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이 종양내과 의사들에게 듣고 싶은 말 Best 4

: 블로그에 올라온 환자의 댓글 분석


암 치료 중인 환자들은 담당 의사에게 어떤 말을 듣고 싶어할까요?

2011년 3월부터 2013년 11월 현재까지 ‘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http://bravomybreast.com) 블로그에 올라온 환자들의 댓글을 분석함으로써, 의사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좋았다, 힘이 났다는 반응을 보인 표현을 모아봅니다. 이러한 분석은 객관적 빈도나 강도와 무관하며, 통계적인 의미는 부여할 수 없고, 순전히 저의 주관적인 판단으로 선정된 것임을 밝힙니다.

힘내세요


저희도 아버님이 참 걱정입니다.

요관암 3기를 진단받고 수술 및 항암치료를 마친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편도암 4기를 진단받은 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면 담당 의사는 곁눈질로 아버지와 저를 한번 쓱 훑어 보고 무표정한 표정으로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제 다 나으셨네요" 이런 얘기를 해주지는 못할지언정 말입니다. 겉보기에는 이렇게 멀쩡하신데, 왜 치료를 할 수 없는지, 혼자 분노도 하고 마음도 많이 상했습니다. 외과 의사, 방사선종양학과 의사, 종양내과 의사를 번갈아가며 만나는데, 그 누구도 속시원한 말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엊그제 진료 중에 아버지의 담당 종양내과 의사가 “저희도 아버님이 참 걱정입니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습니다. 늘 찬바람이 씽씽 부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가 이렇게 말해주니 고마웠습니다. 그도 자식된 마음으로 우리 아버지를 돌봐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블로그에 들어와 선생님의 일기 같은 글을 보며, 종양내과 의사가 환자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심정으로 진료를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종양내과 의사들의 어려움도 공감할 수 있었고, 진료차례가 되었는데도 왜 환자를 부르지 않고 있는지, 굳게 닫긴 진료실 문이 왜 한참이나 지나서 열렸는지, 짧은 시간 내에 가능하면 많은 이야기를 전해야 하는 그들의 감정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감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진료실 문을 닫아놓고 환자의 검사 결과를 확인하며 다행의 한숨을 쉬기도 하고, 앞서 나간 환자의 차트를 정리하며 전전긍긍하고 있는 종양내과 의사의 인간적인 모습을 알게 되니, 썰렁한 우리 아버지 주치의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다음번 진료때는 쥬스라도 하나 사서 들고 가야겠습니다.


 
섣불리 위로의 말을 전할 수도 없고, 치료 결과가 좋을 수도 있지만 좋지 않을 확률이 더 많다는 것을 아는 의사의 입장에서 환자가 지금 주어진 삶을 잘 유지하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주기란 쉽지 않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종양내과 의사의 심정을 더할것도 덜할것도 없이 잘 나타내주는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비록 제 환자도 아니고, 우리 병원 환자는 아니었지만, 보호자인 아들은 제가 쓴 블로그의 글을 통해 암환자를 진료하는 의사들이 어떤 심정으로 환자를 보는지 알게 되었고, 자기 아버지 주치의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댓글을 남기셨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매우 의미있는댓글이라 첫번째로 꼽아봅니다.  


 
유방암 치료 잘 하고 다시 연애하고 결혼하고
아기도 낳고 잘 살아 봅시다.

저도 쇄골임파선에 가슴뼈쪽 임파선까지 전이가 된 3기말로 진단을 받았습니다. 저는 호르몬 양성 허투는 음성이에요. 저는 아직 미혼인데, 박경희 선생님 같은 분이 저랑 비슷한 병기로 유방암을 진단받고 완치가 되어 의사로 일하고 있다는 거,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이번에 아들을 낳아 잘 산다는 얘기를 들으니, 저도 지금 치료 잘 받으면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생기네요. 그런 분이 계시다는게 저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고 희망을 주는지 모르실거에요.


환자들에게는 좋은 롤 모델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들 비슷한 조건에서 치료받으며 암담해 하는데,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잘 살아가는 건강한 롤 모델이 있다면 의사의 한두마디보다 거기서 더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우리 병원 임상강사로 일하고 있는 경희가 레지던트 때부터 지금까지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임신을 했을 때, 그리고 예쁜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었을 때, 저는 블로그를 통해 짬짬히 경희의 소식을 전했고 수많은 젊은 유방암 환자들, 우리 병원 환자가 아닌 이들도 다들 내일처럼 기뻐하고 좋아했습니다. 또 어려운 조건이었지만 환자가 잘 견디고 치료를 받아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이야기를 소개하면 환자들의 댓글도 많고 다들 남의 일 같지 않게 좋아합니다. 지금 자신의 상태가 어떠하든 환자들은 희망을 갖고 싶어하는데 사실 의사들이 그런 면에서 좀 인색하죠. 저도 그렇구요.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좋은 모델을 소개하는 것도 환자의 치료의지를 북돋을 수 있는 중요한 팁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항암제 독성을 잘 견디고 계시군요. 대단하십니다.

사실 좀 힘들긴 했지만, 선생님 앞에 가면 왠지 씩씩하고 선생님이 시키는대로 잘 치료받는 환자로 행세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깁니다. 그래서 웬만큼 불편한거, 힘든거는 참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그래서 병원에 갈 때는 옷도 좋은 걸로 골라입고, 정성껏 화장도 하고 그래요. 그런데 오늘 선생님께서 제가 치료 독성을 잘 견디고 있다고, 오늘 온 환자 중에 제일 씩씩하다고 말씀해 주시니, 정말 제가 하나도 안 아픈 것 같이 느껴졌어요.


난 과연 언제까지 치료를 받아야 하는걸까, 그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는게 늘 저를 숨막히게 합니다. 과연 좋아질 수는 있는걸까… 그렇지만 그렇게도 하기 싫은 항암치료를 하러 병원에 가는 날 제가 가장 생기가 있는거 같아요. 아마 선생님이 저를 자꾸 칭찬해주시니까 그런게 아닐까 싶습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저도 아마 춤추는 고래가 되고 싶은가 봅니다.


4기 암환자들의 치료는 앞날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고, 사실 정확한 계획을 세우기도 어렵습니다. 외래 시간에는 그런 근본적인 이슈로 환자와 차분히 얘기하기가 어렵습니다. 한 두차례의 설명과 면담으로 환자가 자신의 상황을 다 받아들이게 되는 것도 아니구요. 좋아지기도 하고 나빠지기도 하는 치료 과정, 또 치료가 거듭될수록 환자는 몸과 마음이 힘들고 여러모로 위축되기 쉽습니다. 상을 받을 일도, 칭찬을 받을 일도 없는 일상, 떨리는 검사를 받고 결과를 보러 올 때, 항암제를 바꾸고 처음으로 독성을 평가하거나 효과를 판정할 때, 과하지 않은 범위에서 환자를 격려하고 칭찬하는 말을 해주면 구겨진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의사는 때론, 가장 가까이 있는 가족보다 더 환자의 어려움을 더 잘 이해하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환자의 내면에 숨겨진 강점과 장점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코멘트 해주면 큰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힘내세요

치료를 시작하고 난 후 약제 부작용이 하나둘씩 내 몸에 나타날 때, 아프고 놀라고 힘들었어요. 제가 겪는 부작용 하나하나에 대해 댓글을 달아주시고 설명해 주셔서 감사해요. 이제 왜 그런지 아니까 두려움없이 견딜 수 있게 되는거 같아요. 외래에서 제거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는 바람에 다음 환자 외래가 지연된거 같아 죄송해요. 항암치료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버스에서 선생님이 제 질문에 대해 답글을 남기신 것을 읽었어요. 제 진료가 끝나서도 저를 위해 애써주셔서 감사드리고, 댓글 마지막에 항상 ‘힘내세요’라는 그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아마 그 말을 듣고 싶어서 자꾸 질문을 올리게 되나봐요. 선생님이 제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챙겨주시는 것 같이 느껴져요. 감사해요.


 
젊은 여성일수록 항암제에 의한 독성과 부가적으로 난소기능이 억제되면서 나타나는 폐경기 증상이 복합되어, 신경도 예민해지고 항암제 독성도 더 민감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젊은 환자들은 자기 병과 치료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기를 원하고, 병의 기전에 대해서도 이해하고 싶어하는 것 같습니다. 환자들이 자꾸 ‘왜’에 대해 질문하면, 사실 저도 잘 모르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 부분은 아직 잘 밝혀져 있지 않다, 확실한 정답이나 기전은 아직 잘 모른다, 그렇게 솔직하게 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환자는 정말 끈질기게도 너무나 많은 것들을 질문하였습니다. 전이성 유방암의 약제나 왠만한 임상연구 결과는 다 알고 있었고, 자기가 하는 검사의 결과도 꼬박꼬박 챙기는 환자였습니다. 처음엔 사실 저도 좀 피곤했지만, 그렇게 몸살을 몇번 겪고 나니, 오히려 서로간에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고, 환자에게 설명하기도 더 쉬워졌습니다. 치료기간이 길어지면서 환자의 스타일에도 맞춰야 하는 부분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것도 presicion medicine의 일환이 아닐까요? 그렇지만 환자가 아무리 똑똑해도, 결국은 의사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기 마련입니다. 그녀는 나에게 의학적 지식에 대해 설명을 듣기를 원했다기 보다는, 힘내라, 내가 널 응원하고 있다, 그런 격려의 메시지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제 블로그는 암환자를 진료하며 살아가는 제 일기이자 진료 기록입니다.

시간 많이 듭니다.  그만큼 논문 못 씁니다.
그래도 전 매일 블로그에 글을 올립니다.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건, 매일 만나는 나의 환자들입니다. 그들로부터 가장 큰 가르침을 얻습니다. 그래서 매일 밤 진료를 마치고 정리하는 블로그의 글쓰기가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래서 블로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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