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계의 장애인연금 도입안은 이랬다

장애인계의 장애인연금 도입안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  2002년 장애인연금법제정공동대책위원회의 안(이하 공대위안)과 2008년 장애인연금법제정공동투쟁단의 안(이하 공투단안)이 그것이다.  

 공대위안은 사회수당 방식의 연금과 공공부조 방식의 연금이 혼합된 것이었다.  기본급여는 모든 장애인에게 주고, 생활급여는 18세 이상 장애인 가운데 저소득 가구에게만 준다는 것이다.  2002년 당시를 기준으로 기본급여는 15만 원, 생활급여는 35만 원으로 설계되었고, 장애수당은 폐지하자는 입장이었다.  사회수당 방식의 연금부분을 도입하고자 한 것 자체는 진일보한 것이었지만, 장애수당 폐지의 입장을 가짐으로써 장애로 인한 추가비용 보전의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던 것은 단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공투단안은 기존 장애수당은 추가 비용보전의 역할로 존치하고, 소득 보전을 위한 장애인연금의 실시를 제안한 것이다.  연금 수급대상은 18세 이상의 등록된 장애인이고, 소득인정액이 하위 70%이하의 조건을 충족해야 수급권자가 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르면, 그 급여 대상자의 수는 약 136만 명인데, 이는 등록 장애인 전체의 약 60%에 해당한다.  연금액은 최저임금 환산액의 4분의 1 수준인 월 25만원을 책정했는데, 사실 그 근거에 대한 엄밀한 논의는 부족했다.  그리고 둘 다 연금을 받는 장애인 부부의 경우에는 각각 연금을 20%씩 감액하는 것을 받아들였다.  또한 경증장애인은 중증장애인이 받는 연금의 50%인 12만 5천 원을 받는 것으로 설계했는데, 이 기준에 대한 타당한 근거 또한 부족했다.  

결론적으로, 공투단안은 등록 장애인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한계는 있지만, 협소한 장애등급 기준이 아니라 소득인정액만을 기준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정부안에 비해 분명 한 발 나아간 것이다.  하지만 소득인정액을 기준으로 하는 것은 자산심사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선별적 복지를 일정하게 수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쨌든 자산 심사를 한다는 것은 사회수당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한편, 18세 이상이라는 연령 제한과 노동소득의 보전이라는 의미에서 최저임금을 연금액의 기준으로 설정한 것은 그 엄밀성의 한계뿐만 아니라 기존의 노동 패러다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측면을 보여 준다.  



장애인 등록제도, 다시 보자

현행 장애인복지법은 장애를 15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각 유형을 다시 장애의 정도에 따라 1등급부터 6등급까지 6개의 등급으로 세분하고 있다.  전체로서 하나의 독립적 개체가 되어야 할 인격체를 이런 식으로 잘게 쪼개서 등급까지 매기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한국에서 장애인은 사회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 등록되는 순간 탄생하는 존재나 다름없는 셈이다.  이와 같은 방식의 장애인 등록제도는 한국과 일본에만 존재한다.  영국의 경우, 장애가 일정수준 이상이며 영속적으로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면 지방의회의 사회서비스과를 통해 장애인 등록이 가능하다.  그리고 이러한 장애인 등록은 주로 공공요금 할인등의 혜택과 관련이 있을 뿐, 장애관련 수당 및 여러 서비스와도 무관하고 의무사항도 아니다.  

 장애인 등록 제도의 역사 자체도 문제지만 현실적 폐해도 무수히 많다.  우선 장애인 인구 추정의 문제가 있다.  한국의 장애인 출현율은 대략 5% 미만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평균인 14%와 격차가 너무 크다.  장애를 포괄적으로 정의하는 다른 국가들과 달리 한국은 엄격한 기준에 따라 국가에 등록된 장애인만 통계에 넣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장애인 등록제도는 획일적이고 제한적인 장애인복지 정책을 양산한다.  현재 한국의 장애인복지 정책은 시설 정책과 공공요금 등의 할인 정책이 주종인데, 이런저런 시설의 유지와 운영에 장애인복지 예산의 거의 절반이 빠져나간다.  시설을 이용하거나 할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필요에 대한 진단 없이 장애인등록증만 있으면 되는 것이다.  정부는 장애인들의 필요를 파악하기보다는 일단 관리하기가 편하니까 이 제도를 계속 유지하려고 하고, 장애인 당사자들 상당수 또한 이미 이 제도에 익숙해져 있다.  

 이 장애인 등록 제도가 사회적 낙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중요하게 지적해야 할 부분이다.  한국에서는 한 인간이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의학적으로 입증하고 자신을 국가에 등록하는 순간, 특정한 방식으로 유형화되고 숫자로 된 고유한 등급을 받는다.  그리고 이때부터 장애인은 국가나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대상화된다.  장애인등록증이 사회적 낙인의 증표가 된다는 것이다.  

 장애인 등록제도 자체를 폐지하고 장애인의 필요에 따른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장애인복지 제도의 근본적인 전환을 시도하는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근본적인 전환의 과정에서 장애인 등록제도에 기초한 장애인연금 제도또한 기본소득 제도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대상과 범위, 지급 수준을 높인다 하더라도 현재의 제도 아래에서는 등록된 장애인에게만 연금을 지급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기본소득 보장을 더욱 적극적으로 주장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소득보장의 측면에서 사각지대 없이 모든 장애인을 실질적으로 포괄할 수 있는 방법은 기본소득제도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과 함께 장애인에게 별도로 필요한 맞춤형 복지서비스는 쥐꼬리만큼의 수당을 쥐어주는 방식이 아니라 국가가 포괄적으로 책임지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장애인연금을 넘어 기본소득으로

 장애학 이론가 폴 애벌리의 논의는 장애인과 노동의 문제를 사고하는 가운데 새로운 노동 패러다임과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이었다.  그는 노동에 기초한 시민권의 보장이 아니라 개별적 노동과 연결하지 않고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조건없이 기본 생계비를 보장하는 기본소득 체제가 장애인들의 완전한 사회통합에 훨씬 더 적합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기본소득 제도는 복지 패러다임의 근본적 전환은 물론 이처럼 노동 패러다임의 전환도 전제로 한다.  장애인은 기존의 노동 패러다임과 복지 패러다임 속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는 사회집단이다.  그리고 현재의 패러다임 속에서는 자신의 열악한 사회적 처지를 부분적으로 개선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근본적으로 개선할 길은 없어 보인다.  이 때문에 장애인이 기본소득 운동의 적극적인 주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물론 이것은 아직 잠재적 가능성에 불과하다.  

 장애인 복지의 궁극적 목표란, 자의적일 뿐만 아니라 인권을 침해하는 장애등급 판정과 이에 따른 선별적이고 시혜적인 복지혜택 수여가 아닌 장애인이 자신의 필요에 기초하여 생애 주기에 따른 보편적 복지서비스를 누구나 권리로서 향유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연금이나 각종 수당을 포함한 기존의 현금지급 방식의 복지서비스는 기본소득으로 통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기존에 불필요하게 혹은 부적절하게 시장화된 복지서비스는 필요에 따른 충족의 원칙에 따라 재편하며 탈시장화, 탈상품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대안의 실현을 염두에 두면서 우선 현행 장애수당 제도를 추가 비용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는 것도 하나의 과도기 방안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기본소득으로 국민 모두에게 충분한 생활을 보장하고 장애인에게는 장애에 따른 추가 비용을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보장하면서, 나아가 장애로 인해 필요한 복지서비스를 국가가 포괄적으로 책임지는 것을 전제로 현재의 장애인 등록 제도와 장애수당제도를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보다 궁극적인 대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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