 수준일 뿐이다. 지난해에 이어 총 관객 수가 20만 명이 넘었다는데 조금 일조했을 따름이다. 남을 비방하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영화제 기간 동안 나의 눈에 비친 눈살을 찌푸리는 일에 대해 말하는 것은 어쩌면 관객의 입장에서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제목처럼 유감을 표해보고자 한다.

먼저, 영화표를 구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Busan International Festival Ticket Catalogue 2013을 구해 299편의 영화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참조해서 보고 싶은 영화를 선택하는 일이 먼저다. 영화 상영시간, 상영관, 영화를 볼 나의 시간적 여유 삼박자가 맞아야만 한다.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다. 표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렵다. 개 ,폐막작은 그야말로 신의 경지에 이른 ‘광클릭 신공’을 가지지 않은 나에겐 우물에서 숭늉찾기다. 개막식 입장권은 43초, 폐막식은 3분55초 만에 표가 매진되는 놀라운 기록을 남겼으니 말이다. 그나마 이 정도의 영화를 볼 수 있었던 건 누님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 덕분이다. 미처 인터넷 예매를 못해 아침 출근길에 일찍 출근하여 현장매표소에서 줄을 섰다가 당일표 외엔 예매하지 못한다 하여 헛걸음을 치기도 했다. 현장예매는 외삼촌께서 아침 여섯시에 출발하여 줄을 선 덕분으로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정말 고생하신 외삼촌께 맛있는 식사 대접이라도 해야겠다.

영화제가 어느 듯 성년으로 다가오는 올해에도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제1회 영화제 이후로 별로 나아진 모습을 찾기 어려웠고,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거나 지체발달장애자처럼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듯했다.

영화제에 대한 나의 기대는 첫 번째 영화인 장현수 감독의 <애비>를 보러 가는 순간 깨져버렸다. 아버지는 아들이 검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비록 고급요정에서 험한 일을 하며 비굴하게 살지만 아들이 법대에 가서 검사가 되면 그게 인생의 보람일거라 믿는다. 아들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커다란 상처를 줄 일도 서슴지 않으면서 그렇게 자신을 합리화한다....
무언가 던지는 메시지가 있는 장 감독이었기에 기대를 하고 메가박스 해운대 Table M관에 갔다. 친구부부와 같이 갔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안내하는 자원봉사자가 입장을 막는 것이 아닌가? 우리 좌석은 J열이었다. 인터넷예매를 했는데, 전산오류로 실수가 있었으니, 영화시작시간이 되면 좌석을 마련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Table M관은 좌석이 I열까지 있었을 뿐이었다. 화가 치민 우리는 따져 물었다. 동네영화제도 아니고 명색이 국제영화제인데, 만약 인터넷예매한 사람이 우리가 아니고 외국인이었다면 이 얼마나 망신이겠냐? 영화제를 한 지가 열여덟 해를 맞았는데, 개봉관의 좌석 파악도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다행이 빈 좌석이 있어서 영화를 봤지만, 보는 내내 드는 분심으로 불편했다. 영화제 관계자들은 대오각성을 해야 한다! 관객은 불편한 그 시각, 영화제 관련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배우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웃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더욱 그러하다.

또 하나의 불쾌감을 맛 본 것은 영화의전당 중극장에서 오후 7시에 상영할 <그랜드 피아노>를 보기로 한 폐막식 날이었다. 오후 2시에 개막작이었던 <바라>를 영화의 전당 하늘연극장에서 보고 세시간 정도 여유가 있어 해운대 바닷가를 들렀다가 돌아오던 참이었다. 새벽부터 설쳐 현장예매로 표를 구했더니 좌석이 앞에서 두 번 째열에서 가장 오른쪽이었다. 그런데 무대가 튀어나와 스크린을 보기가 힘들었다. 도저히 영화 관람을 할 수 없는 자리였다. 일반 영화관에는 아예 그런 앞쪽 모진 곳에는 좌석배치를 하지 않는다. 반대편 왼쪽 자리에는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앉았다. 국제적 망신이다. 이것 고치지 않으면 영화의 전당이라는 말을 쓰지 말아야할 것이다. 지난해에도 느꼈던 불쾌감이다. 달라진 것이 없다. 비가 새는 것은 올해도 마찬가지였단다. 보도에 따르면, 태풍 다나스로 부산 지역에 폭우가 들이 쳤고 영화의 전당 내부에 위치한 프레스룸 유리 천장에서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 “올해는 문제없을 것”이라 자신했던 이용관 위원장의 발언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참 가관이다!

해운대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신세계백화점을 통해 영화의 전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경찰들이 인도를 막고 있었다. 통행이 불가하니 빙 둘러 영화의 전당을 한 바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경찰만 봐도 부아가 치미는데 둘러가라니. 중극장으로 향하는 승강기가 바로 코앞에 놓여있는데?

“아니, 왜 못 가게 막는 겁니까?” 내가 소리를 질렀다.
“못갑니다. 돌아가세요.”
그래도 그냥 지나가니까, 어깨에 말똥을 단 경찰이 고함을 쳤다.
“막아!”
“왜 못 가게 막는데요? 영화관객이 영화를 보러 가는데 어째서 막나요?”
잠시 멈칫하더니, 영화표를 보자고 한다. 표를 보여주었으나 그래도 못 간다고 한다.
“그 이유나 좀 압시다!”
“관계자들 차량이 올 시간입니다. 차에 다쳐요.”
내가 아이도 아니고 오는 차에 부딪힐 만큼 순발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시야에 차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폐막식과 관련해서 허남식 부산시장, 조직위원장 그리고 배우들이 오겠지. 입에서 거친 말이 튀어나왔고,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20여 미터를 걸어 무사히 통과했다.


집에 와서 폐막식을 검색해보았다. 한 블로거는 그의 글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부산국제영화제 페막식, 부산 시민으로서 아주 쪽팔렸습니다.’라고.

리처드 용재 오닐과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폐막 축하공연을 연주하고 있을 때, 대형 스크린에 자원봉사자들 모습이 흑백 사진으로 나와 관객의 박수를 받았고, 뒤이어 허남식 부산 시장의 BIFF 관련 사진과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의 영상이 꽤나 길게 나왔던 모양이었다. 이 집행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태풍의 영향으로 협찬사들이 기대했던 홍보효과를 거두지 못함을 사과했는데도 폐막식장에서 협찬사를 일일이 열거하며 긴 시간을 사과하는데 할애했단다. 과거 김동호 집행위원장 시절에는 대권 주자들까지 영화제에서 자신의 얼굴을 알리고 싶어 했지만 한 번도 외압에 굴복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새벽부터 어렵사리 표를 구한 관객들은 저런 인간들 때문에 지름길을 놓아두고 둘러가라고 경찰행정력을 동원하는 꼴이라니.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했는데 필시 이런 류의 인간들은 겸손의 덕목은 고사하고 영화 관람도 공짜로 했지 싶다. 참 나쁜 사람들이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표를 직접사서 관람을 해야 정상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나는 자원봉사자들을 폄훼할 생각은 터럭만큼도 없다. 그러나 꼭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영화 상영에 앞서 사진 찍지 마시고, 전화기 꺼달라는 이야기를 한다. 뒤이어 영어로 같은 이야기를 한다. 정말 괴롭다. 영어발음도 발음이지만, 그 마이크 소리가 거의 소음 수준이다. 스크린에 ‘No, photography. No cell phone.'하고 비추고 있으니 무슨 말의 중복이 필요할까? 영어권이 아닌 외국인들은 뭐냐? 속된 말로, 촌빨 날린다. 꼭 말을 해야겠다면, 유창한 영어발음을 하는 사람을 임시로 고용하든지, 아니면 녹음을 해서 틀어주는 것도 한 방법이지 싶다.
덧붙이면, 자원봉사자의 수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영화의 전당 중극장, 소극장에 갈 때 한사람씩 타는 아주 좁은 승강기 아래서 여섯 명이나 서서 표를 검사하고, 승강기타고 극장 앞에서도 네 명이나 다시 표를 검사했다. 한 번은 서울에서 온 관람객 부부가 상영시간 조금 늦어 자원봉사자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새벽에 KTX를 타고 왔는데 몇 분 늦었다고 입장불가라 하니 분통이 터질 수밖에. 그래서 주위 집기를 발로 찼던 모양이었다. 경찰관이 오고. 얼마든지 지혜를 발휘해 기분 상하지 않게 할 수도 있었으련만. 옆에서 이 광경을 본 친구 아내가 그 관람객 편을 드는 것을 보면, 융통성 없는 운영을 짐작할 수 있겠다.


직장이 해운대인 관계로 벡스코에서 지하철을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출퇴근을 한다. 언제나 그렇게 느끼지만 벡스코는 삭막하다. 고층빌딩과 주차장과 넓은 도로로 인해 대형백화점 가는 사람들만 조금 붐빌 뿐, 그 외의 곳은 휑하기까지 하다. 초창기 때는 남포동 PIFF광장 주위에 발을 디딜 틈도 없이 북적거리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났던 기억이 남아있다. 외지에서 온 관객들은 해운대 물가가 비싸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사실 영화의 전당 주변에는 먹을거리도 마땅찮다, 기껏해야 백화점의 푸드 코너가 전부다. 남포동은 자갈치시장, 국제시장의 먹자골목, 부평시장등 값싸게 먹을 곳과 한 잔 술을 기울일 곳과 구경거리가 풍부하다. 영화제 기간에 모두 299편이 상영되었는데 남포동의 메가박스 부산극장관에서 27편 상영되어 9%남짓하다. 그것도 영화제 기간 중 10월 4,5,6일 딱 삼일만 상영했다. 해운대권역 시민들을 제외한 부산시민들을 엿 먹이는 짓이다. 오히려 해운대 메가박스는 상영을 없애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영화관이 들어선 건물은 경기가 좋지 않아 1,2층을 빼고는 점포들이 문을 닫아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니 말이다. 내년부터는 뉴커런츠 부문은 남포동에서 모두 상영한다든지 하는 특단의 조치가 있어야하겠다. 그래야 서부산권 사람들의 소외감을 줄일 수 있으리라.

앞으로는 각 상영관에서 표를 직접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인터넷예매도 가능하고, 신세계백화점 앞에서만 아니라 상영관에서 직접 표를 구할 수 있게 말이다. 장르별 상영관을 둔다든지 하면 남포동 PIFF 광장에도 활기가 띨 것이고 시민들의 축제요, 잔치가 될 것이다. 해운대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각 상영관에서 현장판매하면 꼭 2장이 아니더라도 일행이 네명이면 4장도 구입할 수 있도록 관객위주의 행정을 펴야하지 않을까 싶다.
레드카펫과 관련해 강동원과 영화제 측의 마찰이야기, 생뚱맞은 이름도 잘 모르는 여배우들의 깊게 패인 가슴골과 엉덩이골은 입이 더러워지니 말을 말자.

어머니를 모시고 영화 두 편을 볼 수 있어 무척 행복했다. <카달>이 좋았다고 하셨다. 인도영화로 구원과 용서에 관한 마니 라트남 감독의 대하 드라마. 작은 고기잡이 마을에 사는 토마스는 매춘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사탄의 자식으로 불리며 동네사람들로부터 멸시를 받는다. 다행히도 새로 취임한 반항아 신부 샘이 폭력적인 토마스의 과거를 끌어안고 그가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 토마스는 자라서 어부가 되고 어느날 고기잡이 여행에서 돌아와 그 신부가 간음과 살인의 죄를 덮어쓰게 되었음을 알게된다. 그는 충격을 받고 신부가 그에게 가르쳐주려고 한 그리스도인 신앙으로부터 배신감을 느낀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찾아다니는 그는 결국 살인과 배신, 거짓말과 복수가 왕인 범죄자의 세상에 발을 딛게된다....

151분간의 긴 상영시간에도 지루함 없이 잘 봤다는 어머니. 개인적으로는 <카달>이 개막작이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영화제를 통해 가족 간의 사랑과 우의를 느꼈다. 또 어머니는 동서대학교 소향 뮤지컬씨어터에서 <글로리아>도 보셨다. 이 상영관은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어 상영 중 계단 지나가는 발자국소리며 물건 떨어뜨리는 소리가 커서 방해가 많았다. <나는 아직 살아있다: 페루의 음악혼>은 정말 감동을 받았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울려퍼지는 감성적인 노래와 현의 선율이 감동적인 다큐멘터리로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페루의 영혼과 자아를 찾는 연대기이기도 하다. 특히 하프를 고물차 지붕에 싣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없이 살아도 문화강국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웃음을 머금었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 집 앞에서 바이올린과 하프 연주에 노래를 부르며 어머니를 생각하는 장면은 아직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스라엘 영화인 <늑대들>에서는 톱으로 사람의 목을 자르는 장면이 꼭 필요했나 싶었다. 상영 전 감독의 말에서 한국영화에서 많이 배웠다고 했는데... 호전적인 이스라엘의 모습에 씁쓸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카달>과 <나는 아직 살아있다: 페루의 음악혼>에 엄지손가락을 든다.


영화제는 끝났다. 영화제의 품격은 레드카펫의 전시적인 흥행이 아니라 좋은 영화작품을 얼마나 많이 소개하느냐일 것이다. 그것도 영화제 조직위원회의 일방적인이고 타성에 젖은 운영체계가 아니라 관객들 위주로 프로그램을 짜고 운영해야 할 것이다. 아프리카의 영화가 없어서 섭섭했다. 대대적인 발상의 전환과 처절한 반성이 없으면 내년에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그들만의 영화제로 전락할 것이다. 사람 냄새나는 영화제를 보고 싶다. 돈 냄새가 아니라! 그래야 진정한 시민들의 축제요, 잔치가 될 것이다./플라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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