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관련 질문들을 받다 보면 ‘회 먹으면 위험한가요?’, ‘해외 여행 갈 때 말라리아가 위험 하지 않나요?’ 등 위험성을 판단해 달라는 질문들을 많이 받게 된다. 이런 질문은 대답하기가 굉장히 난처하다. 위험성의 평가하는 과정은 개인차가 크기 때문이다. 일전에 담배를 피우며 소음이 태아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는 여성의 사진을 통해 잠시 이야기 한 적이 있지만(https://www.facebook.com/photo.php?fbid=10203017719631036&l=04599b1232) 위험이란 개인이 처한 상황, 환경 등에 따라 판단의 기준이 많이 달라진다. 예를들어 클리닉에 살고 있는 나 같은 경우에는 말라리아나 주혈흡충, 회충, 구충 등 약물로 충분히 치료가 가능하며 어렵지 않게 진단이 가능한 각종 감염성 질환에 대한 위험성을 낮게 평가할 수 있다. 정보와 시설, 치료에 대한 접근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생충 학자들 사이에서 자기 자신을 감염시켜 충체를 얻어내는 자가실험이 가능한 것도 단순히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이런 기반이 있기에 가능할 것이다. 그에 반해 의료접근성이 떨어지고 질병에 대한 이해가 낮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위험이 더 크게 느껴질 수 있다. 본인이 감염성 질환에 걸려봐 크게 고생한 적이 있다면 이 역시 위험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

이렇듯 수많은 요소가 개인이 위험성을 판단하는데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우리는 손쉽게 무엇이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다를 규정하곤 한다. 회가 위험한가? 물론 민물회는 간흡충을, 바다회는 고래회충에 감염될 가능성이 어느정도 존재한다. 고래회충은 사람 안에서 수일 이상 생존이 불가하므로 장기적인 피해를 입을 가능성은 낮지만, 그 감염되어 있는 기간 동안 극심한 복통을 일으킨다. 반면 간흡충은 단기적인 증상은 상대적으로 경미한 편이지만 장기 감염시 예후가 좋지 않은 담도암을 발전한 가능성이 있다. 고래회충은 내시경을 통해 직접 추출하는 방법으로 치료가 가능하고, 간흡충은 정기적인 대변검사를 통해 진단이 가능하며 효과적인 치료제가 있다.

이런 정보들은 존재하지만, 과연 위험하다를 단정할 수 있는 수준은 어디일까. 고래회충은 장기적인 피해가 없으므로 위험하지 않은 것이고, 간흡충은 담도암으로 발전 할 수 있으므로 위험한 것인가. 아니면 회라는 것은 기생충에 감염될 위험이 있으므로 무조건 위험하다고 할 것인가. 위험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 할 수는 있지만, 그에 대한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미디어와 출판물들은 단정적인 것을 좋아한다. 독자나 시청자들이 전문가 의견을 구하는 것은 이러한 판단을 일정 부분 그들에게 위임할 수 있으며, 간결한 해답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먹거리 엑스파일’ 같은 프로그램 등에서 그런 위험성을 단정짓는 방식으로 굉장한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전문가들이 위험에 대한 판단을 내려준다 하더라도 그를 취사선택 하는 것 역시 개인의 몫이다. 그런 면에서 ‘위험’이라는 말은 너무 손쉽게 쓰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론: 얼마든지 정보는 드릴 수 있지만 당신의 판단을 나에게 떠넘기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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