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건강보험 흑자가 2조 4천억원 정도로 예상되고 있다. 한때 엄청난 적자로 인해 곤란을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건강보험 재정은 상당히 ‘건전한’ 상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만 그렇다. 시각에 따라서는 적자를 고민하던 때에 비해 더 상황이 나쁘다고도 할 수 있다.





첫째, 건강보험공단은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기 때문에 많은 흑자를 낸다는 것 자체가 비정상적이다. 필요한 것보다 더 걷었거나, 꼭 써야 할 돈을 쓰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둘째, 법적으로 정부가 건보 재정에 투입해야 하는 돈을 수년째 제대로 부담하지 않았다는 중요한 사실이 흑자가 났다는 사실에 가려져 덜 부각되고 있다. 정부가 2002년 이후 올해까지 ‘불법으로’ 지급하지 않은 액수만 해도 2조 6천억원에 달한다.





셋째, 우리 건강보험은 누구나 인정하듯이 저보험료-저수가-저급여의 3저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첫 단계가 적정 보험료 부과인 바, 건보 재정의 과도한 흑자로 인해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가 더 어려워지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건보 재정 흑자는 여러 이해 당사자들 사이에 격한 논란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정부가 올해 흑자분을 활용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방안을 발표한 이후에 이러한 논란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





정부 계획은 2조4천억원 중 1조원은 건강보험 적립금으로 남겨놓고, 8천억원은 차상위계층 의료급여 수급권자를 건강보험 가입자로 전환하는 데 활용하고,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는 겨우 5천 5백억원만 사용한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건보 흑자의 주된 원인으로 지속적인 저수가 정책을 지목하고 있다. 과거 여러 차례에 걸쳐 건보 재정 적자를 이유로 수가 인상을 억제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이번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자세다.





반면 시민사회단체들은 정부의 건보 보장성 확대 방안을 ‘기만’이라고 비판하며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또한 정부가 단계적 보장성 확대의 조건으로 보험료 인상을 거론한 것을 두고 국민에 대한 ‘협박’이라는 식으로 거칠게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논란은 대단히 소모적이고 비논리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국고 지원 미지급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보장성 확대하려면 보험료 더 내라’는 식으로 나오는 정부의 태도에 문제가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보험료는 더 낼 수 없으니 국가가 알아서 책임지고 보장성을 확대하라고 외치는 시민단체들의 접근 방식도 비논리적이다.





가장 어렵지만 사실상 유일한 해결책은 국고지원 확대와 보험료 인상을 함께 추진하는 것뿐이다. 무조건 국고지원을 확대하는 것은 조세 방식이 아니라 사회보험 방식으로 운영되는 건강보험의 본질상 적절하지 않다. 보험료 인상 없이 보장성 확대를 바라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와 시민단체들이 벌이는 이런 공방 속에서 의료계는 완전히 소외된 채 깊은 좌절감에 빠져 있다. 실제 의료 서비스를 공급하는 주체는 점점 더 곤경에 처해가고 있는데, 정부와 시민단체는 공히 ‘덜 내고 더 누리자’는 황당한 소리만 늘어놓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으로 가면 결과는 더 심각한 의료의 왜곡으로 나타날 뿐이다.




* 이글은 청년의사 사설 (2008. 11. 3)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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