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루미 선데이> 포스터. 영화 내용과 본 칼럼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병에 걸린 후 ‘무력감’이라는 또 다른 심각한 질병에 걸려버렸어요.”

어느 환자의 회고록에서 본 얘기다. 이렇게 삶을 위협하는 병 앞에서 많은 사람들은 무력감에 빠지기 쉽다. 별 것 아니라고 여기고 간과하기 쉬운 현상이지만 이러한 무력감은 환자들이 병을 극복하는 과정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무력감은 심리학 용어로 ‘낮은 통제감’이라 한다. 통제감(sense of control)이란 자신의 힘으로 주변 환경 및 사건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즉 스스로 뭔가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환자가 포기하지 않고 병마와 싸워서 이기고자 하는 의지의 원동력이 된다.

지금은 고전이 된 Langer와 Rodin의 연구에서는 65~90세의 요양원 노인들을 대상으로 ‘높은 통제감 조건’과 ‘낮은 통제감 조건’의 두 그룹으로 나눠 통제력에 대한 지각을 살펴봤다.

전자에서는 노인들에게 스스로 자기 방의 화초를 가꾸게 한 반면, 후자에서는 요양원 스태프들이 노인들을 위해 화초를 가꾸도록 했다. 화초를 돌보는 작은 행동으로 시작된 통제감의 차이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줬다. 3주가 지나자 화초를 직접 돌본 노인들은 스스로 뭔가 해낼 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됐고, 행복도·건강상태·활동성 평가에서 10~50% 정도 향상된 점수를 받았다.

최근 연구들에서는 높은 통제감을 가진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건강에 도움이 되는 활동(건강검진, 운동)을 많이 하고 치료 효과를 신뢰한다고 제시했다. 또한, 기초 건강상태 및 각종 인구통계학적 변인들을 통제해도 병의 재발률이 낮게 나타나는 등 좋은 예후를 보인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같은 결과를 현장에 적용해 본다면, 의료진은 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의료진에게 너무 의지하지 않도록 ▲환자 본인 역할의 중요성 강조 ▲병을 이기는 데 도움이 되는 행동 권장을 통해 환자가 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도록 도와줄 수 있다. 작은 통제감의 씨앗이 다양한 병을 이기는 튼튼한 뿌리가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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