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의 마로니에 공원은 1970년대 초 서울대학교 본부와 문리과대학의 동숭동캠프스가 위치했던 장소이다. 관악산에 서울대학교 종합캠프스가 들어서면서 1976년 서울의대의 연건동캠프스를 제외하고 모든 단과대학이 차례로 관악산으로 이전하였다. 문리과대학이 옮겨가면서 대부분의 건물들은 헐리고 매각되었는데 그 당시 동숭동캠프스의 상징이었던 마로니에 나무만 남아서 마로니에 공원을 지키고 있다. 사진 건너편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서울대병원이 위치한 연건동캠프스이다. .

이 곳에서 입학식을 가졌던 1971년 3월은 초봄의 따스함을 알리는 절기였지만 남쪽에서 올라온 필자에게는 더욱 쌀쌀한 겨울 날씨였다. 낭만적인 대학생 꿈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음에도 계속되는 정정불안으로 학생데모와 경찰과의 충돌, 그리고 휴교령으로 2년 동안의 문리과대학 시절은 결코 여유롭고 즐거운 시절은 아니었다. 김지하 시인과 문익환 목사를 이 광장에서 자주 보았던 시절이기도 하였다.

 마로니에 나무들은 1928년 서울대(구 경성제국대학)가 자리를 잡을 때 일본에서 가져다 심었다고 하니 올해 기준으로 86살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마로니에와 칠엽수(七葉樹)를 엄밀히 구분하지 않지만 두 나무지만 생김새가 너무 비슷해 구별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우리 주변에서 만나는 것은 대부분 일본 칠엽수다. 칠엽수란 이름은 긴 잎자루 끝에 손바닥을 펼쳐 놓은 것처럼 생긴 일곱 개의 잎이 있기 때문에 붙여졌다.



서울대학교 구교사 유지기념비 -
1976년 12월 16일 마로니에 광장에 건립된 이기념비의 오른 쪽이 서울대학교 본부 건물이고, 왼쪽에는 넓은 운동장이다. 그리고 마로니에 광장 앞쪽에는 청계천으로 연결되는 개천이 흐르고 있었는데, 지금은 복개되어 4차선 포장도로 변하였다.  

1970년대 초 동숭동(문리과대학, 법과대학, 예술대학 미술부), 연건동(의과대학), 공릉동(공과대학), 경기도 수원(농과대학), 종암동(상과대학), 을지로(사범대학), 소공동(치과대학), 남산동(예술대학 음악부) 등지에 흩어져 있던 캠퍼스를 통합하기 위하여 관악캠퍼스 조성에 착수하였고, 1975년부터 대학본부와 단과대학들이 이전하였다. 2003년 수원 상록캠퍼스에 있던 농과대학과 수의과대학도 관악캠퍼스로 이전하였고, 의과대학, 간호대학, 치의학대학원이 있는 연건캠퍼스는 존속하여 지금에 이른다.



왼쪽으로 도서관이 위치해 있었고, 보이는 건물 자리에서 다양한 내용의 강의를 들었다. 국문학자 이숭녕 교수, 중국고전강독 권오돈 교수, 영문학, 수학, 라틴어, 독문학, 강영선와 박상대 교수의 동물학 강의가 기억에 남는다. 의예과는 자유선택 과목이 많았기에 국문학과 관련된 강의를 많이 수강하였다.



왼쪽의 건물 오른쪽 건너편에「문예진흥원」이 위치하고 있는데 옛날 서울대학교 본관 건물이다. 이 건물은 1930년 8월부터 건축하여 1931년 10월 완공한 경성제국대학 본관으로 현재는 사적지로 남아있다.







그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곳이 조선시대 윤선도가 태어난 생가터라고 해서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 1587-1671) 오우가 시비(五友歌 詩碑)를 세웠다. 이 시는 1642년(인조 20) 해남에 은거할 무렵에 지은 작품으로 《산중신곡(山中新曲)》에 들어 있는 시조로서 수(水)·석(石)·송(松)·죽(竹)·월(月)을 다섯 벗으로 삼아 각각 그 자연물들의 특질을 들면서 사물에 대한 짙은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우리말의 어휘와 어미, 문장 등을 잘 다듬는 시인의 언어적 감각에 의해 완벽하게 구현이 되고 있으며, 자연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사상과 정신이 잘 응축되어 있다. 특히, 자연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진 물아일체의 경지를 잘 그려내고 있다.




문리과대학 운동장이 있었던 장소는 모두 문화공간뿐만 아니라 음식적이 들어섰다. 7월 15일(화) 이곳 유니플렉스 대극장에서 한국혈액암협회가 주관한 "백혈백과 혈액암 환우돕기 <뮤지컬 그리스> 자선공연"을 관람하였다.  http://blog.naver.com/hyouncho/5003870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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