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의 사유'라는 것을 생각해본다.  그것은 얼마만큼의 부피를 가져야 보편적이 될 것이며, 얼마만큼의 부피와 깊이를 지녀야 '지식인'으로서의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을 것인가.  조금 더 생각해보면 '인민의 사유'라는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위고의 말처럼, 인민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배고픔과 빵이라면, 그것은 사유의 영역이 아닌 본능의 영역이 아닌가.  사유를 통한 인간의 구분기준은 사유의 유무인가 아니면 사유의 부피와 깊이의 차이인가. 

사유와 이론이 뒤섞이고 교배하여 만들어내는 수많은 생각과 이를 표현하는 수많은 말과 글들은 어쩌면 '사유할 줄 아는 인간'만이 가능한 능력이자, 사유하는 인간임을 증명하는 하나의 자연적 현상인지 모른다.  교배와 뒤섞임으로 태어나고 변화하여 창궐하는 수많은 생각속에서 건져진 새롭게 가치를 부여받은 사유는 다시 다른 가치있는 사유들과 교배하고 뒤섞임으로 가치있는 사유들을 만들어내고 이러한 사유의 진화는 인간의 육적 진화와 더불어 인간역사의 한 축을 이루어 왔을 것이다.

여기 가치를 부여받은 다양한 사유의 꺼리들이 누군가에 의해 던져졌다.  이것들을 살펴보니 기실은 새롭지 않다.  이제껏 수많은 사상가들이나 철학자들이 자신들의 언어와 사고로 이룩해놓은 생각꺼리들의 중간적 결과물들이거나, 일상에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잠깐씩은 스치듯 생각해보거나 느껴보았을 것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보았거나, 이런저런 대상들을 가지고 장난치듯 이리저리 굴려보고 돌려보다 새로워보이는 부분을 들이밀듯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런 것들을 우리에게 한번 흘레붙여보고 뒤섞어보며 새로운 사유거리를 만들어보라 주문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말이다.  그것이 오류가 되었든 오답이 되었든 간에, 그 안에서 새롭게 가치를 부여할만한 새로운 것이 건져질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던져준 이는 가지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던져준 그'는 너무도 고고하고 도도하다.  너무 높은 곳에서 독야청청하듯, 때론 너무 때묻지않은 정결한 모습으로 꺼리들을 던져준다.  너무 높은 곳에서 너무 고결한 것들을 던져주니 그것을 받아든 아래의 사람들은 이를 어찌할 줄을 모른다.  사유의 교배와 뒤섞임은 커녕, 던져준 것들 하나하나조차 이해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둘 중 하나이다.  받아든 사람들이 너무 무지하거나 던져진 것들이 너무 어렵거나..

난 그 두가지 이유 중 무엇이 진짜 원인인지 모르겠다.  던져진 것들이 인간에 의해 사유되며 형성된 하나의 결과물이라면 인간으로서 이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읽어본 나로서도 너무 어렵고 난해하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었다.  동시에 생각하려 하지 않고, 어쩌면 생각의 기능이 퇴화되었는지도 모를 사람들 가득한 이 사회에서 과연 이것들이 이해될 일말의 소지라도 찾아볼 수는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부정할 수 없는 솔직한 느낌이다.  그러니까, 던져진 것들의 실체들을 이 책의 각 악장들의 내용들이라 생각한다면, 던져준 이와 던져진 꺼리들, 그리고 인민의 간극은 무얼 어찌할 수도 없을 매우 크고 멀기만 한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 책의 서곡에서 말한 '사유해야 한다'가 아닌 '왜 사유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도 전에, 우리는 '사유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만 하는 것이다.

'사유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앞에서 나는 어떤 꺼리들이 던져져야 우리는 과연 사유를 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본다.  어렵고 난해한 이 책이 제시하는 꺼리보다도 좀 더 쉬운 것들이 던져지면, 지금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사유의 교배와 뒤섞음의 작업을 수행할 수 있을까?  지금의 한국사회가 보여주는 수많은 현상들을 바라보면 그런 꺼리들의 수준은 과연 어디까지 낮추어져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사회에서 이 책의 내용은 한없이 어려워, 저자의 바램과 시도는 한마디로 실패했다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풀어내는 사유의 깊이와 부피는 정말 한없다.  그것은 전공적 지식과 독서가 만들어낸 특수한 여건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사유의 방식, 방식의 다양성, 사유를 만들어내는 다양한 분야에의 관심과 지식은 정말 방대해서 사치스러움과는 다른 고급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고고한 자유를 보여준다.  자유는 사고에서도 나타나지만, 글의 표현과 문장과 단락의 형식에서도 그대로 보여진다.  마치 자기절제와 고고함을 유지하며 자신의 모습이 과연 어디까지 자유로울 수 있는지 시험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나에게도 어렵고 난해한 내용이었지만, 그런 고고한 자유에 대한 나름의 부러움이 책의 마지막장을 덮을때까지 읽기를 그만두지 못하게 한 듯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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