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사랑의 교회가 새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언론을 장식한 것은 신도들이 한꺼번에 몰려
우리 사회의 고용, 특히 청년 고용 문제는 정말 심각한 상황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제 좋은 일자리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게다가 이미 좋은 일자리를 차지한 기성세대들은 그 자리를 나누려고 하지 않는다. 조금 적게 일하고 조금 적게 벌고, 그 대신 저녁이 있게 살고 조금 더 여럿이서 나눠갖는 것은 노동자도 사용자도 반대한다. 게다가 뭔가 새로운 산업을 일으켜 고용을 창출하기엔 이 정부는 너무 구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돌파구를 만들 수 있을까?

바로 그 때 숭실대 김회권 교수(목사)님의
옛 인터뷰 생각이 났다. "교수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연봉 1000만 원씩 깎고 교수 더 많이 뽑자고 해야 합니다. 나는 지지합니다. 조금 덜 쓰면 됩니다. 한 교수 들어올 수 있습니다." 물론 동료 교수님들에게 뭇매 맞을 소리인 것은 나도 알지만 적어도 기독교인들이라면 한 번 해볼 수 있는 시도가 아닐까? 기독교인들이야말로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고 배고품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빌 4:11-13)" 사람들이 아닌가? 물론 기독교인의 이미지 = ㅇㅁㅂ 인 사람들에게는 콧방귀 뀔 만한 소리겠지만 말이다.  

사실 이미 상당수 기독교인들은 수입의 10% 이상을 헌금으로 드리고 나머지 90% 이하의 수입으로 살아간다. 거기서 조금만 더 믿음을 발휘해서 10%만 더 떼어서 새로운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수입의 80%만 가지고 살기는 어렵다고? 무리라고? 뭐 최저생계비 이하 또는 그보다 조금 높은 정도 수입을 받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다 그렇게 하자는 것은 아니다. 월급이나 가계 소득이 어느 정도 이상을 넘어서는 그리스도인들만이라도 시작해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규직 교수가 500명인 대학이 있다고 치면 기독교인 교수가 100명 정도(대략 20%) 될 것이다. 그들이 10% 임금을 삭감하면 그 돈으로 10명 정도의 정규직 신임교수를 뽑을 수 있게 된다. 이런 식으로 대기업, 병원, 대학, 학교, 공기업, 관공서 등에서부터 조금씩 고용을 늘려가도록 그리스도인들이 기여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아무 댓가 없이, 뭐 세금 환급 받으려고 임금 삭감이 아니라 기부금 처리 해달라는 이런 조건 달지 말고 그냥 자발적으로 임금을 깎는 것이다.

우리가 교회에서 듣는 예화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월 소득이 200만원인 사람이 20만원 십일조를 내고 180만원으로 생활을 잘 했다면 월소득이 2000만원이 되면 1820만원을 하나님께 드리거나 이웃을 위해 쓰고 여전히 180만원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게 비기독교인이 듣기에는 교회가 무슨 헌금 많이 뜯어내려고 하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검소하고 신실하며 금욕적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의 바른 생활 규범이다. 비록 점점 한국 교회가 돈을 우상으로 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한국 교회의 저변에는 이런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꽤 많다고 생각한다.  

이 황당하고 엉뚱한 방법이 새로운 고용을 만드는 대안이 될 수 있을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노동자와 사용자 어느쪽이든 이미 자리잡은 기성세대의 견고한 벽에 조금이나마 균열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정말 자기가 가진 것을 이 사회를 위해 내 놓을 수 있다면, 이 사회가 한국 교회에 조금이나마 신뢰와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기본소득보다는 쉽지 않을까?

대학시절 기독교인 욕을 하던 운동권 친구가 있었다.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투쟁을 하는데 동참하지 않고 혼자 나와 일하고 있는 노동자가 있었는데 그게 기독교인이더라는 것이다. 그 기독교인이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이유는 비록 매우 적은 월급이지만 그것으로 "범사에 감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도 그 때는 그 기독교인을 비판했다. 자기 개인의 삶만 바라보고 자기 이웃인 노동자 공동체를 볼 줄 모르는 안목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정말 그 때 그랬던 기독교인들이 아직도 있다면 그 사람들이 누구보다 먼저 자기 것을 내놓아 이 사회의 문제를 치유하자고 나서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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