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건물의 16층 당직실 창문에서 바라보는 야경은, 63빌딩에서 보는 것 만큼 훌륭하지 않겠지만 나쁘지는 않은 편이다. 남향인데데다,  16층 당직실 공간에서 여자 샤워실을 쓰는 사람은 사실상 나 혼자다. 환기도 잘 되는 편이어서 비좁은 것을 제외하면 상당히 쾌적한 당직실이다. 어차피 열심히 돈을 벌어도 집을 살 때면 또 집값이 오를 예정(?)이기 때문에 평생 강남에서 사는 것과는 인연이 없을 나에게 있어서 이 당직실은 소중한 공간이다.

그러나 당직실도 단점이 있다.
취사가 불가능하여 스팸을 구워먹을 수 없고, 냉장고도 없어 과일이나 시원한 음료수, 맥주,를 마실수도 없으며 병원 앞 백화점 식품매장의 세일품목들을 쟁여놓고 먹을 수도 없다. 병원 구내식당도 별로거니와 밤 9시가 넘어가면 그 마저도 문을 닫아버려 편의점 말고는 주린 배를 채울 곳이 없다.

병원 당직실 떠돌이 생활만 어언 2년 6개월째.
그동안 계회했던 것을 실행으로 옮겼다. 스마트폰으로 티켓괴물 앱을 다운받고, 내 몸안에서 자고 있는 지름신의 기운을 깨웠다. 그리고 이틀뒤 친절하신 기사님이 냉장고를 하사하셨고, 오늘 인근 마트에 가서 음료수를 구입해서 채워넣었다.




참고로 저기 보이는 초록색 캔은 절대로 알코올이 아니지만 격무에 지친 우리 1년차는 벌써부터 저 초록색 캔을 슬쩍해갈 계획을 세우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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