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겁이 많았다. 어두운 밤에 불을 켜지 않은 채로는 마루를 지나 냉장고까지 가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꾸지람을 두려워해서 거짓말도 곧잘 하고, 아픈 것, 괴로운 것도 매우 무서워하는, 엄살이 많은 아이였다.


러다 보니, 아버지는 늘 비겁한 사람이 되지 말아라, 당당해져라, 자신감을 가져라, 하는 말씀을 많이 하셨고, 지레 겁을 먹고
부딪히는 것을 피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거짓말을 하는 것에 대해 엄하게 꾸지람을 하시곤
했다.

하지만 난 계속 겁이 많고, 고통에 민감한 아이였다.



러던 10살의 가을, 10월 3일이던가, 아니 9일이던가, 날짜는 기억이 명확히 나지 않지만, 나는 광화문 교보문고 앞의
횡단보도에서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횡단보도 신호를 무시한 채 달려가던 택시와 부딪혀 나가떨어지면서 오른 다리의 무릎
아래로 개방성 분쇄골절을 입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7개월간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뼈 이식 수술을 받고 신경이
반쯤 마비되는 고비를 넘기기도 하는 등, 평균적인 10살 아이는 경험할 수 없는, 아주 큰 신체적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원에서 퇴원한 뒤, 나에게 있었던 이 경험의 의미가 뭘까 생각해 보았다. 그냥 "아팠었다"는 한 마디 말로 정리해 버리기엔
7개월의 시간도, 엄청난 크기의 신체적 고통도, 가족들이 겪어야만 했던 불편함도 너무 아까워서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뭔가
나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의 이면에서 다른 가치를 찾아보려는 이런 생각의 방향은 나이가 들어서도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주로 생각하는 방식이 되어 갔다.

그리고 교통사고를 당했던 경험을 통해서 통증이란 그저 신경의 작용일 뿐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삶의 다른 어떤 고통도 사실은 실체보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두려움이나 피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더욱 크게 느껴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너럴닥터라는,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어 가고 있는 작은 병원을 하려고 마음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해 오던
환자와 의사의 인간적인 관계 형성과 소통을 위한 좋은 방법이라는 게 뻔히 보이는 데에도 불구하고 힘들 것 같다거나 실패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면, 나는 대체 다른 무엇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라는 질문을 나는 스스로에게
던졌던 것이다.

이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는 심정으로, 나는 오늘도 하루하루 커피를 만들고, 진료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꿈을 꾸고 있다. 그래서 오늘 하루도 이렇게 행복하고 또렷한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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