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협회가 뭐하는 곳이냐고 묻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때로는 이익집단으로 집단의 이익을 위해 활동하는 것 같기도 하다가, 의료시스템을 고민하는 시민단체처럼 보이기도 하다가, 자기 내부의 목소리도 조율 못하는 오합집단 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코메디닷컴의 이성주 대표님의 칼럼을 보면 의사협회는 색을 분명이 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는데 동감합니다.

한편 의사협회 내부의 목소리가 다양한 것 중 상당수는 의사 내부의 다양성 때문이기도 하죠. 의사마다 생각이 다른 이유는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인데, 예를 들면 개업한 의사들, 개업한 의사 중에 1차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 또 미용이나 성형, 비만과 같은 특정 진료만 보는 의사들, 병원에서 월급 받는 봉직의사들, 병원을 경영하는 경영자이자 의사인 사람들마다 이해타산이 다르고 의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여기서 나오는 목소리가 다양해서 헷갈릴 수는 있지만, 들어보면 귀담아 들어야할 부분이 분명 있습니다.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들도 그 중 하나인데, 물론 의사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이끌어가기 위해서 내는 목소리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분명 있습니다. 끊임 없이 건강 보험을 두고 개선을 요구하다 보니 의료 공급자로써의 문제점뿐 아니라 이용자로써의 문제점들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의사들의 목소리만 들리는 현시점을 달리 이야기하면 일반 국민들은 관심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시민 단체들이 있지만, 의료전문 시민단체는 거의 없습니다. 전문가를 고용하거나 연구 자료를 내놓을 자금도 없죠. 대부분의 시민단체가 열악한 환경이지만, 의료관련 전문 단체는 아애 존재감이 없습니다. 일부 환우회나, 의료사고가족 모임들이 있지만 이들의 이익과 공공의 이익과 항상 일치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의료의 공공성에 대해 국민의 고민이 별로 없는 상황에서 의료 현실은 지나치게 편향되거나 왜곡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의사 환자의 관계도 악화되고 있고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사들 입에서 공공의 이익에 대해 이야기가 나와도 제대로 들어주지도 않습니다.

그 중 하나가 환자의 선택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굉장히 광범위한 이야기지만 몇 가지로 줄여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최근 세브란스 병원의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의 연명 연장을 중단 허용을 법원에 신청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환자의 자기 결정권의 측면에서 굉장히 관심을 끈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When Does 'Do Not Resuscitate' Make Sense? / image source : Health & Science

의사들에게 있어 이 자기 결정권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법적으로 의사와 환자 모두 보호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환자실에 들어가기 전에 연명을 결정하는 해외 사례나 국내 일부 병원의 사례가 성공적이라고 이야기하더라도, 우리의 정서상 온 가족이 인정하지 않으면 합의라고 보기 힘든데다가, 법적인 효력은 없기 때문에 연명 중단에 있어 모두 소극적이죠.

이 연명 치료 중단에 있어서는 의사들이 오히려 길을 터달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그 관심의 발단은 보라매 병원 사건일 겁니다. 당시 환자의 가족들이 치료를 거부하고 응급실에서 퇴원했는데 살인 방조 등의 명목으로 진료한 의사들이 처벌을 받았던 사건입니다.

비단 법적인 위험을 떠나서 대학병원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단순한 연명치료만 하는 환자를 계속 방치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효율적인가란 고민도 하게 된 것이죠. 이에 대해 병상 회전율을 높여 병원 수익을 증가시키려는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손쉽게 돈 벌기는 연명치료 중인 환자를 방치하는 것일 겁니다.

이런 연명치료에 대한 환자의 선택권을 시민사회에서 요구해야 하고 의료계는 생명 존중을 위해 보수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자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쩌면 맞을 것 같습니다만,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을 빼고는 관심 있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상황 속에 윤리적인 판단과 고민을 계속 해야 할 것입니다. 환자가 의사결정을 하지 못할 때 그 법적 대변인의 손에 환자의 목숨을 맡기는 것이 옳은 것이냐, 별도의 심사 기구를 만들어야할 것인가 등등의 고민이죠.


환자의 선택권은 여기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방송을 보지는 않았지만, 며칠 전 KBS에서 유명한 침술가를 방송에 내보냈다고 하는데요, 그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제도 하에서는 환자의 안전성을 위해 법적으로 의사 면허 제도를 실시하고 있는데요, 민간치료등에 있어 의료행위 역시 환자의 선택권에 포함되지 않는 가란 주장도 가능합니다.

현재로써는 전문가의 치료를 받지 않았을 때 생길 수 있는 위험에 대해 자유롭지 못하다는 판단이 설득력이 있고 이를 바탕으로 만든 법이 유효하기 때문에 섣불리 앞서가는 고민이기도 합니다만, 지금의 법률도 해당 시술자에 대한 처벌은 있을 수 있어도 여러분이 마음먹고 치료 받겠다고 한다면 따라다니면서 말릴 사람은 없습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이용하고 있으시죠.

민간의료부터 대학 병원 진료까지 누구나 원하는 곳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아주 높은 선택권이 있습니다만,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방종 불릴 만큼 의료시스템을 교란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자유라는 것인데, 공공재라고 한다면 가벼운 질병을 가지고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보게 되면 급하거나 중한 환자의 진료의 차질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인식이나, 입원한 김에 며칠 쉬었다가 나가겠다거나, 건강검진등을 받겠다고 버티는 것이 응급수술이 필요한 환자의 입원을 막게 될 수 있다는 것 까지 이용자가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현재로써는 이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개선하도록 해야하는 역할이 의사에게만 지워지기 때문에 실효성도 없습니다.

공공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의 충돌에 대해 자칫 이익집단으로 불리는 의사들의 목소리를 거들어 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 속에 인식 있는 사람들조차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다보니, 객관적인 판단을 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의사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는 소리로 치부되기 쉽습니다.

우리의 의료 시스템은 이렇게 선택권이 높지만 사실 여러분의 선택이 항상 옳지도 않고 항상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도 않습니다. 의료인들 입장에서 보면 환자의 선택을 높일 수밖에 없는 불확실성이 높아진 의료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를 통해 결과에 대해 함께 책임을 지는 것이죠. 여러분은 어떻게 의료를 선택하고 있습니까? 선택에 만족하시나요?


방송에 나온 민간의료나, 한의학적 치료나, 기타 여러 대체의학에 의한 치료나, 현대 의학적 치료나 선택은 자유입니다. 의사의 조언이나 주위의 평판, 미디어의 소개 등에 영향을 받겠지만, 정보는 여전히 제한적이고 신뢰도 역시 들쑥날쑥합니다. 해당 치료가 어떤 이유에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제대로 설명을 들었습니까? 한의학적 치료는 과학의 패러다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신가요? 무엇이 믿을 수 있는 정보일까요? 직접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전에는 옳바른 선택을 하기란 불가능한 것일까요?

환자가 되고 나서 문제점을 지적하기 보다는 우리 의료 시스템이 모두의 재산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이슈에 있어 의사의 반대편에 서야 내 이익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은 평면적 사고는 발전이 없습니다. 또 방관자처럼 ‘자 이제 싸워봐봐. 재미있겠는 걸?’이란 태도도 옳지 않습니다.

조금은 공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내가 환자가 되었을 때 후회 없는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어떻게 힘을 모아야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힘이 커지게 되면 지금 현대의학이나, 한의학이나, 민간의료 영역이나 상당히 큰 정보의 투명성을 요구받게 될 것이고 불만도 나올 수 있을 것이지만, 전문가로써 그런 현실에 대해 준비하는 자세도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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