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명록에 닉네임 로렌, 예과 2학년 학생이라고 밝힌 비밀 댓글에 '선생님은 건강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라는 꽤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 인문의학 강의를 듣다가 건강이란 주제에 대해 수업을 받은 것 같은데, 한 두 마디로 정리하기란 쉽지 않은 질문 같다.





WHO의 건강(Health) 정의는 '단순한 질병이나 결손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그리고 사회적으로 안녕한 상태를 말한다'라고 배웠다. 이 정의는 1948년 이후 변경된 적이 없는데 1998년에는 개정 논의가 있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이전 정의가 변경되지는 않았다. 일부에서 영적(spiritual) 요소가 포함되었다고 잘못 알고 있는 분들도 있는데 궁금하신 분들은 WHO 홈페이지를 방문해 확인하시기를.











이런 딱딱한 답변을 기대하고 건강이 뭐냐고 물은 것 같지는 않고, 오늘날 건강이란 것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묻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 이에 대한 생각들도 가끔 하고 있었고, 마침 지난달에 WHO의 수장인 Dr Margaret Chan의 Globalization and Health란 연설문을 보고 느낀 것들을 적어볼까 한다.





과거와 달리 세계 경제가 묶여있는 세계화의 시대인데 이런 세계화는 인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결론적으로 보면, 세상이 가까워지고 기술이 쉽게 이전되고 발달된 장비가 세계적인 기업들에 의해 발전되고 유통되어 의료 서비스 자체뿐 아니라 국가 경쟁력에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세계화의 이득이 공평하게 나눠지지 않아 생기는 문제가 존재하고 이는 건강에 굉장히 취약한 계층을 만들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환경 문제 역시 사람들을 건강하지 못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배기 가스 규제 등 다양한 환경을 위한 논의가 나오지만, 불공정하다고 생각하는 개발도상국과 선진국과의 이견은 쉽게 좁혀지지 않는다. 그 사이에 자연은 훼손당한 만큼 자연 재해라는 이름으로 인간에게 위험이 되고 있다. 홍수, 폭우, 가뭄, 갈수, 공해… 이런 일들이 실제 세계 곳곳에 벌어지고 있다. 아프리카를 예를 들면 2020년까지 지속적으로 물 부족을 겪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물 부족으로 인해 농작물 수확이 50% 이상 감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순히 농작물이 수확이 줄어든다는 것이 이 나라의 문제가 아니기에 더 큰 문제다. 이들 국가의 기간 산업이 농업이라는 것, 이 나라에 사는 국민들이 농작물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미 지금도 그 수입이 얼마 되지 않아 겨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다가오는 변화를 수용할 여력이 없다. 지금보다 농작물 경작이 줄어들면 가계 수입이 줄어들 것이고, 건강을 위한 지출은 더 줄어들고 아파도 병원에 가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은 충분한 필수 영양소를 공급받지 못하게 된다. 비슷한 예로 식량문제 역시 여전히 인류를 위협하고 있다.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것은 식생활에 있어서 이런 변화를 가져 올 수 있다. 충분한 과일과 야채, 필수 영양소, 충분한 단백질 섭취에는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들기에 쉽게 배를 채울 수 있는 값싼 스낵들, 대부분 지방이 많고 설탕으로 채워진 값싼 스낵이 어른들은 비만을 만들고, 아이들은 제대로 영양공급을 받지 못해 눈은 퀭하고 배만 볼록한 영양실조를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제 3세계에서 노동력을 팔러 오는 이주노동자들 역시 세계화 속에 건강을 위협받는 존재들이다. 국내의 이주노동자뿐 아니라 전세계에 있는 이주노동자 대부분이 자국의 노동자들이 회피하는 위험한 일들을 도맡아 하고 있으며 많은 국가에서 그들의 값싼 노동력만 원할 뿐 그들의 건강 문제까지 신경 쓰고 돈을 지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미 세계화 속에서 국가간 빈부 격차는 분명히 존재하고 있고, 국가 내부에서의 빈부의 격차도 심각하다. 국가 별로 보면 빈곤국가와 소위 선진국간에 사망원인이 다르고, 기대 평균 수명 역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말은 이 시대에는 어디서 어떻게 사는가가 건강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질환뿐 아니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국가간의 지원은 매우 다르고 이는 사회적 안녕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세계 어딘가에는 산모들이 의학적 도움 없이 출산을 하고 있고 위생적이지 못한 관리로 인해 산모와 신생아가 사망하는 일이 아주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잘사는 나라에서는 한 사람당 1년 의료비로 6000달러를 지급하기도 하지만, 어딘가에는 20달러 지원도 힘들어하고 있다. 보험 혜택이 없거나 미약해서 본인 지출이 많아 의료 접근성이 낮아진 곳도 있고 이런 제도 때문에 병을 키우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 가난의 악순환 고리를 돌게 된다.





이런 문제들을 돌아보면 건강 역시 세계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또 단순히 의료 지원이나 생필품 지원으로 해결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마도 WHO의 고민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무리 지원을 늘려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해결하려면 세계화 속에 분배와 균형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인류 역사가 증명하듯, 가난과 질병, 전쟁은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다. 국내에서 아무리 평등과 분배를 외치는 사람도 국제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자국의 이득, 자국민의 이득이 중요하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도 남의 이득보다는 내 이득이 더 중요하고, 남과 남의 이해관계에 있어서도 이왕이면 내가 아는 사람이나 나와 이해를 같이 하는 사람의 이득이 더 중요하게 생각되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평범한 사람 중 하나이고.





최근에 이주노동자의 건강권과 의료비 긴급지원을 위한 바자회 및 관련 포스팅을 하면서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취직안되고 먹고 살기 힘든데, 맨날 이주노동자가 어떻고 저떻고 이야기하는가란 비난의 댓글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이주노동자들 반대 카페와 모임이 있다고 하니 현실은 이상과는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알게 해준다.





세계적 금융 위기에 이어 실물 경기의 침체가 온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경기가 좋지 않다는 말을 누구나 하고 있으며,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들은 아파도 오지 않는 환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세계화의 물결에 몸을 맡긴 터라 우리만 잘살기도 불가능한 시대라고 체념하고 살아야 할지, 세계화가 인류를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고 반대해야 할지, 세계화 속에서도 분배와 균형에 더 신경 쓰자고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세계화와 인류의 건강이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은 잘 생각해볼 일이다.





관련글 :



2008/10/21 - [건강 뉴스] - 외면 받는 이주노동자의 건강권

2008/11/11 - [닥블 회원 소식들] - 이주노동자 진료비 지원 블로그 캠페인


저작권자 © 코리아헬스로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