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떼 같이 모인 사람들이 보신각에서 카운트를 외치며 신년맞이 종소리를 듣는반면, 어떤 전공의들은 그 시간에 중환자실에서 신년맞이 기계음(?)을 듣고 있다.
새벽 3시.
1년차가 내기다시피 나간 덕분에 다시 차트를 잡았고 넘쳐나는 환자덕분에 반 좀비가 된 한 전공의가 있다. 응급실 내원 당시에 이미 패혈성 쇽 상태였고 수술방으로 올리고 보니 직장이 터져 한웅큼씩 응가를 퍼냈던 할머니의 상태가 좋지 않아 그 시간까지 중환자실에 있었다. 수술 후 예상대로 패혈성 쇽에서 폐부종, 급성 신손상의 코스를 차례대로 밟아가고 있었다. 밤 11시 즈음 곧 있으면 happy new year를 외쳐야할 보호자에게 24시간 지속성 혈액투석(CRRT)의 필요성 및 앞으로 당신의 가족이 어떤 코스를 밟고 악화되어 사망할 것인가를 악담 수준으로 늘어놓았고, 보신각이 울릴 시간에 CRRT를 위한 라인을 잡고 있었다. 각종 승압제를 폴대에 주렁주렁 달아놓고 있는 환자인지라 CRRT를 적용한 이후 혈압이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며 중환자실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가 바이탈이 안정된 것을 확인하러 쪽잠을 자러 숙소로 올라갔다.
바로 옆 이식중환자실에서는 다장기이식을 했던 꼬맹이의 상태가 안좋아지는 바람에 내 동기 2년차가 모니터 앞을 지키며 다음날 정규 오더를 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그 꼬맹이 때문에 고생을 심하게 한 모양인지 간호사 스테이션에 엎드린 채로 골아 떨어져 있었다. 허리가 90도 가까이 꺾인 채로. 결혼도 안한 애가 저리 놔두면 허리가 나갈까봐(?) 걱정스러운 마음에 숙소로 가는 길에 깨웠다. 오더 창에는 정체 불명의 오더가 입력되어 있었다.
둘 다 수면부족으로 절대 낫지않던 감기몸살에, 저녁에 주사 한방씩 맞고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보고 있었고 보신각 종소리 대신 중환자실 기계소리를 들으며 어영부영 새해를 맞이 하였지만 어찌 되었던 Happy new year로구나. 이런 날 원래 맥주 한잔씩 해야 하는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