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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리다매 진료 현장과 차등수가제

병원 외래 풍경 (C) 청년의사신문 DB


대한의사협회와 서울시의사회가 차등수가제의 폐지를 주장했다. 고위 정치인들도 이에 공감을 표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차등수가제는 의사 일인당 하루 진료건수가 75명을 넘어가면 건강보험 급여비 지급을 삭감하는 제도로 2001년에 만들어졌으며, 의사의 적정진료를 유도하고 환자집중을 분산시키겠다고 도입한 정책이다.

그러나 누가 보더라도 진료의 질 향상보다는 재정절감이 우선인 정책이었다. 대중에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차등수가제는 의원급에만 적용되는데다가, 정부 유관기관인 보건사회연구원도 2009년 연구보고서를 통해 ‘차등수가제로 인해 진료의 질이 높아지거나 환자의 집중도가 완화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을 정도였다. 이러니 의사단체가 차등수가제를 문제 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동네의원이 마치 그날 재료 다 썼다고 일찍 문닫는 맛집처럼 하루 진료 건수가 75명을 넘었다고 일방적으로 문을 닫을 수도 없으니, 차등수가제에 따라 삭감을 감수해야만 했다. 일종의 환자를 많이 본 죄(?)였던 셈이다.

그런데 서울시의사회의 성명서를 보면 ‘의료장비 기술의 발전으로 진료시간 단축. 질병환자의 특성상 매일 보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적힌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이 말은 어찌보면 의료장비와 기술이 발전하면 환자를 하루에 75명보다 더 보는 것이 타당하고, 환자가 자주 방문하면 더 짧게 봐도 된다는 말처럼 보인다.

일반적인 동네의원이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중간 점심시간만 1시간만 빼고 쉬지 않고 진료한다고 가정해보자. 중간에

환자가 들어오고 나오는 시간이 없다고 단순 계산하면 75명일 때 1인당 7분 조금 넘는 정도고 100명이면 1인당 5분 남짓이다. 이 정도라면 얼굴 한번 쓱 보고 처방전 내주는 진료패턴이 일상화되었다는 뜻 아닌가. 그렇다면 (걱정스럽지만) 원격진료도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나올 법하다. 사실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필자가 이런 말을 할 자격은 있나 싶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하루 최대 100명까지 진료한 적도 있다. 일부 환자들에겐 인사만 하고 재처방 버튼을 눌러 돌려보내기도 했다. 이런 내가 누구를 비판하랴. 하지만 더 충격적인 사실을 말하자면, 소위 Big5로 불리는 병원에서는 의사 일인당 하루 200명 진료도 드물지 않게 있다.

사실상 종합병원뿐 아니라 대학병원과도 환자를 두고 경쟁해야하는 개원의들의 입장에서는 차등수가제는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 규제였을 듯하다. 그러나 모든 의료기관들이 서로 환자를 뺏고 빼앗기며 진료 건수를 늘려 경쟁하는 이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우려는, 의협이나 서울시의사회 성명에서 볼 수 없었다.

이렇게 너도나도 박리다매식 진료에 매달려 공장의 기계처럼 일하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인가. 수가 인상이 당장 되지 않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보면 생존이 걸린 일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의사회가 공식 성명까지 내며 3분 또는 5분 진료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과하단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향후 진료의 질 향상과 교과서적인 진료를 주장하는 데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병원급에서도 차등수가제를 적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처럼 행위별 수가제를 기본으로 유지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진료시간이 문제인 듯하다. 올해 4월, 미국 일간지 USA Today에는 상대가치점수의 도입과 보험사와의 계약문제로 진료수가를 깍을 수밖에 없기에, 의사들이 이를 보전하고자 더 많은 환자를 보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그 글을 쓴 기자는 말미에 ‘앞도 안보고 무작정 달리기만 하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는 쥐들의 집단자살과도 같은 행태’라고 비판했다. 도대체 얼마나 짧아졌기에 이런 지적을 한걸까. 놀랍게도 20분에서 15분으로, 고작 5분 짧아졌다고 한다.

만약 우리나라의 의사들에게 15분이란 진료시간이 주어진다면 ‘제대로’ 문진도 하고 신체검진도 할 수 있다. 노인 환자들이 침대에 눕히고 일으키는 시간도 충분히 가질 수 있고 진단과 처방을 위해 좀 더 숙고할 시간도 주어질 것이다. 물론 임종준비를 해야 하는 말기암 환자의 경우엔 15분도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양질의 진료와 오류 최소화를 위해 ‘최소’ 적정진료시간을 정해 놓고 이에 맞춰 진료수가를 개편하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절대 불가능한 일인가. 미국처럼 15분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단 10분이라도 의사에게 주어진다면 지금보다 정말 많이 좋아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선영  cathykimm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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